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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Oct 26. 2020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농업 혁신
록야는 요즘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의 화훼 농가가 휘청였다. 졸업식과 입학식이 줄줄이 취소되며 대목을 앞두고 출하 준비를 마친 몇만 송이의 꽃이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마켓컬리와 손잡고 산지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으로 꽃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제안한 것은 강원도 원주에서 시작해 10년 차를 맞은 농업 스타트업 ‘록야’였다. 올해 2월 말 선보인 ‘농부의 꽃’ 서비스는 한 달여 만에 10만 송이 판매 기록을 세우며 작은 돌풍을 일으켰다. 꼬마 감자 재배와 유통으로 시작한 록야의 사업은 ‘농부를 이롭게 한다’는 모토 아래 거듭 확장 중이다. 2019년 120억 원 매출 기록을 세우고, 지난여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농산물 가격 변동을 분석하는 시스템을 마련한 록야의 권민수 대표에게 코로나19 시대, 농업에 필요한 혁신에 대해 물었다.



박영민·권민수 대표

‘농부의 꽃’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화훼 농가를 보고 서비스를 기획하게 됐나요?
꽃을 배달하는 서비스는 코로나19와 무관하게 예전부터 기획하고 있었어요. 화훼 분야에 스타트업이 꽤 들어와 있습니다. 아내 역시 매달 결제하고 꽃을 배달받는 서비스를 이용 중인데, 옆에서 지켜보니 신선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어요. 배송 과정에서 꽃이 상하기도 하고요. 문제점을 보완해 사업화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코로나19가 발생했어요. 꽃은 사실 일종의 사치품이잖아요.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고 끼니를 거를 순 없지만 꽃은 선물하지 않게 되죠. 화훼 농가가 고통받는 것을 보고 서비스를 좀 더 앞당겨 시작했습니다.


원래 기획하던 서비스는 어떤 모델이었나요?

록야가 하는 모든 사업의 중심에는 농부가 있어요. 농부가 없으면 농업이 없고, 농업이 없으면 인류가 멸망한다는 것이 록야의 모토예요. 화훼 서비스의 기획 또한 단순히 꽃의 신선도를 높이겠다거나 배송 사고를 줄이자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농부의 입장에서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 살폈어요. 화훼 농가에 물어보니 시장 가격의 변동 폭이 너무 큰 거예요. 코로나19로 화훼 가격이 폭락했을 때 이 문제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을 확인했죠. 유통 단계를 줄여서 직접 배송하면 신선도는 물론 가격을 안정화할 수 있으니 마켓컬리에 그렇게 제안했어요.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꽃으로 위로하자는 콘셉트가 잘 맞아들었고, 튤립으로 시작해 지금은 꽃 출하 시기에 맞춰 열두 달 포트폴리오를 완성했어요.


‘모두의 꽃’이란 서비스도 선보였지요.

농부의 꽃이 개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한국경제신문(이하 한경)과 함께하는 모두의 꽃은 기업체가 대상이에요. 재택근무로 지친 구성원에게 기업이 꽃을 선물하라고 제안했죠. 꽃 소비 진작을 위한 기업 대상 마케팅이나 캠페인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소비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려면 소비자가 이 서비스가 정말 좋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모두의 꽃의 핵심은 유통을 혁신적으로 줄여서 거품을 모두 제거한 합리적인 가격의 꽃을 배달해주는 거예요. 전날 밤 수확해서 산지에서 직접 배송하기 때문에 일반 꽃집에서 사는 것보다 꽃이 훨씬 신선해요. 후기가 좋을 수밖에 없어요.

자회사 ‘팜에어’를 설립하고, 빅데이터 분석으로 작물의 시세를 예측하는 시스템 ‘테란’을 만들었지요.
10년 차니 록야가 확보한 데이터가 꽤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농산물의 가격 등락, 산지별·도매 시장별 동향, 기상 정보 등을 제공해요. 정보를 분석해 가설을 세운 뒤 여러 기법으로 검증하는 방식입니다. 농업 관계자는 객관적인 근거로 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고, 농업 유통 구조 역시 혁신되겠지요. 현재 표준화한 농작물의 전체 가격, 등락폭과 상승·하락 품목 등 일부 정보를 한경과 네이버팜을 통해 공개하고 있어요. 어느 정도 공익적인 성격이 있는 정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미국이나 유럽의 농업 선진국처럼 앞으로의 농업은 데이터 기반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테란으로 살펴볼 때 코로나19 이후 감지되는 농업계의 움직임이 있을까요?
유통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요. 코로나19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고 관련 스타트업이 등장하며 변화 속도가 더 빨라졌죠. 이런 변화 가운데 우려스럽게 보고 있는 현상 중 하나는 친환경 농업의 위기입니다. 친환경 농산물의 가장 큰 소비처는 학교급식이에요.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늘어나며 친환경 농업 전체가 붕괴 직전에 이르렀어요. 해결책이 시급하죠. 이에 더해 코로나19 이후 농업과 관련해 좀 더 논의되어야 하는 의제는 기후 위기입니다. 코로나19의 원인으로 기후 위기가 지목됐고, 그 영향을 세계 전체가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죠. 농업 또한 기후 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습니다. 기온이 변하거나 비가 와야 할 때 오지 않고 올해 장마처럼 너무 오래 오면 작물을 생산할 수 없잖아요. 올여름 테란의 농산물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어요. 생산량이 기존의 절반밖에 안 되는 거예요. 농민은 팔 게 없고, 소비자는 비싼 가격으로 사야 합니다.


기후 위기 같은 큰 변화에 농업은 어떤 대응이 가능한가요?
기후 위기의 폭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달라지겠죠. 온도나 강우 등은 예측 시스템을 통해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어요. 작물마다 적합한 파종 시기가 있는데, 추워지면 늦추고, 따뜻해지면 당기는 식으로 변화하는 기온에 맞춰 조정합니다. 사과를 대구에서 강원도 고랭지로 옮겨 생산하는 것처럼 산지를 바꾸는 일도 가능하지요. 테란이 기상 정보를 분석하듯 정부가 데이터를 분석해 대응 매뉴얼을 농가에 배포해야 해요. 기후 위기가 심화되면 급작스러운 태풍이나 폭우 등의 빈도가 높아질 텐데, 노지에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없게 되는 최악의 경우도 염두에 둬야죠. 미래의 일이지만 시설 작물 체제와 관련 연구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거예요.

록야는 2011년, 꼬마 감자 개발과 재배로 시작한 스타트업이죠. 이제 농업 전체에 임팩트를 주는 기업으로 성장했는데, 록야의 여정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현재 록야는 종자 개발부터 계약 재배를 통한 생산과 유통, 데이터 분석까지 농업 전. 영역에 걸쳐 사업을 펼치고 있어요. 그 시작은 농업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었어요. 생산자인 농민, 식품 관련 기업, 소비자 모두 불만이 있었어요. 이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게 플랫폼 역할을 하는 기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반복되는 가격 등락을 농가와의 계약 재배를 통해 해결했고, 판로를 록야가 책임지면서 농부는 생산에만 집중하도록 했어요. 식품 생산 기업은 록야를 통해 안정적으로 물류를 조달할 수 있게 됐고요. 감자에서 시작해 지금은 30여 가지 작물을 다루고 있습니다. 농업에서의 불안정성을 어느 정도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목표했던 바는 아직 이루지 못했어요. 생산자가 제값을 받으려면 결국 가격 결정권이 록야에 있어야 하거든요. 현재는 작물을 공급받는 회사들이 가지고 있어요. 농가에 값을 더 쳐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구조죠. 그래서 올해부터는 가공식품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어요. 볶은콩을 넣은 초코볼인 ‘알콩초콩’, 고사리, 시래기 등 나물을 통조림으로 만든 ‘캔나물’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고, 최근 꿀 고구마를 이용해 ‘아이스 황토구마’를 출시했어요. 100% 국산 농작물로 만든 원물 기반의 가공식품입니다. 유통 채널을 오픈해 직접 판매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해외 수출 역시 시작했어요. 한국의 농업을 세계로 알리고 싶습니다.


록야의 두 대표가 수확철에 직접 계약한 밭에 나가 품질을 확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데이터 비즈니스와 가공식품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요즘도 밭에 나가나요?
여전히 계약한 모든 밭에 록야 사람들이 직접 가요. 수확을 시작하면 임직원 모두가 밭 근처에 숙소를 잡고 살죠. 불량품을 골라내는 전통적인 품질 관리의 개념이 아니에요. 록야는 단순히 생산물을 납품받는 업체가 아니라 농부들의 파트너예요. 농사를 직접 짓지는 않지만, 록야의 데이터나 기술 등으로 농가의 손실은 줄이고 생산성은 높이는 것까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요. 데이터 비즈니스가 더욱 고도화되면, IoT 센서 등 신기술을 이용해 직접 밭에 나가는 일을 지금보다 줄일 수는 있겠어요. 그러나 파트너로서 농부들의 곁에서 협업한다는 록야의 기본 태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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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물을 먹고 싶지만 요리하기는 부담스러운 1~2인 가구의 요구를 정확히 겨냥했다. 출시 직후 백화점과 마트,온라인 몰 등에서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해외 수출 역시 확정됐다.
2 국산 백태와 검정콩을 고온에서 부드럽게 로스팅한 간편 스낵으로, 마켓컬리의 스테디셀러다.
3 록야의 올가을 신상품. 국산 꿀고구마를 황토 가마에서 구워 급속 냉동했으며. 식품첨가물을 일절 쓰지 않았다.





기획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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