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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Nov 02. 2020

코로나시대, 로컬의 가까운 미래 Ⅸ

CIRI 3차회의-②

*CIRI 3차회의-①편(이전글)에서 이어집니다. 




Session.1  초청 대담

대한민국 농업 및 로컬푸드 유통의

한계와 해결 방안

 

종자부터 생산·유통·가공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 농업 전문 기업, 록야    

                

록야(ROKYA)

2011년 박영민, 권민수 공동대표가 창업한 농업법인 스타트업. 농업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주목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농업의 사회적 가치 신장과 기업 이윤 창출을 동시에 추구한다. 계약재배 방식을 통한 감자 유통을 시작으로 콩, 양상추 등의 작물을 취급하고 있으며, 종자부터 생산, 유통, 가공까지 전 분야를 다룬다. 자회사로 농업 데이터 분석을 하는 팜에어가 있다.  

홈페이지: http://www.rokya.co.kr/



권민수: 저희는 농업과 농촌이 가진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2011년에 록야를 창업했습니다. 농업 분야는 농민들이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농산물 가격의 등락 폭이 너무 큰 나머지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없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모종린 교수님 말씀처럼 지역에 로컬푸드 상권을 조성하거나 파인다이닝을 만들어서 농산물을 유통하는 방안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많은 농부에게 빠르게 혜택을 주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감자를 활용한 로컬 레스토랑을 실제로 운영해 본 결과,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결과적으로 저희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세운 첫 번째 목표는 농가소득의 안정화였습니다. 이를 위해 안정적인 가격에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이들을 물색했습니다. 바로 농심, CJ, 오뚜기, 매일유업과 같이 국산 농산물을 활용한 가공상품을 만드는 식품가공회사들이었죠. 록야의 첫 작물은 감자였는데, 여러분이 알고 있는 수미칩이나 포카칩은 국산 감자를 사용합니다. 감자는 가장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 부재료로 많이 활용되는 작물입니다. 

감자 역시 가격이 비쌀 때도 있고 쌀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공회사들은 파종하기 전에 가격을 정해 약속된 물량을 구매하고, 이를 가공해 제품을 판매하는 계약재배[1]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감잣값의 변동이 심해도 감자칩 가격은 그대로인 거죠. 원료의 가격이 아니라 물가상승률 또는 회사의 전략 방향에 의해 제품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첫 거래처는 농심이었고, 록야와 계약한 농가들은 큰돈을 벌기는 어렵지만 손해 볼 일도 없는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농가들의 불안정한 환경이 생산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기존 방식에서 계약재배의 문제점은 거래 신뢰도가 낮다는 데 있습니다. 말로만 가격을 제시하거나 납품 시기를 정해버리는 관행이 있었고, 가격이 올라가거나 내려갔을 때 중간 매매인이 물건을 사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이 모두가 농가의 리스크로 이어지기 때문에, 록야는 종자부터 수확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생산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다행히 결과적으로 생산자들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줄 수 있었습니다.


록야의 경쟁력은 생산자를 단순한 구매대상자가 아닌 파트너로 인식하고, 농가의 성장이 곧 회사 경쟁력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농지는 한정적이고 우수한 농가도 한정적입니다. 따라서 우수한 농가를 확보하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이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강원도 양구에서 시작해서 제주도까지 농가 영역을 확대했고, 2~3년간 운영해보니 우수한 농가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수 농가를 중심으로 작물을 확대했습니다. 두 번째 작물은 콩이었고, 감자와 똑같은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현재는 계약재배 품목을 계속 확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5년 전부터는 유통의 흐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변했는데, 이때 저희는 마켓컬리[2]라는 파트너를 만났습니다. 현재 마켓컬리에는 총 30여 개 작물과 과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축으로 제품 가공 판매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수급하는 국산 농산물을 농심이나 CJ처럼 직접 OEM 가공을 해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면 농가에 더 많은 수익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콩초콜릿과 국산 나물을 활용한 통조림 등을 만들었고, 얼마 후면 아이스 고구마도 출시합니다. 정리하자면, 록야는 농업의 근본인 종자에서부터 생산,유통, 가공까지 모든 영역에 관한 사업을 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기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러한 모델을 10년째 운영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스타트업이다 보니 양경준 대표님께서 늘 강조하시는 ‘기하급수적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록야의 모델은 지역과 사회적 가치,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잘 살리면서 이익도 추구하고 있지만,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기에는 어려운 지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2년 전부터 또 다른 트랙으로 ICT 자회사인 팜에어[3]를 창업했습니다. 팜에어는 농장에 인공지능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농업 시장이 가진 문제에서 출발했습니다. 사실 농업은 가격 기준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자산 가치의 기준이 명확하고 자산이 모여 있는 증권 시장의 로보 어드바이저(Roboadviser)[4] 서비스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인간이 아닌 AI가 펀드 매니저 역할을 하는 겁니다. 주식이 얼마나 올라갈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하고, 애널리스트가 이를 활용해서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모델입니다.


증권시장의 특징은 기업과 투자시장이 존재하고, 기업 가치가 다각도로 분석되어 있다는 겁니다. 누구든지 삼성전자의 주가와 시가총액, 재무정보를 순식간에 볼 수 있죠. 하지만 농산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농업 시장을 크게 보고 사람들이 농업에 투자할 수 있는, 즉 자금이 몰릴 수 있는 시장을 만든다면 농업 시장도 여의도 증권 시장처럼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로컬은 성장할 것이고, 농업과 농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농업 시장이 성장하려면 결국 자금과 우수한 인재, 아이템이 몰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현존하는 가장 큰 시장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팜에어의 목적은 농산물 시장의 가격을 표준화하고, 실제 증권사에서 하는 서비스처럼 정보를 분석해서 제공하며, 향후의 가격을 예측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스마트팜 관련 비즈니스도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농업 환경에서 농가가 할 수 없는 영역을 도와주고,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해외에서 수입하는 소재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록야는 종자부터 식품에 이르기까지 지난해 기준 12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15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매출이 오르고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산자들의 활동과 안정적인 수익 확보를 도울 방법을 모색하며 추가 판로를 확보하고자 합니다. 또한 ICT와 스마트팜을 통해서는 기하급수적 성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결국 세 가지 모델이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록야의 현재 활동이자 미래에 하고 싶은 일입니다.


[1] 계약재배: 일정한 조건으로 생산물을 인수하는 계약을 맺고 행하는 농산물 재배. 농가는 안정적인 판로와 소득을 확보하고 기업은 우수한 품질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수급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2]마켓컬리: 2015년 창업한 온라인 식자재 마켓. 대한민국 최초 새벽배송 서비스 시대를 열었다. 

[3]팜에어: AI를 활용한 농산물 데이터베이스 및 온라인정보 제공 서비스 기업.

[4]로보어드바이저: 로봇(robot)과 투자전문가(advisor)의 합성어. 고도화된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통해 인간 프라이빗 뱅커(PB) 대신 모바일 기기나 PC를 통해 포트폴리오 관리를 수행하는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일컫는다. 직접 사람을 마주하지 않고도 온라인 환경에서 자산 배분 전략을 짜주기 때문에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수수료가 저렴하며, 낮은 투자금 하한선을 설정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용어로 보는 IT)



전정환: 잘 들었습니다. 스타트업으로서 록야가 사업에 대한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한 단계씩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농업 생태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도 고려해서 록야의 활동에 관해 궁금한 점이나 첨언할 내용을 자유롭게 토론하겠습니다. 우선 록야의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5]인 크립톤 양경준 대표님께서 발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양경준: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드리자면,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계약재배를 하는 청년 스타트업 록야에 관한 신문기사를 우연히 접하고는 차를 몰아 강원도 원주에 찾아갔습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이들에게는 크립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가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굉장히 뛰어나다고 느꼈죠. 다만 하나의 작물만 다루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의견과 함께 한국 농업의 한계와 나아가야 될 방향을 고려해 스타트업에 맞는 성장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권 대표님이 소개하신 것처럼 록야는 3단계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첫 번째 단계로 종자부터 식품까지 전체 라인을 세웠고, 두 번째 단계로 인공지능을 접목했으며, 마지막 단계로 스마트팜을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인 농업 스타트업에서 그리기 쉽지 않은 그림을 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록야가 대한민국 농업 스타트업을 대표하는 회사가 된 것을 매우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농업의 한계와 해결 방안


전정환: 잘 들었습니다. 사실 한국의 농업이 지닌 한계에 대해서는 안경아 박사님이 가장 잘 아시리라고 봅니다. 농업의 문제점과 록야가 해결하고자 하는 부분을 연결 지어 생각해볼 때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까요?


안경아: 제주를 포함해 전국의 농업은 지역적으로 주산지화되어 있습니다. 주산지화된 농산물이 소비지로 이동하면 거기서 다시 분산되는 구조입니다. 제주도에서 많이 생산되는 감귤이나 당근, 무도 대부분 도매시장으로 이동한 후 분산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식자재의 품목이 300가지라면, 제주도에서는 10가지 내외를 한 시기에 집중 생산합니다. 이런 구조이다 보니 조금만 날씨가 좋거나 재배 면적이 늘어나면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지방정부는 가격 지지를 위해 처리 비용이 가장 저렴한 산지폐기[6]를 진행합니다.  


이렇듯 가격의 높은 변동성과 유통 비용은 농가의 소득을 줄어들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록야가 계약재배 방식을 택했다고 생각합니다. 농가가 지닌 위험부담을 낮춤으로써 안정적인 생산을 보장하고, 이를 통해 우수한 농가가 계약재배에 참여하게 하는 순환 구조를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안정적인 판매를 원하는 농가와 안정적인 소비를 원하는 가공업체를 연결한 사례는 좋은 모델이 되었습니다. 정부가 관심을 두고 있는 푸드플랜에서도 이와 같은 순환구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교 급식은 지금까지 안정적인 소비처였고, 지역 단위에서 발굴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구내식당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제주도의 수많은 외식업체와 가공업체도 안정적인 소비처로 논의되는 상황입니다. 예산을 동원하고 논의 테이블을 여는 등 공공행정 차원에서도 안정적인 소비처와 농가를 연결하려는 정책적인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정환: 연구자 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신 것 같습니다. 학교 급식이나 공공소비처 사례가 나왔는데, 코로나19 상황에서 학교가 문을 닫게 되니 농산물 유통구조가 깨지면서 여러 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정부에서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이나 즉각적인 해결 방안이 필요한 부분을 스타트업에서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록야가 이러한 부분에서 대응 경험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권민수: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급식이나 기업의 구내식당에 식자재를 공급하던 기업이고, 둘째는 오프라인에 집중하다가 온라인 유통의 적정선을 잡지 못한 기업입니다. 이 두 가지 유형의 기업과 연결된 농가들도 당연히 피해를 보고 있고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화훼 시장입니다. 사실 올해는 태풍 등 또 다른 문제까지 맞물려 농가가 큰 피해를 보았지만, 농산물 가격은 지난 10년을 통틀어 사상 최고치를 유지하고 있거든요. 물론 변동성 자체가 커진 것이라 높은 가격도 농가 입장에서는 피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화훼는 식자재가 아니기 때문에 축제나 졸업식, 입학식이 취소되면서 아예 수요가 사라졌습니다. 


록야는 이러한 화훼 농가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코로나19로 답답함을 느끼거나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한다는 콘셉트로 신선한 꽃을 배송하는 구매 촉진 캠페인을 실행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화훼 농장에서 바로 수확한 후 당일 새벽에 배송되는 이 서비스의 이름은 ‘농부의 꽃’이었습니다. 유통 라인은 마켓컬리의 새벽 배송을 활용했고요. 이 캠페인이 상당히 이슈가 돼서 여러 미디어에 소개됐습니다. 현재 농촌에서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상품을 각 기업체에 연결해주고, 기업들은 복지 차원에서 이를 소비해주는 서비스도 신문사와 협업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봤을 때, 결국 로컬푸드와 지역경제의 본질은 ‘인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주도에서 나오는 작물로 제주도 사람들이 1년 동안 먹고살 수 없습니다. 지역의 식당, 회사, 급식이라는 안정적인 소비처를 마련하는 시도는 좋지만, 한 지역에서 나는 작물은 제한적이라 그 안에서 여러 작물을 골고루 소비하기는 어렵죠. 그래서 인구가 가장 많은 수도권 등으로 모인 후 거기서 다시 분산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제 흐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핵심은 유통의 흐름입니다. ICT 분야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농업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당근마켓과 같은 플랫폼의 형태도 좋고 새로운 유형의 서비스도 좋습니다. 농업 분야에 기술에 기반한 서비스가 생겨날 때 진정한 지역 경제, 로컬푸드의 활성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로컬푸드 활성화를 위해 지역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지역 인구를 늘려서 소비자를 늘리는 것인데요. 이 방법은 그동안 노력해왔음에도 쉽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제주도처럼 관광객을 많이 유입해 소비하게 만드는 겁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땅이 너무 작기 때문에 이를 지역 단위로 나눠서 로컬푸드라고 말하기보다는, 대한민국 전체라는 큰 틀에서 농가가 제값을 받으며 유통할 수 있는 유기적인 구조를 만드는 게 좋습니다. 그러려면 결국 ICT 분야의 인재 또는 다른 분야의 유능한 인재가 농업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5]액셀러레이터: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선발하여 투자 및 종합적인 지원 서비스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곳. 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빠르게 돕는 창업 촉진 전문회사 및 기관을 말한다.

[6]산지폐기: 농산물을 출하하지 않고 재배지에서 폐기하는 것. 수요 대비 공급이 과잉일 때 농산물 가격 폭락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쓰인다.



제주 로컬푸드의 발전 가능성


전정환: 우리가 좀 더 토론해보면 좋을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권민수 대표님은 대한민국 전체를 하나의 지역으로 보고, 거기에 ICT를 결합해서 생산자는 제값을 받고 소비자는 만족할 수 있는 유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모종린 교수님이 파인다이닝이나 팜투테이블 등 해외 사례를 말씀하셨을 때, 저는 작물의 로컬 생산 및 로컬 소비의 가치적인 측면이 발달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권민수 대표님은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해결 방법을 생각하신 것 같고요. 교수님, 록야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모종린: 권민수 대표님의 이야기를 통해 농산물의 유통 흐름과 시장 조성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습니다. 록야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미 훌륭하고, 앞으로도 록야가 계속 발전하길 바랍니다. 


사실 로컬푸드는 전체 농축산물 안에 포함되는 국소적인 개념입니다. 또 전국적인 유통 안에 로컬푸드 유통이 공존하는 것이지, 로컬푸드 유통 자체가 별개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유통하는 농산물 전부가 로컬푸드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진전된 논의를 하려면 문제의식을 상기해야 합니다. 현재 배달 중심의 유통 시스템에는 쓰레기나 탄소배출 등 환경 문제가 뒤따릅니다. 배달 유통 서비스 자체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의존한 유통을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친환경적인 해법을 찾다 보니 로컬푸드와 로컬 유통 시스템을 구상하는 겁니다. 


선진국에서 로컬푸드는 음식의 신선도와 맛이 우수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로컬푸드의 가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는데, 이 정도 국민소득 수준이면 로컬푸드 수요가 매우 높아야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로컬푸드의 대중화가 어려운 이유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만 만들어지면 제주도 농민을 모두 먹여 살리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고소득을 창출할 시장이 있다고 보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로컬푸드로서 유망한 작물 사례가 있는지 알려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전정환: 예전에 안경아 박사님께서 “제주도에서 수입하는 농산물이 연간 1,000억 원 규모인데, 그중 일부라도 도내 생산을 통한 유통구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연구가 진행 중이거나 실제로 시도한 사례가 있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안경아: 권민수 대표님과 모종린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현 구조에서 농업의 발전 방향과 로컬푸드 또는 푸드플랜, 지역 농산물의 순환구조 형성 논의가 항상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전정환 센터장님 말씀대로 제주도 안에서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구조가 있습니다. 도외에서 들어오는 많은 농산물을 도내 농산물로 대체하면, 도내 30,000개 농가 중 소농에 해당하는 20,000개 농가, 그중에서도 1,000개 농가 정도의 소규모 농가가 더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연간 1,000만 원 정도 소득을 올리는 소농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게 되면 제주 지역사회와 농촌사회가 유지되고 다양한 문화가 살아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주력 작목은 그것 나름대로 전국 시장을 대상으로 팔아야 하지만, 제주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농들은 도내의 조그마한 시장에 안정적으로 납품함으로써 소득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전에 로컬푸드로서 유망한 작물에 대해 질문하셨는데요. 당근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당근을 원물로 판매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먹는 건 음식으로 가공된 형태죠.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당근으로 만든 여러 가지 가공제품 또는 요즘 많이 소비되는 HMR[7] 형태로 로컬푸드를 팔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되면 제주도에서 생산한 농산물이 70% 이상 차지하는 음식 또는 가공식품을 소비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당근을 팔아서 수익률 30%를 올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지역 안에서 유통·가공을 거친 완제품을 판매해 농가와 가공업체, 유통업체가 부가가치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구조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모종린: 권민수 대표님의 의견도 궁금합니다. 전국적으로 봤을 때 로컬푸드로 유망한 작물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권민수: 상당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제주도는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지리적·환경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지역의 노지[8]에서는 나올 수 없는 작물이 제주에서는 나옵니다. 또한, 제주산 농산물은 제주라는 이름만으로도 프리미엄이 붙습니다. 오히려 생산물 과잉에 따른 농산물 가격 폭락이 문제이기 때문에 유망한 작물을 찾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해 과잉을 만들지 않는 법을 찾는 일이 상당히 중요하고, 그것이 푸드플랜 정책의 지향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저희 팜에어에서도 과잉을 막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의 예를 들자면, 경작지 상공에 농업용 드론을 띄워서 40분 정도 작동하면 4제곱킬로미터(㎢)의 대면적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 촬영 결과를 보면 땅에서 재배되는 작물이 무엇인지, 앞으로 3개월 뒤에 어떤 작물이 출하될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정보를 기반으로 생산자들이 협의체를 조성하면 각 생산자가 무엇을 심을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농가에서 생산하는 작물이 다양해지면 어느 정도 과잉생산에 의한 가격 폭락도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7]HMR: 홈 밀 리플레이스먼트(Home Meal Replacement, 가정식 대체식품)의 머리글자로, 일종의 인스턴트식품 (즉석식품)이다. HMR은 가정에서 음식을 먹을 때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력과 시간을 최대한 줄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음식의 재료들을 손질한 후 어느 정도 조리가 된 상태에서 가공·포장되기 때문에 데우거나 끓이는 등의 단순한 조리 과정만 거치면 음식이 완성된다. (출처: 두산백과)

[8]노지: 가리거나 지붕이 덮여 있지 않는 땅을 일컫는 말이다. 노지는 주로 경작에서 사용되는 용어로서 시설, 비닐하우스 등의 용어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로컬푸드 대중화를 위한 공공의 역할


모종린: 추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농축수산물 중 어떤 항목은 필연적으로 로컬 유통과 소비를 해야 합니다. 제주 흑돼지나 제주 해산물은 로컬푸드로 내놔야 장사가 되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즐겨 찾는 구좌읍 종달리의 한 음식점에 갔더니 요리에 제주도 해산물을 못 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주시에 있는 큰 횟집 정도나 원활하게 공급되지 시골의 작은 동네에 있는 식당에서는 구하기도 어렵고, 구할 수 있다 해도 비용이 비싸다고요. 이게 사실이라면 제주도 로컬 음식점에 가서 제주도산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여행자는 거의 없을 거예요.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나 제주도 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경아: 아까 말씀드렸듯, 안정적인 소비처가 있으면 공급이 이루어집니다. 도매시장 또는 중도매인한테 판매하던 생산자가 작은 식당에서 원한다고 해서 시골 식당에 납품하기는 어렵습니다. 작은 식당에서 필요로 하는 식자재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이죠. 저는 시골 작은 식당의 사장님들도 제주산 수산물과 농산물을 다양하고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 있는 공급망을 만들어주는 게 공공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지역마다 여러 식당이 있을 테니, 배송을 하러 갔을 때 그 지역 식당 전부에 납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유통의 효율성을 높여줘야 합니다.  


모종린: 두 분 말씀을 들어 보니 정부가 추진하는 로컬푸드 정책과 실제로 세종시나 완주군에서 일어나고 있는 로컬푸드 운동이 논리적으로 상충하는 면이 있습니다. 제주도는 로컬푸드의 불모지나 다름없는데, 다른 지역에서 활발하게 일어나는 로컬푸드 운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권민수: 발표하면서 말씀드렸지만 로컬푸드는 우리가 반드시 지향해야 할 방향입니다. 다만 로컬푸드가 중심이 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로컬푸드 사업이나 관련 비즈니스 모델이 전체 농산물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영향력은 없다고 봅니다.


모종린: 로컬푸드 유통량이 정부가 목표로 하는 전체 농축산물 유통량의 22%가 되어도 그럴까요?


권민수: 그 정도로 유통량이 올라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제주도에서 나오는 작물은 제한적입니다. 도내 생산 작물 외에는 외부에서 반입할 수밖에 없죠. 한편, 제주도 생산 작물도 결국 시장 논리에 의해 비싼 가격을 주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서울이 높은 가격으로 구매해주니까 서울 시장으로 가는 거죠. 농산물이 로컬푸드라고 해도 정부에서 계속 지원할 순 없습니다. 시장은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봅니다. 


민간 중심의 로컬푸드 활성화 사례 중 대표적인 기업 세 곳이 있습니다. 충남 홍성에 있는 홍명완 선장의 다정수산, 아산에서 한우를 키우는 김성기 대표의 아침목장, 강원도 영월에 있는 원승현 대표의 유기농 토마토 농장 그래도팜입니다. 이 세 분은 젊은 농부인데, 정부 지원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키우는 농축수산물의 품종과 재배 방법 등을 끊임없이 브랜딩해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유명 셰프들이 그분들이 생산하는 품목을 사용하면서 브랜드가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민간 대 민간의 영역은 자연스럽게 확장될 겁니다. 다만 이때 필요한 것은 스토리가 있는 생산자를 소개할 플랫폼입니다. 예를 들면 당근마켓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업이 참여한다면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로컬푸드의 활성화가 좀 더 앞당겨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정환: 로컬푸드의 지향점과 활성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시장논리와 생산자의 니즈, 소비자의 수요 등을 따져봤을 땐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안경아 박사님께선 공공이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고, 권민수 대표님은 민간 대 민간으로 서플라이체인을 만들어 가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권민수 대표님께서는 록야나 당근마켓 같은 기업이 플랫폼 역할을 하고, 파인다이닝이나 레스토랑, 개별 생산자들이 그 플랫폼을 활용하면서 서로 연결되는 방식을 생각하신 건가요? 


권민수: 네, 맞습니다. 저는 무조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농산물 소비 중에서도 지역에서 남는 농산물과 식품 문제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것을 ICT 기술을 활용해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 판매장 마감 시간이 임박했을 때 인근 지역 사람들한테 업장 소개와 할인 정보 알림을 보내 잔여 농산물 구매를 촉진하는 방식인 거죠. 


결국 정부는 본인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대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마음으로 이들이 필요한 것을 지원해줘야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돈을 분배하고 지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하나의 산업 생태계에 자금을 투입해 누구든 자유롭게 들어와서 실패하고 성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해결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민관협력과 로컬크리에이터의 중요성


전정환: 공공의 역할까지 다뤄봤습니다. 다른 분들의 질문과 의견을 받아보겠습니다. 구기욱 대표님 먼저 말씀해주실까요?


구기욱: 흥미로운 주제로 진행된 열띤 토론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까지 농사짓는 아버지를 도왔던 터라 절실하게 와닿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아무래도 퍼실리테이터이다 보니 문제와 갈등 해결, 패러독스[9]에 관심이 있습니다. 권민수 대표님과 모종린 교수님의 말씀에는 공통분모도 있지만 분기점도 보이는데, 그 부분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지가 중요해 보입니다. 제이커넥트데이에 이 패러독스를 집중적으로 다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후 아이데이션을 하고 창조적인 논의가 일어나는 시간을 만들면 의미가 더 클 것 같습니다.


전정환: 네, 구기욱 대표님은 로컬푸드가 지닌 패러독스를 더 집중적으로 파고들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최도인 본부장님께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최도인: 저는 권민수 대표님께 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첫 번째는 농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정부 의존성이 큰 분야인데, 기업 활동에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두 번째는 록야는 대기업 유통 파트너를 만났던 초기 단계와 마켓컬리와 같은 소매 유통 파트너와의 협업 관계를 통해 성장 동력을 마련한 단계가 있는 것 같은데요.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이 시기에 권민수 대표님께서 가장 원하는 파트너는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권민수: 말씀하신 것처럼 농업은 정부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 중 하나입니다. 현재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자생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농업 종사자들은 국민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어요. 저는 ‘생산’한다는 행위 자체가 공공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의 주체인 생산자가 어려움을 겪다 보니,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도 영향을 받습니다. 저희도 작은 기업이지만, 대통령 또는 농림부 장관 임명자나 농림사업 시행 지침서에도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갑자기 농업 예산이 바뀌거나 추진해왔던 기존 사업이 사라져버리면 농촌에서 믿고 진행했던 부분도 어려워지거든요. 농협이라는 거대 집단도 있고요. 농협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농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록야를 창업할 때 엘론 머스크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처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세상을 혁신하는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농업이 큰 시장임에도 ‘왜 유명한 부자나 기업가가 없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창업 후 양경준 대표님 같은 분들을 만나면서 인사이트를 얻었는데요. 9년 정도 운영해보니 세상을 바꾸긴 어려워도 잘하면 농업에서는 변화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어요. 


매년 매출을 끌어올려 몇억씩 이익만 남기며 사는 건 의미가 없어 보였고, 현재 농업 환경에 ICT나 기계적인 분야를 접목해서 변화를 일으키는 일을 해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습니다. 농업의 유통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록야가 대안을 만들고자 합니다. 팜에어가 제시하는 안은 미국에 있는 선물거래소 같은 농산물 전자거래소를 만드는 것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진정한 합리적 거래가 일어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저희가 세운 모델이자 지향점입니다.


전정환: 저희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누구인지에 따라 신경을 쓰면서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공감 가는 면이 있었습니다. 한편, 진짜 혁신은 지역에서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데요. 민관협력이 만드는 새로운 구조에서 확산되는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주 스타트업 중에 아일랜드 박스라는 곳이 있습니다. 아일랜드 박스는 남원의 위미 농협과 협업해서 최고의 생산자와 고품질의 감귤을 찾는 한편, 소비자에게는 미리 주문을 받아 가장 맛있는 시기에 배송해줍니다.                     


아일랜드 박스 Island Box 

제주 신선식품 예약배송 서비스, 만감류 판매에 서브스크립션 개념을 도입했다.   매거진을 구독하듯 1년 치 생산물을 소비자가 구독하면, 노지 감귤부터 천혜향, 레드향 등 만감류를 가장 맛이 좋은 제철에 수확해 보내준다.   

아일랜드 박스 홈페이지:   https://www.iboxjeju.com/


그간 유통구조 문제로 감귤 맛이 떨어진 상태로 소비자에게 갔다거나, 생산자가 아무리 맛있는 농산물을 생산해도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없었던 한계를 극복한 겁니다. 이런 사례는 지역 농협이 재량을 발휘해서 협업하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위미 농협 사례가 전국의 농협으로 퍼져나가면 아일랜드 박스는 스케일을 더욱 키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공공의 혁신과 사업 모델이 함께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죠. 아까 공공의 역할과 민간의 역할을 별개로 이야기했지만, 민관협력도 의미 있고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다음은 황세원 대표님께서 의견을 들려주시길 바랍니다.


황세원: 저도 정말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일단 지역에서 로컬 크리에이터로 다양한 시도를 하는 대다수는 관광객을 상대로 사업을 펼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 제이커넥트데이에 갔을 때 참석자들을 보면서 잘 운영되는 케이스에는 공통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서울 또는 외국 대도시의 취향을 특정 지역으로 가져오고, 이것이 널리 알려지면 대도시에 있는 사람이 지역에 가서 소비하는 형태를 취한다는 것이었죠. 옛날부터 지역에 있던 노포 덕분에 지역이 활성화되는 사례도 있지만, 지역에서 시도한 새로운 트렌드가 주목을 받으면서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흐름 역시 탄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로컬이라는 키워드가 도출되고 오랜 대중화 운동의 역사를 가진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10]의 영향이 큽니다. 물류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나 쓰레기로 환경이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그 안에서 소비하자는 것이죠.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지역의 파인다이닝을 먹기 위해 타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면 그것 또한 맣은 탄소발자국을 만들어냅니다. 로컬푸드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유통도 이동도 안 되는 거죠. 


기후위기는 굉장히 중요한 주제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 위기가 없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패턴을 바꿀 수 없거든요. 조금 불편하더라도 삶의 패턴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계기가 생기려면, 실제로 존재하는 위협을 통해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마켓컬리를 많이 이용하고, 농부의꽃 서비스도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니까요.


먼 길을 가려면 시작점이 중요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시작점은 권민수 대표님처럼 젊은 청년들이 로컬에서 일을 하거나 살겠다고 마음먹는 것입니다. 서울 테헤란로에 사무실을 차리고 농업을 중개하는 앱을 만들 수도 있지만, 이제 로컬에 더욱 밀착한 혁신가들이 나와야 합니다. 진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면 제대로 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CIRI가 지향하는 것처럼 각 지역에서 살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진짜 혁신을 꾀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 아무리 애를 써도 농민들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농사를 지어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거든요. 농민들의 자녀나 주변 사람이 볼 때는 ‘농사를 지어봐야 안정적이지 않다’는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고요. 안정성이 화두인 시대이기 때문에 다른 부분이 좋아 보여도 불안정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농사를 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권민수 대표님이 하고 계신 새로운 판로 개척과 농업 거래소 조성 등의 활동이 무척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농업 거래소가 지나치게 금융 쪽으로만 발달하면 악영향도 있겠지만, 결국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고 새로운 기술로 불안정성의 리스크를 헤지(hedge)[11]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농사짓는 일이 회사에서 받는 연봉 못지않게 안정성을 확보하고, 여러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농업에서 혁신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다면 젊은 세대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봅니다. 정리하자면, 청년들이 현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뜻깊은 토론이었습니다. 


전정환: 황세원 대표님께서 중요한 부분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람’이라는 부분, 특히 로컬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에 포커싱해서 잘 이야기해주신 것 같습니다. 권민수 대표님, 지금 록야의 주소는 어디인가요?


권민수: 본사는 원주에 있고, 한두 달 이내에 연구소가 있는 강원도 춘천으로 이전하려고 합니다. 서울에도 사무실이 있고요.


전정환: 서울과 지역을 연결하되, 지역에 밀착해서 활동하고 계시네요. 제가 록야를 인상 깊게 본 것도 농업을 잘 모르는 창업 초기부터 두 청년이 지역으로 갔다는 점이었거든요. 우리가 지금까지 로컬푸드를 둘러싼 여러 현안 과제와 한계점을 나눴지만, 결과적으로는 계속 부딪치면서 무언가 만들어나가는 사람들,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 혁신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 분들이 지역에서 성장하면 또 다음 세대가 유입되어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지역의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지니까요. 하나의 산업을 만들어가는 허브 역할로서 지역이 기능하기 위해서라도 일하면서 살기 좋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점 또한 분명해 보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지역이 매력을 발산하면서 일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하는 흐름이 시작된 것 같아요.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고민이 필요하며, 로컬푸드나 다른 생태계와 관련해서 한계로 다뤄진 부분도 더욱 진전된 논의를 할 수 있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9]패러독스: 일반적으로는 모순을 야기하지 아니하나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

[10]탄소발자국: 개인 또는 단체가 직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온실 기체의 총량. 여기에는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연료, 전기, 용품 등이 모두 포함된다. 대기로 방출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물질이 지구의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는 지표이다. (출처: 지질학백과)

[11] 헤지: 환율, 금리 또는 다른 자산에 대한 투자등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위험자산의 가격변동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본문에서는 새로운 판로 개척, 신기술 도입 등이 농업에서의 위기를 제거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CIRI 3차회의-③편(다음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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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주 지역혁신 싱크탱크 협의체(CIRI) 아카이브 북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완성본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http://www.jccei.kr/archive/community.htm?act=view&seq=7599



기획 지역혁신팀 이경호최소영

제작 더스토리B

 

편집 이다혜배주희 

사진 이성근

일러스트·디자인 고경훈

교정·교열 박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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