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수 전 제주개발공사 사장
제주 출신으로 서울에서 성공한 리더가 애정을 담아 고향 제주의 창업과 투자 생태계를 바라보는 소회를 전해왔다. 자신의 지난 시간과 경험을 반추하며 후배들이 걸어갈 현장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겠다는 출사표와 함께.
제주 태생으로, 육지로 이주한 시기와 계기가 궁금합니다.
온주밀감의 최초 시원지인 서귀포시 서홍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조상 대대로 감귤 농사를 지어왔으며, 1975년 고교 졸업 후 서울에서 42년간 살다가 2017년에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제주의 사회 분위기는 ‘말(馬)을 낳으면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로 통용됐고, 도내에 유학 열풍이 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유학길에 나섰고, 혼자 자취 생활을 했답니다. 열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성공해서 금의환향해라” 하며 자식을 공부하러 떠나 보낸 부모님의 심정을 알았습니다.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그때 복합적으로 겪었던 외로움과 독립심 등이 현재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30년 전, 삼성물산을 시작으로 시큐아이닷컴 사장,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롯데정보통신 CEO 등을 거쳐 제주도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제주개발공사장으로 활동했지요.
제주제일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학과에 진학해 경영 이론을 배웠습니다. 종합 무역 상사인 삼성물산에 입사해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곧바로 삼성 회장비서실로 파견돼 8년간 삼성의 정보 전략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1985년 당시 정보 공유 수단은 전화와 팩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윗선에 아이디어를 제시했죠. 컴퓨터를 활용하면 15만 명의 삼성 임직원에게 동시에 정보를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으며, 축적과 활용이 가능하다고요. “그럼 네가 해봐라”는 답을 듣고 8년 동안 삼성 그룹웨어(single: 게시판, 이메일, 전자 결재, 문서 관리)를 만들어 운영하며 정착시킨 다음, 뉴욕 주재원으로 발령받았습니다. 미국에서 정보 총괄을 담당하며 IBM, HP, AT&T, CISCO 등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선진 ICT 기술을 익혔습니다. 4년 뒤 귀국해 대기업에서 만든 벤처 기업이자 e-삼성의 정보 보호 전문 회사인 시큐아이를 설립하고 5년간 CEO로 일했습니다. 그 후 롯데정보통신 CEO로 이직했고, 현대정보기술과 M&A를 추진하면서 ‘직업이 CEO’란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ICT 분야에서 정부 기관과 가교 역할을 하는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장,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정보처리학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산학연 등과 소통하고 협업하는 경험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공기업 CEO를 맡는 기회가 주어졌고, 고향에서 제일 큰 공기업이자 삼다수 생산 판매를 담당하는 제주개발공사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서울살이하던 예전부터 귀향에 대한 꿈을 가졌던 건가요?
늘 고향에 빚을 진 듯한 느낌을 갖고 서울 생활을 했습니다. 대학 등록금을 ‘향토장학금’이라고 부르면서 성공한 다음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고향에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지냈답니다. 40대가 지나면서는 육지에서 익히고 배운 노하우를 고향에 ‘재능 기부’하겠다는 책임감이 커졌습니다. 1998년부터 서울에 있는 ICT 관련 출향인의 모임인 ‘제주 IT 포럼’을 만들어 지금까지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2017년에는 '제주경제인연합회’ 추진 단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제주디지털포럼 좌장을 맡아 제주의 4차 산업혁명 추진에 일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많은 기업가와 예비 경제인이 회장님을 보면서 꿈꿀 거라 생각합니다.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지역 인재와 교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제주 출신으로서 다양한 산업군의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제주에 도움이 되기를 꿈꾸고 바라왔습니다. 제주의 젊은 세대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독창적인 지역성을 가지고 창업한다면 분명히 성공 신화를 만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최근에는 제주테크노파크가 개최하는 ‘제주미래가치포럼’ 의장을 맡았습니다. 제주미래가치포럼은 제주테크노파크의 과제인 에너지, 디지털, 바이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토론을 통해 임직원의 학습과 정책 과제 방향 등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이 포럼을 발전시켜 도내 다양한 협회와 협의회를 하나로 엮고, 제주의 젊은 세대를 위한 시너지를 창출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서울의 다양한 앞선 인재들을 초빙해 정보를 공유하며, 세계 속의 젊은 인재를 육성하고 창업하도록 연결함으로써 제주의 젊은 세대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데 앞장서고자 합니다.
향후 제주 창업 생태계나 창업 후배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활동 계획이 있는지요.
제주에서 활동하는 기업인, 제주 출신으로 서울 등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기업인이 제주를 위해 재능 기부하는 것은 물론 제주의 젊은 창업가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제주의 유관 기관 등이 앞장서서 홍보하고 정보를 제공해야겠지요. 제가 의장으로 있는 제주미래포럼도 그러한 기치를 앞세우며 활동할 것입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모으도록 돕거나, 십시일반 투자를 통해 기금을 만들어 제주의 창업가를 후원하고, 창업한 기업인을 대상으로 경영 컨설팅을 진행하는 등 다각도로 지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서울에서 핫 이슈가 되고 있는 최신 트렌드를 제주에 리얼타임으로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겠습니다. 즉 ICT 분야 1세대로서 선배(기성세대)와 후배(창업 세대)를 연결하는 마중물 역할이자 링크 역할을 맡을 생각입니다.
회장님이 보기에 제주의 스타트업이 갖는 이점은 무엇일까요?
과거에는 물리적 장소가 단점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이버 공간에서 창업하는 시대입니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가수 싸이가 그랬고 한류가 그랬으며, 지금은 BTS가 세상의 흐름을 변화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제주의 젊은 세대가 그러한 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제주만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색채를 가지고 창업한다면 장점이 휠씬 많으리라 확신합니다. 제주의 자연, 세계문화유산, 제주 특산물, 6차산업 등 제주만의 독특함으로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면 유일무이한 창업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메모로 나를 경영하라>를 펴낼 만큼 정보와 휴먼 네트워크, 나아가 경영과 접목되는 메모의 위력을 오랫동안 실감하고 있지요.
메모하는 습관은 아버님으로부터 배운 습관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버님은 농사일지 등을 꾸준히 메모하며 오랜 기간 데이터를 축적해 그것을 다음에 꼭 활용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메모=데이터’라는 등식이 실제로 사용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사회생활하는 동안 수많은 메모를 통해 정보를 축적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쌓으며, 그것을 경영 활동에 재투자함으로써 CEO 업무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메모의 툴이 있지만,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메모를 가장 선호합니다. 중요한 정보부터 일상의 소소한 단상을 메모해 저장하고, 다양한 사진을 찍고 이미지를 저장하며, 인터넷을 통해 정보 검색도 합니다.
메모 툴 가운데 새로운 자극이나 인사이트를 준 것은요.
젊은 세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카톡이나 밴드를 저 역시 주로 이용합니다. 카톡은 실시간 대화나 정보 공유에 빠른 채널을 제공하며, 밴드는 사진이나 이미지를 저장하는 데 효율적입니다. 카톡은 장기 저장이 되지 않는 반면, 밴드는 이미지를 장기간 저장하고 공유할 수 있지요. 최근 코로나 영향으로 비대면 세미나에 줌(Zoom)을 통해 참여해보니 장소에 구애 없이 정보를 얻을 수 있더군요. 요즘 상황에 맞는 좋은 툴이라 생각합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은 청년 기업인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근 들어 저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셔틀 경영’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제주개발공사를 맡고 있을 때는 다른 산업, 또는 다양한 인맥과 교류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합니다. 이전보다 휠씬 자유롭게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기술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제주에 전파하면서 여러 기업 활동에 도움을 줄 방법을 모색하는 일을 전개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여기, 제주미래포럼이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겁니다. 코로나 시대에도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제주의 기업은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도태되는 기업이 있는 반면, 성공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제주의 청년 기업인은 어려움 속에서도 성공하는 기업을 벤치마킹해 제주만의 독창성과 제주만의 자원을 이용해 성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내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기성 기업인과 십시일반 차세대를 위한 기금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는 도민, 제주 출신 기업가가 힘을 모아 차세대 제주 청년들에게 힘이 되어주기를 이 지면을 통해 간곡하게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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