크립톤은 액셀러레이터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초기 기업을 발굴해 키운다. MYSC는 임팩트 투자사다. 사회적 혁신을 만들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해 혁신을 앞당긴다. 위벤처스는 벤처캐피털이다. 유망한 스타트업을 투자로 스케일업시켜 궤도에 오르게 한다. 투자의 목적과 관심이 조금씩 다른 세 투자사의 대표가 요즘 ‘지역’에 주목한다. 왜 지금 지역에 투자하는지, 어떤 철학으로 접근하는지, 전정환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이 그들의 지역 투자에 관해 물었다.
전정환 몇 년 사이 지역의 창업·투자 생태계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대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 또한 5년 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확대됐죠. 전반적인 환경 변화에 대한 여러 논의가 오가는 것을 보며,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의 변화역시 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제주가 상대적으로 지역 투자가 일찍 시작된 지역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한 이슈를 앞서 의제화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그래서 이 자리에서 세 가지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첫째, 임팩트 투자와 지역 투자가 섞여서 논의되는 측면이 있는데 그 둘은 어떤 점에서 만나며,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요. 둘째, 지역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에 관한 질문입니다.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혹은 그 자체로 사회적 의미가 있으므로 지역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더라도 반드시 스케일업을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셋째, 지역에 필요한 투자 재원에 대해서도 묻고 싶습니다. 어떤 자본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투자의 성격이 좌우될 테니까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제주센터)는 그동안 제주도의 출연금으로 14개 기업에 시드머니 투자 사업을 해왔고, 내년에는 투자조합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어떤 LP(Limited Partner, 유한책임 투자자)와 어떻게 소통하며 함께할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 분은 조금씩 다른 관심과 관점에서 지역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죠. 진행 중인 지역 투자 내용을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소개 부탁드립니다.
양경준 크립톤은 지역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지역 투자를 해오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지역을 다니며 지역 경제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과거에 지역 경제는 대기업 중심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기업이 어려워지거나 공장을 해외로 옮기면 지역 경제의 기반이 함께 무너졌어요. 이 구조에 대한 대안이 창업이라 보고 있어요. 지역에서 계속해서 창업이 이루어지기 위한 토대를 만드는 작업을 창조경제혁신센터 같은 기관이 맡는다면, 크립톤은 토대 위에서 가능성을 보이는 기업을 액셀러레이팅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려 해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정환 센터장과 연이 닿았고, 제주센터의 소개로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컨텍, 캐치잇플레이에 투자하게 됐습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란 목표를 염두에 뒀기에 투자자 역시 지역 출신이거나 연고가 있는 사람 중심으로 구성했어요. 그렇게 지역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펀드를 만들었죠.
김정태 MYSC가 지역 투자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임팩트 투자의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임팩트 투자와 일반 투자를 가르는 기준 가운데 ‘추가성’이 있습니다. 일반 투자자가 들어오지 못하는 영역이나 기업에 선제적 투자를 함으로써 그간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곳을 투자 영역으로 추가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MYSC가 나서지 않아도 이미 많은 투자가 일어나고 있는 수도권에서 눈을 돌려 지역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이즈음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진행한 세미나가 계기가 되어 제주를 시작점으로 삼았고요. 이미 제주센터와 크립톤이 제주도 기업에 투자하고 있었잖아요. 둘을 스터디하며 가능성을 발견했고, MYSC도 3년 동안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현재 제주 지점을 내고 상주 인원을 셋 두고 있습니다. 해녀의부엌과 카카오패밀리, 율립에 투자를 마쳤고, 추가 투자처로 두 곳을 논의 중입니다.
하태훈 위벤처스는 작년, 한국벤처투자 모태펀드로부터 지역에 투자할 의무가 있는 펀드를 받았어요. 전체 160억 원 중 60%에 해당하는 96억 원을 지역 기업에 투자해야 합니다. 제주도와 대전시가 각각 20억 원, 24억 원을 출자해서 두 지역에는 출자금의 2배 정도를 투자하려 하고 있고요. 558억 원 규모의 초기 기업 펀드 또한 운용하는데, 규약상 전체의 30%를 지역에 투자해야 해요. 둘을 합치면 지역 투자를 위한 돈이 270억 원 정도인 거죠. 제주만 이야기하면 현재 4개 기업에 35억 원 정도 투자를 마쳤습니다. 제주 소재 기업이 두 곳, 사업 모델이 제주와 관련 있어 본사를 이전하려는 기업이 두 곳입니다. 올해 추가로 한 곳에 더 투자할 예정이에요.
하태훈 왜 지역에 투자하느냐고 묻는다면 간단한 대답은 지역에서 소진해야 하는 펀드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운용하며 살펴보니, 지역이 앞으로 주요한 투자의 주제일 수 있겠더군요. 지역마다 특화된 산업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산업군의 경우 인프라가 꽤 잘 갖춰져 있습니다. 지역에서 스타 기업이 나오기를 바라기 때문에 지자체 역시 의욕적으로 지원합니다. 다만 이를 활용해 무언가를 이룰 사람이 없는 거죠. 이때 지역 펀드가 지역으로 인재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서울보다 경쟁은 덜 치열하고 인프라는 훌륭한데 지원과 투자를 받는 게 더 쉽다면 지역에서 창업을 시도하는 게 자신의 비즈니스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테니까요. 위벤처스는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려 합니다.
양경준 크립톤이 지역에 투자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죠. 같은 목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공기업을 지역에 내려보냈습니다만, 한계가 있어요. 무엇보다 지역의 생산 가능 인구를 늘려야 하고, 그러려면 이들을 고용할 일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고용 주체가 이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스타트업으로 바뀌었어요. 앞서 말했지만, 크립톤은 신규 고용 창출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의 대안으로 창업을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지역에 가보면, 투자할 만한 창업가가 분명히 있습니다. 수도권의 창업 집중화 현상은 전 세계적이죠. 그 때문에 지역에서 시작하려는 창업가의 경우 그 지역이어야 하는 확실한 이유가 있거나, 지역에 기여하겠다는 사명감이 있어요. 이렇게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업 모델과 기업가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갖춘 창업가가 지역에 없지 않아요. 다만 전체적인 숫자가 적은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럼에도 어느 지역이든 상위 5개 기업만 놓고 보면 수도권 기업과 비교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다섯 곳만 성공적으로 키워도 지역 창업 생태계에 폭발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서로 자극을 받고, 이 기업들로 인해 지역 전체가 주목을 받아요. 지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또한 바뀌고요. 그래서 크립톤은 현재 제주, 강원, 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스타 기업을 최소한 하나씩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것이 크립톤의 지역 투자를 평가하는 핵심 지표예요.
그렇다면 어떤 기업에 투자하는가, 어떤 기업이 지역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가 하는 문제가 남았죠. 크립톤은 지역 기업을 발굴하기 전에 스터디를 통해 그 지역에 적합한 사업 모델을 미리 설계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팀을 발굴하는데, 제주를 예로 들면 세 유형을 설정했어요. 국내에서 로컬 콘텐츠가 가장 강세인 지역인 만큼 제주의 콘텐츠를 사업화하는 팀, 제주와 유사한 환경으로 사업 모델 확장이 가능한 팀, 끝으로 그저 제주가 좋아 제주에서 창업한 팀이었어요.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컨텍, 캐치잇플레이가 차례로 해당되는데,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부산·울산·경남 지역은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한 지역이기 때문에 그걸 기반으로 스마트 전환이 가능한 사업 모델을 찾고 있죠.
전정환 한편 어차피 인구는 줄어들고, 국내 규모를 생각했을 때 수도권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는 게 더 나은 전략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세 분은 이런 질문에는 어떻게 답하나요.
김정태 <다윗과 골리앗: 거인을 이기는 기술>에 나오는데, 미국에서 톱 저널의 논문 저자를 추적했다고 해요. 하버드대 같은 상위권 대학 연구자가 전체적으로 우세할 것 같지만, 하버드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연구자는 상위 10%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지역에 있는 대학교의 상위권 연구자들은 하버드대 중위권 연구자보다 더 많은 실적을 내고 있었고요. 요컨대 큰 연못의 작은 물고기보다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를 먼저 목표로 하라는 거예요.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이 수도권의 경쟁에 치여 기회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에 간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죠. 중앙에 모든 자원이 몰렸을 때 기대할 수 없는 결과일 거예요.
전정환 세대 문제도 중첩된 것 같습니다. 요 몇 년 사이 사회적으로 양극화가 화두죠. 청년 세대가 스스로 부를 일구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부모를 잘 만난 사람은 쉽게 기회를 잡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미 자리 잡은 이들만큼 성과를 이루기 어렵게 됐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지역을 키우는 건 경기장을 다변화하는 것이라할 수 있겠지요. 1960년대에 정주영 같은 산업화 세대가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성공을 이뤘듯이 서울에서 기회를 찾을 수 없는 청년들은 이제 지역으로 가 새로운 기회를 노려보는 거죠.
하태훈 서울 중심성이 더욱 강화되었을 때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서울 바깥에 다양한 스펙트럼의 지역이 존재해야 한다는 건 당위적인 의제예요.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에 더해 실질적으로 지역으로 갔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경쟁자가 적어 필요한 지원을 쉽게 얻을 수 있고, 그 지역에 특화된 자원을 이용할 수 있죠. 경남은 제조업의 메카였고, 대전은 카이스트를 중심으로 여러 원천 기술을 보유한 지역이에요. 전북은 농업 인프라가 탄탄해 관련 사업의 테스트베드로 적합하고요.
양경준 공급자 입장에서는 지역을 소멸시키고 수도권에 집중하자는 말을 할 수 있어요. 효율적인 전략이라 판단하는 거겠죠. 그러나 국가가 그렇게 추진한다고 해도 지역에 계속 머무르겠다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해요. 특정 지역의 인구가 0이 될 순 있어도, 모든 로컬을 인위적으로 소멸시키는건 일단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기획입니다. 그리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현명하다면 인위적으로라도 지역을 살리려 할 거예요. 도시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융합하면서 스스로 발전합니다.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수예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서울에 모여 산다면 도시로 다양성이 공급될 수 없어요. 역사적으로 확인됐듯 혁신은 변방에서 탄생하죠. 서울이 잘되기 위해서라도 로컬이 남아 있어야 해요. 로컬이 소멸하면 서울도 유지될 수 없습니다.
전정환 다음 주제로 넘어가볼까요. 대담자 세 분은 제주를 포함해 지역 투자를 활발히 하고 있죠. 현장에서 느끼는 지역 투자 생태계의 변화가 있을까요.
하태훈 사실 스타트업의 서울 집중 현상은 최근의 일입니다. 2000년대 초, IT 붐이 일어났을 때 생겨난 벤처기업은 제조업 기반으로, 지역에 많았어요. 모바일 환경으로 전환되고, 서비스업이 대세가 되면서 서울로 쏠리게 됐죠. 지역은 고민이 깊습니다. 이미 지역에 전문화된 영역이 존재하잖아요. 시대에 맞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상황인데, 일괄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요. 디지털화한다고 두산중공업에 갑자기 앱을 만들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제껏 지역을 이끌어온 산업이 끝을 보이니 지자체 또한 해결책이 필요하죠. 이런 배경에서 벤처 펀드의 출자자로 지자체가 떠올랐어요. 과거에는 서울, 제주, 대전 같은 광역 단체 중심이었다면, 이제 강남구청, 관악구청 등 기초 단체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앞서 말했듯 지자체의 돈을 받으면 지역에 투자할 수밖에 없어요. 그 투자가 창업 생태계의 능동적인 변화까지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쨌거나 계속해서 자극이 생기는 거죠.
김정태 MYSC는 성동구에서 5억 원을 출자받아 총 20억 원 규모의 벤처 투자 펀드를 만들고 있어요. 주목적을 협의해 그중 60%를 성동구 소재 소셜 벤처에 투자할 예정이에요. 경남과도 약 23억 원가량의 벤처 투자 펀드를 조성 중인데, 70%를 경남 지역의 로컬 크리에이터와 소셜 벤처에 투자하기로 했어요. 여기에 기초자치단체인 통영시와 거제시가 출자하기로 했고요. 이제까지는 지역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채로 임팩트 투자를 해왔습니다만, 올해 초부터 지자체가 임팩트 투자의 LP로 참여하는 흐름이 분명해진 듯합니다. 지역 투자를 하며 시간이 모든 곳에서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테헤란로에서 일할 때와 제주나 속초, 통영에 있을 때 시간이 조금 달리 가잖아요.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는 건 중력이나 문법 또한 다르다는 의미겠죠. 이 점을 인정하면 투자할 만한 팀이 보이고, 지역 투자 또한 흥미로운 벤처 투자의 영역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태훈 지역 투자가 늘어난 것을 보며 이런 생각도 합니다. 창업 초기 단계에서는 지역에 있는 게 유리합니다. 투자나 지원을 받기 쉬우니까요. 이 단계에서는 경쟁이 덜 치열한 로컬에서 준비하고, 사업이 성장할 때는 중앙으로 올라가 한판 붙어보는 거죠. 지역에서 지원받았으니 계속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갑갑하거든요. 지역에서 성장해 중앙으로 갔다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후 다시 지역에 기여하는 모델은 어떨까요. 이런 기업을 계속 배출하며 전국에서 제일 좋은 혁신 기업 사관학교를 콘셉트로 삼는거죠.
전정환 그렇게 하기 위해 단순한 지원이 아닌 투자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역에서 지원 사업의 수혜를 받은 기업이 서울로 이동하면 지역 입장에서는 기업을 서울에 빼앗기는 게 되죠. 반면 지원 사업이 아니라 투자를 했다면 어떨까요. 그 기업이 서울로 진출해서 지역이 성장할 수 있게 돕고, 서울과 글로벌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도록 독려할 수 있을 거예요. 도외 기업과의 관계 맺기에도 투자는 도움이 됩니다. 대전에 본사를 두고 제주에 위성 수신 기지국을 만든 컨텍 같은 경우, 제주센터가 도 출연금으로 투자한 기업이에요. 3000만 원을 초기에 투자해서 벌써 수익이 나고 있어요. 컨텍의 사업으로 제주 또한 항공 우주 산업의 거점이란 꿈을 공유할 수 있게 됐죠. 단순 지원 사업으로는 기업과 지역이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본이 들어가야 해요. 지방정부의 재원에서 나아가 지역에 애정이 있는 민간투자자를 모아 재원을 마련하면, 기업과 지역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네트워크 형성의 역할도 하리라 봅니다.
전정환 이제 스케일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참여한 LP의 성격에 따라 기업의 스케일업에 대한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세 분 또한 공통적으로 지역 투자를 하고 있지만, 임팩트 투자자, 액셀러레이터, VC(Venture Capital, 벤처캐피털)로서 입장이 다르지요. 지역 기업에 투자할 때 기업의 스케일업에는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나요.
김정태 임팩트 투자사로서 MYSC는 초창기 재무보다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스케일업이 가능한 기업에 투자합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VC라면 해녀의부엌의 초창기 사업 모델을 보고 스케일업이 어렵다고 판단하겠지만, MYSC는 해녀의부엌의 핵심 콘텐츠를 미디어나 F&B, 프랜차이즈로 확장하는 방식의 스케일업 가능성을 봅니다. CJ 관계자나 서울극장 대표를 해녀의부엌에 초대해 소개하면 그들은 VC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요. 대기업은 재무적인 리턴이 당장은 크지 않더라도 자신의 가치 사슬과 연결되면 전략적 투자를 합니다. 그럼 펀드 입장에서는 일종의 엑시트가 마련되는 셈이죠.
양경준 크립톤은 지역이든 서울이든 스타트업을 평가하는 기준은 동일합니다. 스케일업이 가능한 모델이 나와야 하고, 투자의 관점에서 기업 가치를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사업 모델이 저마다 다르고 사업 무대가 지역일 뿐, 지역 기업이라고 예외를 두진 않습니다. 크립톤의 투자는 임팩트 투자의 성격과 자본 시장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요.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겠지요.
전정환 그렇다면 김정태 대표의 말처럼 지역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말에 동의하나요. 결과점이 같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하는 편인가요.
양경준 확실히 지역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르죠. 그러나 사업 모델상 시간이 더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속도의 문제도 예외는 없어요. 예를 들어 어떤 스타트업 대표가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느리게 가는 게 맞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지역에 있더라도 서울의 스타트업처럼 움직이라고 가이드하는 편입니다.
하태훈 소셜 벤처 같은 경우, 재무적인 스케일업을 위해 애초 생각했던 사업의 핵심적인 부분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상 기존 사업 모델을 키우는 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 생각해요. 투자자가 재무적으로 회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떠나, 손실이 났다는 건 그 비즈니스가 일정 부분 무너졌다는 의미예요. 그렇다고 모든 회사가 상장해야 한다거나, 유니콘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50억 원짜리 펀드를 만들어 소셜 벤처에 5억 원을 투자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회사가 매출이 어느 정도 나오고 투자금을 돌려줘도 잘 굴러간다면 5억 원을 회수할 수 있잖아요. 그럼 그 돈으로 다시 다른 기업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수익이 발생하진 않았지만, 의도했던 사회적 효과를 만들었고 고용을 일으켰어요. 재단이 아니라 펀드에 돈을 넣었을 때는 이처럼 어떤 식으로든 리턴을 기대하기 때문이에요. 그 돈이 마중물이 되어 산업이 성장하고, 계속해서 투자를 통해 임팩트를 만들 수 있기를 바라죠. 재무적인 리턴만 있는 건 아닙니다. 회수한 5억 원으로 같은 방식의 투자를 10번 반복해 10개 회사를 키우면 그것 역시 리턴이죠. 한편 공공의 돈을 운용할 때는 이렇습니다. 정부의 돈을 받으면 여성 기업을 키우라거나, 지역에 투자하라거나, 돈 버는 것 외에 추가적인 미션을 줍니다. 그럼에도 펀드의 나머지 40%는 민간의 돈으로 채워야 해요. 펀드의 주목적이 어려울수록 수익률을 낮춰 운영합니다만, 아무튼 돈을 날리고 싶은 투자자는 없어요. 이 상황에서 공공적 목적을 가지고 한 투자에서 회수가 어렵거나 수익이 충분하지 않다면, 펀드의 나머지 투자에서 수익률을 높여 전체 펀드의 수익률을 맞춥니다. 실패하면 다음번에 민간에서 유입되는 자금이 확 줄거든요. 임팩트 투자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라도 공공적 목적과 수익률을 동시에 추구해야 해요. 그래야 들어온 돈이 빠져나가지 않고 계속 유지됩니다. 정리하면, 임팩트와 스케일업 혹은 재무적 리턴을 트레이드 오프 관계로 보지 말자는 거예요. 투자자는 돈을 잃지 말아야 하고, 회사가 성장하고 커질수록 사회적 효과도 커진다는 것이 기본 전제입니다.
전정환 결국 투자금을 운용하면서 다양한 방식의 임팩트를 만들어내는 운용사의 책임과 역량이 중요하네요.
김정태 임팩트 투자를 하려는 LP들은 요구가 다양합니다. 장애인을 1년에 10명씩 고용해달라거나, 환경이나 사회 문제 해결을 목표로 삼기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임팩트 투자의 경우 리턴의 스펙트럼이 좀 더 넓은 것 같아요. 결코 재무적 리턴을 낮추려 하진 않지만, 원래 목적이 달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MYSC는 스케일업 또한 그런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하태훈 요컨대 운용사는 첫째, 펀드의 주목적을 잘 지키면서 둘째, 이왕이면 수익률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죠. 목적을 달성하면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최선이고, 돈이 조금 줄어들어도 주목적을 잘 달성하는 것까지 가능하죠. 한편 스케일업을 비행기의 이륙 과정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스케일업해야 한다는 것은 기업이 끝없이 덩치를 불려야 한다는 게 아니라, 어느 시점에는 이륙해야 한다는 의미예요. 이륙 이후에는 각자 속도로 가는 것이지만, 투자받고 추진력을 얻어 궤도에 오르는 과정은 어느 기업에나 필요합니다. 그래야 실질적으로 사회적인 임팩트를 줄 수 있어요.
전정환 앞서 제주센터가 투자조합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이런저런 고민이 있는데, 문제의식을 확장하고 정리할 수 있었던 대담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의 투자 계획이 궁금합니다. 혹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다음 투자 지역이 있을까요.
양경준 지역에 투자하며 역량 있는 로컬 액셀러레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VC가 지역 스타트업에 바로 투자하기는 어려워요. 그 때문에 지역 기업을 중앙으로 밀어올리는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죠. 크립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제주, 강원, 부산·울산·경남권, 세 지역에 집중합니다. 5년을 목표로 각 지역의 창업가를 키워 그들이 직접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도록 하려 합니다. 그때까지 시간이 걸리니 그동안은 크립톤이 성공 사례를 만들어 자극을 주고요. 그럼 다른 액셀러레이터들이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겠죠. 지역 펀드를 만들려는 지자체 역시 액셀러레이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강할 것입니다.
김정태 전국 단위로 다양한 요청을 받고 있는데, 지점 개설은 MYSC의 관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작년에 제주 지점을 만들었고, 곧 경남 지점이 문을 엽니다. 대구와 전주 지점은 준비 중이에요. 지점을 개설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역설적으로 지점 폐쇄입니다. 지역의 잠재력 있는 조직을 발굴하고, 직접 투자하거나 조인트 벤처를 결성하는 등의 방식으로 3년 동안 MYSC의 역량과 매뉴얼을 이관하고 싶어요. 대구의 경우 적합한 파트너를 찾아 더컴퍼니씨협동조합을 만들 때 설립 파트너로 참여했어요. 또 경남 펀드와 성동구 펀드를 운영하며 여러 데이터를 쌓고 있습니다. 어떤 LP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같은 지역 펀드라도 성격이 달라지는 것을 겪으며 성장 중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제안이 들어오면 확대하려 하고, 내년의 중요한 사업은 제주에 투자하는 벤처 펀드를 론칭하는 것입니다. 관련 기관과 기업의 출자를 받아 제주에 특화된 펀드를 만들어보려 해요.
하태훈 위벤처스는 앞서 말씀드린 270억 원 규모의 지역 펀드를 잘 운용해서 성과를 내야죠. 현재 100억 원 가까이 투자했는데, 제주와 대전의 지분이 가장 큽니다. 나머지는 부산·울산·경남 지역이 될 것 같고요.
전정환 세 분의 활동 덕분에 지역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투자조합 결성이라는 제주센터의 숙제도 잘 풀어야겠습니다. 제주가 다른 지역보다 반 발짝 앞서가는 게 제주센터의 목표거든요. 로컬 투자 생태계에 있어 파트너들과 의미 있는 시도를 하며 인사이트를 쌓아 전국에 공유함으로써 다른 지역을 돕는 것 또한 중요한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크립톤이나 MYSC, 위벤처스가 다른 지역에 갈 때 제주센터와의 파트너십 경험에서 도움을 받는다면, 더는 바랄 게 없습니다. 파트너로서 앞으로도 지역에서 더 많은 기회를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프렌드투자파트너스
김명진 이사
과연 제주에서 비즈니스를 어떻게 펼칠까, 지역적인 한계는 어떻게 극복할까, 제주가 가진 고유성은 어떻게 풀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했습니다. 제주센터와 인연이 닿아 수많은 업체를 심사한 후 그들에게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제주 스타트업?’이라는 선입견을 ‘신선함’으로 전환시키는 도내 스타트업에 대한 흥미로움과 지지는 시간이 갈수록 커져갑니다. 지역이 갖는 한계는 분명 있지만, 그것이 사업 확장성에 있어 장애물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여러 스타트업은 오히려 한계라고 지적하는 부분을 장점화하며 비즈니스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일례로 제주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카카오패밀리’가 있습니다. 제주의 스타트업은 인기 있는 비즈니스 모델에 몰려 있지 않으며,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지켜보는 건 설레는 일입니다.
AF인베스트먼트
손세호 이사
제주만이 가진 지역적 특색에 주목합니다. 제주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관광지 중 하나로, 친환경, 관광, 해양에 특화된 스타트업이 성장하기에 최적지입니다. 이러한 이점을 살리면서 도민과 협업하는 스타트업을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과거, 제주의 스타트업은 관광 중심으로 특화되어 있어, 아무래도 수도권 스타트업에 비해 스케일업이나 특화된 서비스 개발이 쉽지 않았죠. 그러나 최근에는 분야가 확장·육성되는 추세라 이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신소재로 해양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마린이노베이션’, 구좌읍 종달리 해녀와 청년 예술인이 문화 콘텐츠를 함께 만든 ‘해녀의부엌’, 버려진 빈집을 재생시켜 새로운 숙박 경험을 제공하는 ‘다자요’ 등 도민과 상생하면서 독특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 스타트업이 제주 스타트업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제주센터와 함께 제주 기반 스타트업을 돕고자 합니다.
DSC인베스트먼트
신동원 이사
국내를 비롯해 동아시아에서 ‘제주’라는 지역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봤습니다. 입도하는 연간 방문 관광객 수가 1500만 명에 육박하는 제주는 그 자체로 파워풀한 브랜드이자 IP(지식재산)로 자리매김하고 있지요. 스타트업이 다채롭고 창의적인 사업을 전개해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주 스타트업의 인재를 봤을 때 상당히 창의적이고, 틀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것이 강점이에요. 인바운드 관광 트래픽을 스마트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풍부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핫 스폿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면 글로벌 사업화로 연결시킬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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