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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Nov 02. 2020

코로나시대, 로컬의 가까운 미래 Ⅹ

CIRI 3차회의-③

*CIRI 3차회의-②편(다음글)에서 이어집니다. 




Session.2  초청 대담

로컬푸드 대중화의 열쇠는 무엇인가

 

로컬푸드의 생산·소비·유통을 다각도로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 공심채                    

공심채농업회사법인 

2018년 홍창욱 대표가 설립한 농업회사법인. 제주 서귀포 지역의 결혼이주여성 등과 함께 공심채·고수·바질 등 아열대 채소를 생산하고, 이와 함께 제주의 제철 먹거리를 직거래로 판매한다. 다문화 존중과 수익 나눔을 통한 사회적 취약계층의 자립을 목표로 삼는다.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선순환 로컬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홈페이지: http://www.kongxincai.co.kr/


전정환: 이번 세션에서는 공심채 사례를 중심으로 로컬푸드에 관한 토론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홍창욱 대표님 발언을 부탁드립니다. 



홍창욱: 저는 12년 차 이주민입니다. 인생에 전환점이 필요해서 30대 초반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연고가 전혀 없던 제주로 왔습니다. 그때가 2009년이었는데, 농사를 짓거나 창업할 계획으로 온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2011년경 제주산 농산물을 판매하는 마을기업 무릉외갓집이 법인으로 전환할 때 합류하면서 농산물 관련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릉외갓집은 대정읍 무릉리 마을과 사단법인 제주올레, 벤타코리아라는 후원 기업이 함께 만든 브랜드입니다. 제주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신문 구독 방식, 즉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1] 형태로 매달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서비스를 운영합니다. 


그때까지 사업이나 농업을 해본 경험은 없었습니다. 다만 부모님이 경남 창원에서 단감 농사를 지으셨고 산지 수집하는 상인 역할도 하셨기 때문에 제주 농민과 농업인들의 정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일도 편하게 할 수 있었고요. 무릉외갓집에서 8년 정도 일해보니 서비스 자체가 재미있었습니다. 법인은 안정적인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무릉외갓집은 서비스 특성상 구독자 한 명당 연간 40만 원 정도를 선불로 내기 때문에 소비자가 많을수록 큰 자금이 먼저 모이는 구조였습니다. 농산물을 구입하고 직원들이 급여를 가져갈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매출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사가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무릉외갓집은 서브스크립션 서비스이다 보니 매월 제주 지역에서 나오는 모든 먹거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똑같은 농산물을 계속 보내줄 수 없으니 새로운 것을 항상 찾게 되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유럽에서 큰 매출을 올리는 영국의 대표적인 서브스크립션 서비스 기업 리버포드(Riverford)[2]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제주 국제학교 인근에 저희 매장이 있었는데, 지나가던 영국 부부가 들러 이야기를 나누다 우연히 알게 된 거죠.


 

[1]서브스크립션: 매월 잡지나 신문을 구독하듯, 소비자들이 신제품을 저가에 체험하기 위해 일정액을 내면 업체가 다양한 제품을 모아 배달해주는 신개념 유통 서비스이다. (출처: 매일경제)

[2]리버포드: 영국의 대표적인 유기농 채소 농장 겸 채소 배달 업체. (홈페이지: https://www.riverford.co.uk/) 



일종의 꾸러미 서비스와 비슷한 건데, 백 명 정도의 소비자를 모아줄 테니 서비스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3년 정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제주 식자재를 보내야 했기 때문에 매주 농산물을 수급했고, 채소는 물론 육류, 빵, 유제품 등 다양한 품목을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먹을 수 있는 채소를 구하려다 보니 범위가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배송하는 양도 점점 많아져서 나중에는 거의 택배기사처럼 배송했고요. 쉽지 않은 서비스라 3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저는 제 사업을 해보고 싶어서 무릉외갓집을 퇴사하고 창업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제주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깊이 있게 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직접 농사를 짓기도 했습니다. 변화하는 제주의 기후를 보며 제주의 위도보다 낮은 따뜻한 지역에서 재배하는 채소를 제주에서도 재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사해보니 결혼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가 이 채소의 생산과 소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분들과 함께하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서 2018년에 공심채농업회사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제주에 땅도 없고 농업 관련 기술도 없던 저를 보고 지역 분들은 만류했지만, 제주도를 먹여 살리는 거대 산업인 농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농사를 직접 짓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농사 경험이 없고 땅의 규모도 작을 때 농사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은 작물을 잘 택하는 것입니다. 제주에 필요한 작물이 무엇인지 고민한 결과, 허브의 일종인 바질(Basil)을 가져와 농사를 짓기로 했습니다. 아주 소량으로 소비하지만 음식을 만들 때 없으면 안 되는 작물이기 때문에, 육지에서 100g에 3,000원 정도에 들여올 때 저희가 5,000원 정도에 판매하더라도 지역에 있는 식당은 저희를 찾게 됩니다. 지난해 처음 농사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질이라는 작물이 잘 되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실제 농사를 통한 매출이 1이라면, 1을 올리기 위해 들어가는 각종 비용은 5 정도였습니다. 발생하는 손실을 메우기 위해 무릉외갓집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철 농산물 판매와 유통을 시작했고, 현재는 유통 매출에서 남는 비용을 생산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하우스 9동 규모에서 직접 생산한 바질을 지역 식당에 공급을 하는데, 확실히 기후 등 여러 가지 요소로 인해 생산에 변수가 많습니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안정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결혼이주여성들이 생산 파트뿐만 아니라 더 많은 역할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채소는 한국에 있는 것과 품종이 다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제주도에서 생산할 수 있는 작물의 시범 재배를 그분들과 같이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들은 이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온라인 판매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유리한 점이 많다고 봅니다. 제주 지역이나 타지역에 있는 동포들에게 그들의 모국어로 양질의 농산물을 판매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통 플랫폼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주도는 먹거리와 관련된 물류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당일 수확한 딸기가 맛있다는 걸 알면서도 제주도민은 며칠 전 내륙 지역에서 수확된 딸기를 비싼 가격에 사 먹어야 합니다. 제주에 딸기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는 데도요.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이 풀렸을 때 실험을 해봤습니다. 도내에서 택배 유통이 어려운 작물들만 모아 구글 독스[3]로 주문서를 받은 후 제가 직접 카드단말기를 가지고 소비자에게 가서 결제를 받아봤어요. 제주시 쪽에 생각보다 많은 수요가 있었습니다. 타지역 농가의 작물이나 과일이 들어오는 바람에 가격⋅생산 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제주도 농가들을 모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지역의 작물을 모아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대단지 아파트에 배송할 수 있는 모델도 구상하고 있는데, 아직은 물류 처리 문제를 고민하는 단계입니다.


사업에 있어서 몇 가지 성장 가능성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동안 서브스크립션으로만 운영하다 보니 개별 농축산물의 단위당 단가에 굉장히 취약했습니다. 계약한 농가들에서 나온 농축산물을 좋은 가격으로 매입해줘야 했고, 연간 결제 시스템이라 박스당 단가를 산출하기가 어려웠거든요. 게다가 단품으로 판매하려고 보니 가격 경쟁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생각한 것이 공동구매 방식입니다. 혼자 구매하기에는 비싼 농축산물도 여럿이 모여서 구매하면 유통이 좀 더 쉬워진다는 사실도 확인했고요.


또 다른 강점은 브랜딩과 콘텐츠입니다. 제가 미디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옛날에는 공판장에 가만히 앉아서 받은 물량을 대형마트에 납품해 50억~100억 원씩 매출을 올리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요즘에는 10~20억 원씩 매출을 올리면서 밴드를 운영하고 산지를 직접 뛰어다니면서 상품을 발굴해 영향력을 키우고 소비자와 소통하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에요. 앞으로는 온라인에서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며 브랜딩을 강화할 기회가 더욱 많이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기회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산지와 소비지의 동기화가 정말 빨리 이루어지고 있어서 공판장 시스템으로는 구하기 어려운 품종들이 지역에 하나둘 생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지와 소비지에서 일부 유행 중인 수박무[4]를 구하고 싶어도 현재 공판 시스템으로는 빠르게 확보할 수 없어요. 산지와 소비지의 빠른 동기화에 따라 지역에서 사업을 이어나가는 플레이어의 역할과 역량,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굉장히 커질 것이라는 생각에 한껏 고무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사업에서 유통의 비중이 커지고 있지만, 다양한 시도를 하려면 생산 분야에 자금이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생산 영역에서 가능성이 보이면 다양하게 접목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그중 하나가 요즘 서귀포에서 제일 핫한 가드닝 모임입니다. 가드닝 모임은 제주 서귀포에서 4~5년 전에 시작되었고, 점점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주도에서 제일 유명한 카페가 효돈에 있는 정원 카페 베케[5]이고, 지역에서 유명한 카페 대부분이 과수원 등 생산 현장이 보이는 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농장을 생산 공간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거기서 일어날 수 있는 복합적인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가드닝이고요.


라이브 커머스[6]도 저희에게는 혁신적인 기회입니다. 예전에는 방송을 한 번 하려면 스튜디오 장비, 방송용 카메라가, 전문 진행자, 시스템이 다 갖춰져 있어야 했죠. 라이브 커머스에서는 휴대폰 하나로 현장 생산자의 목소리와 실시간 가격,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등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비용, 시간,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것이죠. 비즈니스 차원에서 봤을 때 앞으로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ICT가 연결됐다고 볼 수 있어요. 1년 후면 관련 규제도 많이 생길 테니, 그전에 우리의 브랜드나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싶어요.


로컬푸드는 로컬화하면 할수록 유통 기한이 짧아집니다. 예를 들면 초당 옥수수는 한 농가에서 일주일 수확하면 끝이 납니다. 재주문을 해도 농가에서 재고가 없다고 하죠. 이처럼 유통할 수 있는 기한이 짧고 상인을 통해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산물이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 같습니다. 거기에 저희의 성장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구글 독스: 구글 문서도구. 구글의 웹 기반 서비스로, 워드 프로세서, 스프레드시트, 프레젠테이션, 그림 등 편집 및 뷰어 기능이 포함되어 제공된다.

[4] 수박무: 겉은 희지만 속은 수박처럼 붉은색을 띠는 채소로, 실제로 당도가 수박과 비슷해 ‘과일무’로도 불린다. 본래 원산지는 중국이나,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재배가 이뤄지고 있다. 수박무는 일반 무보다 8배 이상의 소화효소와 영양분을 가지고 있어 소화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항산화 성분이 일반 무에 비해 10~15배 더 함유돼 있어 노화 방지와 면역력 향상에도 효과적이다. 특히 ‘글리코시놀에이트’라는 강력한 항산화 물질이 들어있어 암 예방 기능을 활성화 하는 항암 식품으로 분류되기도 한다.(출처: 박문각 시사상식사전)

[5] 베케: 제주도 서귀포시 효돈동에 위치한 정원 카페. 조경회사 더 가든이 관리하는 조경수 농장의 일부에 조성되어 제주의 자연스러운 풍광을 느낄 수 있다. 베케는 버려진 돌을 쌓아 만든 무더기나 담장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6] 라이브 커머스: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채널로, 비대면 비접촉을 추구하는 언택트 경제가 부상하면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네이버의 '쇼핑라이브', 카카오의 '록딜라이브', CJ올리브영의 '올라이브', 롯데백화점의 '100라이브'등이 국내의 대표적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이다. 라이브커머스의 가장 큰 특징은 ‘상호 소통’으로 생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이용자들은 채팅을 통해 진행자, 혹은 다른 구매자와 실시간 소통할 수 있다. 상품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줘 비대면 온라인 쇼핑의 단점을 보완한다. (출처: 한경 경제용어사전)



전정환: 수고 많으셨습니다. 질의응답 하면서 더 깊이 있게 들어가 볼 텐데요. 듣다 보니 록야는 스타트업 관점에서 스케일을 키울 수 있는 방향에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공심채는 사회적 기업에 가까운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로컬 생산과 로컬 소비를 잇는 유통 실험의 기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꾸러미 서비스 사례를 들으면서, ‘서비스를 요청한 사람에게는 왜 그런 니즈가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선진국인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라 로컬푸드에 대한 니즈가 있었던 걸까요? 가격도 비쌌을 텐데 왜 굳이 제주에서 수급하려고 했을까요? 또한, 농축산물 수급과 유통의 어려움으로 3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는데 그 문제들이 앞으로도 풀기 어려운 것일지 생각해보는 일도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또 하나는 바질이라는 특정 작물에 집중해서 지역 생산, 유통, 소비까지 이어갔을 때 더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구매 수요가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분명히 로컬푸드를 원하는 소비층이 있는 것 같아요. 제주의 특징 중 하나가 조금 더 앞서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소비층이 얼마나 형성돼 있는지 궁금했는데, 홍창욱 대표님의 실험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자유롭게 질문하면서 의견을 교류했으면 좋겠습니다. 록야의 권민수 대표님 이야기부터 들어보면 좋겠는데요. 록야와는 또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 공심채 사례를 보면서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권민수: 우선 저는 무릉외갓집을 상당히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굉장히 재미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업가를 개인적으로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합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기업이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통량을 늘리면 결국 상품 판매량과 고정비용이 비례해서 증가하지 않을까 싶은데, 실제로도 그런지 궁금하고요. 기존 플랫폼을 통해 제주 농산물을 대한민국 전체 국민에게 유통할 계획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홍창욱: 실제로 유통 물량을 확대해보니 창고임대료나 인건비 등 부대비용이 당연히 함께 증가했습니다. 그래도 생산과 유통을 같이 하다 보니 작업 효율을 올릴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고요. 현재는 매출에 비해 인건비 지출이 상당하지만, 투자의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희의 강점은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많고, 향후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분야의 인력과 같이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기업이라 정부 지원을 받는 부분도 있어서 고민은 덜한 편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이어가자면, 저희는 기존 플랫폼을 통해서 계속 유통할 계획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저희의 물건을 받아서 소비자에게 파는 분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산지 생산자인 공심채라는 브랜드가 또 다른 플랫폼을 통해 노출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봅니다. 향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만나서 협업하고 발전할 기회가 많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로컬푸드를 관통하는 여섯 가지 키워드와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


전정환: 이제 세션 1에서 다뤘던 주제와 공심채 사례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심화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또 다른 질문이나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양경준: 우리가 논의하는 내용에 ‘푸드, 로컬, 수요, 공급, 유통, 물류’라는 키워드가 있는데, 이 여섯 가지를 동시에 논의하다 보니 방향이 잘 안 잡히기도 합니다. 개념을 먼저 정리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키워드에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록야의 첫 작물인 감자도 시작은 로컬이었습니다. 그것도 해외에서 수입된, 기원이 명확한 로컬에서 시작했는데 수요가 많아지다 보니 지금은 전 세계에서 소비하는 아이템이 되었죠. 수요가 커지면서 공급이 자연스럽게 늘었고,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니 유통이 생겼고, 유통 규모가 커지다 보니까 물류가 연결되는 흐름으로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유통과 물류 분야는 상당한 비즈니스화가 이루어졌죠. 비즈니스는 수요와 공급을 매칭하는 과정에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유통과 물류에서는 두 가지 트렌드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유통구조의 혁신입니다. 정부 주도 아래 유통단계를 줄이는 방향으로 혁신을 추구했고, 민간에서도 유통구조를 혁신하려는 수요가 생기다 보니 이를 추구하던 마켓컬리나 쿠팡과 같은 플랫폼이 점점 커졌습니다. 유통 혁신이 일어나면 대규모의 플랫폼이 나오는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요. 이 과정에서 굉장히 혁신적이면서 재미있는 아이템을 가진 당근마켓이라는 기업이 등장합니다. 당근마켓은 수요자와 공급자를 플랫폼이 직접 연결하는 방향으로 갔어요. 아이템의 제한이 있긴 하지만, 유통구조 혁신 관점에서는 극단에 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물류 거리를 단축한 혁신입니다. 과거의 물류 기지는 도시 외곽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물류 종사자들이 도심으로 물품을 가지고 오는 과정에서 바이러스 전파 위험이 높아졌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일도 꺼리게 됐습니다. 그렇다 보니 전세계적으로 물류 기지가 지역사회 내부로 돌아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유통은 구조의 혁신이 있었고 물류는 거리의 혁신이 일어난 거죠. 이 흐름은 로컬이냐 아니냐와는 관계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의해서 유통과 물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도식화가 가능해지는데, 이 맥락에서 로컬푸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간단한 질문 하나를 하겠습니다. 만약 로컬에 식당이 100개가 있다고 하면 지역사회 소비자들은 100개의 식당을 골고루 방문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100개의 식당 중에서 사람들이 가는 곳은 어디이고 가지 않는 곳은 어디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말은 수요가 늘었다는 의미인데, 여기에는 맛이 좋다거나 재료가 신선하다거나 하는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홍창욱 대표님과 전정환 센터장님이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국제학교 인근 거주 외국인은 왜 로컬푸드를 원했을까요? 재료의 퀄리티를 떠나서 그들은 이미 로컬푸드를 소비해야 한다는 문화 의식이 있었을 테고, 그것이 수요를 키우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안경아 박사님과 모종린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로컬푸드를 활성화하기 위해 공공이 나서서 지역 농산물을 가공하고 유통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을 때 과연 지역의 소비자들이 주도적으로 구매를 할까요? 저는 결과를 알 수 없다고 봅니다. 소비자의 수요를 자극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공공 주도의 시스템이라는 점이 소비를 자극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식당은 장사가 잘되고 어느 식당은 안 되는 이유, 즉 수요를 자극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선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실험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에 관한 해법은 로컬 크리에이터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로컬 크리에이터가 지역에서 나오는 농산물과 식자재를 가지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는 거죠.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로컬 크리에이터가 많아질수록 지역 농산물 소비가 늘어날 것이고 성공과 실패 사례도 계속 나올 겁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로컬푸드의 수요를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할 것이고요.현 단계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로컬푸드 대중화를 위한 유기농 슈퍼마켓과 골목상권의 발전 가능성


전정환: 비즈니스가 성립하려면 수요의 증가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유통과 물류의 혁신 트렌드를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로컬 크리에이터의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아까 황세원 대표님께서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지역에서 다양한 실험에 참여할 청년들이 있어야 하겠고, 그들을 지지해줄 공공의 역할 또한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종린: 양경준 대표님이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유통과 물류의 혁신이 결국 로컬을 향해 가고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에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언급해주셨는데, 제가 발제를 통해 제시한 세 가지 방안 중 로컬푸드 골목상권 이야기가 이와 연결됩니다. 결국 상권 개발자들이 로컬 크리에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미국 로컬푸드의 역사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움직였습니다. 제일 큰 축은 환경운동 차원이고, 다른 한 축은 트렌드 차원입니다. 트렌드로서의 로컬푸드는 힙하고 쿨하며 고급인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또 하나의 축은 유통과 물류 혁신 덕분에 로컬푸드가 더 싸다는 측면입니다. 이 세 가지 인식이 함께 있어야 로컬푸드 대중화의 동력이 생깁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환경운동에 대한 인식이 약하고, 그나마 싸다는 점을 어필하는 케이스가 세종시와 완주군 등 일부 있습니다. 힙하고 쿨한 것은 거의 상관이 없죠. 아직 한국에서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분명히 혁신적인 로컬 크리에이터가 나오면 현 구조를 바꿔서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수준까지 갈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유기농 슈퍼마켓과 로컬푸드 골목상권 이야기도 해봤으면 합니다. 한국도 한살림과 올가, 초록마을 등 규모가 큰 기업들이 있는데요. 이런 기업들은 유기농만 취급하지 로컬푸드는 다루지 않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미국의 홀푸드마켓처럼 한국도 유기농 슈퍼마켓이 로컬푸드를 통해 프리미엄 슈퍼마켓으로 올라서면 대형마트들도 로컬 지향으로 움직일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죠. 현재 서울에서 마르쉐@와 리버마켓 중심으로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 로컬푸드 상권 역시 더 늘어날 것 같은데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전정환: 저는 한살림을 애용하는 소비자인데, 서울과 제주에서의 사용 소감이 각각 다릅니다. 서울에서 한살림을 이용할 때는 친환경적인 면에 주목했습니다. 이때 친환경은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한 것이지 가치 중심의 소비를 통해 농가를 살리겠다는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더라고요. 단순히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주에 와서 한살림을 이용해보니 물류의 문제로 상품들 대부분이 시들거나 맛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태풍이 오면 아예 물건이 없기도 했고요. 또한, HMR류의 식품이 점점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이쿱과 같은 후발주자가 트렌드에 맞는 제품들을 많이 생산하니 경쟁구도가 만들어졌고, 한살림만의 정체성이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제주 노형동에 생긴 ‘제주담을’이라는 한살림 매장은 조금 달랐습니다. 물류창고가 같이 있고 판매하는 식자재의 1/3이 제주 로컬푸드였어요. 오픈 첫날 방문했을 때 지역의 딸기 생산자가 오늘 아침에 딴 딸기라며 자신의 제품을 소개해서 먹어 보니 정말 맛있더라고요. 그 이후에는 제품이 있으면 바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노형동을 중심으로 로컬푸드의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한살림이 실험해본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살림이 가치 중심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힙한 로컬 크리에이터스러운 기업으로 성장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한살림이 못 한다면 새로운 로컬 크리에이터가 해야 할 부분일 테고요. 이제 유기농 슈퍼마켓의 한계와 로컬푸드 골목상권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권민수: 모종린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가지 쟁점 모두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무농약 재배를 인증받은 유기농산물’을 친환경 농산물이라 부릅니다. 저는 친환경이 추구하는 방향에 안전과 건강이 있다고 보지만,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 농부들이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친환경 농업의 본질은 토양을 살리는 데 있거든요. 사실 대한민국은 OECD[7] 국가에서도 일반적인 관행 농업에서 가장 많은 질소를 쓰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결국 토양 문제는 환경 문제이고, 인간에게 여러 가지 해로운 영향을 끼치죠.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친환경 농산물을 살 때 가치 소비를 한다는 인식을 갖는 게 필요하고요. 


친환경 농산물 유통의 대부분은 공공 급식이 차지합니다. 그래서 코로나19 위기 상황인 지금 친환경 농가들은 친환경 농업을 한 이후에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을 거예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까요. 매번 유통했던 채널이 없어지는 코로나19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친환경 농가들은 너무 힘든 상황이 되는 거죠.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합니다. 


즉, 소비자 스스로 토양을 살리는 가치 있는 소비를 한다는 인식을 갖되, 유기농법을 하지 않는 농부가 나쁘다는 인식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다음 아젠다로 넘어가겠습니다. 사실 저는 록야의 비즈니스 모델로 직거래 장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마르쉐@, 리버마켓 외에도 과천에서 연간 14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바로마켓[8]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 곳이 지향하는 가치가 다릅니다.


리버마켓은 고정된 장소에서 마켓이 열리지 않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번갈아가며 마켓이 열리면 기존 셀러들이 이동하며 판매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각 지역에 있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마켓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약간 폐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마르쉐@도 행사를 이끄는 주체가 있고, 거기에 셀러들이 참여해서 판매하는데, 마르쉐@는 유기농보다 한 걸음 나아간 자연재배 형태의 농산물과 가공상품이 많습니다.


리버마켓이 예술성, 마르쉐@가 공공성을 지향하는 마켓이라면 바로마켓은 순수하게 경제성을 지향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로컬푸드는 싸다”는 개념을 정확하게 적용한 것이죠. 바로마켓은 과천 경마공원에서 경마대회가 없는 날 열리는데,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와서 프리미엄 농산물을 혁신적인 가격에 공급하니 과천 인근 지역 거주자들이 매주 찾아옵니다. ‘프리미엄 친환경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생산자들이 직접 판매한다’는 매력적인 요소를 다 갖춘 놀라운 모델입니다. 저는 공공성과 예술성을 가진 마켓과 경제성을 가진 마켓을 결합하면 가장 좋은 모델이 나오겠다고 생각했고, 다음과 같은 모델을 구상했습니다.  


검증된 식자재가 다양하게 준비돼 있고, 토크콘서트 같은 콘텐츠를 통해 유명 셰프들이 참여하며, 지역 생산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마켓에서 식자재를 소비하고, 요리해서 만들어 먹고, 생산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지역 농산물의 진정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19로 시도하지 못했지만 언제든 시작할 계획이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전환해 라이브 커머스로 해볼 수 있는 방법도 준비하고 있고요.

이미 시대가 변하고 있고, 시대에 따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농촌과 지구를 지키기 위해 각자 해야 하는 역할과 첨단기술이 결합한다면 지금까지 나눈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봅니다. 논의에만 머무르는 것이라 아니라 실행해서 생각을 증명하는 데 남은 시간을 쓰는 것이 저의 계획이기도 하고요. 사실 그동안 로컬에 대해서 오해한 부분도 있었는데,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어 유익했습니다.


전정환: 감사합니다. 홍창욱 대표님도 유기농 슈퍼마켓과 로컬푸드 골목상권에 대해 의견을 말씀해주시겠어요?


홍창욱: 한살림이나 생협 등의 마켓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견고한 생산자 네트워크가 있고 또 협동조합 형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조금 경직된 구조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측면에서 제주 로컬의 특징을 살리고 어떻게든 변화를 시도한 제주 한살림의 제주담을 매장 사례는 매우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주 이주민들의 네트워킹과 소통의 장이었던 플리마켓은 매우 활성화된 상태였습니다. 수많은 관광객이 플리마켓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아갈 정도였죠. 그런데 음식을 팔면 안 된다는 조례가 생기고, 민원이 발생하고, 마켓들이 상업화되면서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웠습니다.


마르쉐@와 같은 로컬푸드 마켓은 전국적으로 수많은 소농의 참여를 통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들은 다시 지역에 내려가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많은 영향력을 펼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로컬푸드와 관련된 오프라인 활동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직거래 장터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로컬 직거래 장터의 활성화를 위한 불씨는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제주도에서도 로컬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지원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정환: 감사합니다. 아까 말씀하신 이주민 중심 플리마켓은 급하게 불씨가 사그라든 경향이 있었어요. 잘 진행했다면 지역에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다는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셨습니다. 다음은 안경아 박사님께서 발언해주시면 됩니다.



안경아: 저는 한살림 제주담을 매장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파머스마켓을 두고는 제주 지역의 올바른 농부장[9] 팀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농산물을 파는 방식으로 하면 제주에서는 승산이 없을 것 같다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넣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정확히는 관광지 옆에서 농산물을 판매하고 요리를 만들거나 소비자가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장을 열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갔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서 제주의 파머스마켓은 경제성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하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보통 1~2회 장을 봅니다. 매번 장을 볼 때마다 지역 농산물로 채우면 고정적인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걸 놓치면 안 된다고 봐요. 제주를 방문하는 여행자의 소비는 간헐적이지만 지역 주민의 소비는 일상적이고 규칙적입니다. 이들의 소비 물품은 신선한 농산물 또는 가공식품일 텐데, 로컬푸드가 수요를 자극할 포인트는 신선함이 아닐까 합니다. 제주의 감귤이 서울 공판장까지 가는 데 7~10일 정도 소요되는데, 도내에서 유통하면 2~3일 안에 먹을 수 있거든요. 제주도 농산물을 구매하는 이유를 설문조사했을 때도 답변 1위는 ‘신선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지점이 있습니다. 설문조사의 답변 2위는 ‘어릴 때 먹던 식재료’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례로 서울에 유통되는 감귤은 한 가지 종류이지만, 제주도에 오면 서울에서는 맛보기 힘든 다양한 잡감류가 있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먹던 것이 로컬푸드 매장에 있다면, 로컬푸드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구매하는 이유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단가가 저렴하기 때문에 매출에 큰 영향을 못 줄 수도 있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판매 전략과 연결할 것인지가 매출에 많은 영향을 끼칠 거라고 봅니다.


전정환: 신선함과 고유한 농산물이라는 수요 자극 포인트를 말씀해주셨어요. 지역 주민들이 어렸을 때 먹던 것이라는 가치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고요. 지역 주민들의 일상적인 소비 포인트도 의미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구기욱 대표님께서 발언해주시겠습니다. 


구기욱: 정말 흥미진진하게 들었습니다. 우선 한살림은 제가 리더 워크숍을 진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관련해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은 한살림의 ‘생명 존중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합의 급속한 확장으로 설립 초기 정신이 말단까지 전파된 건 아니지만, 그 정신을 끊임없이 지키려는 노력이 오늘날의 한살림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가나 초록마을과 같은 조직과 경쟁관계가 되면서 일부 정체된 느낌이 있지만 성장의 바탕에는 한살림만의 정신이 있었음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를 담아내지 않고 경제 논리로만 풀었을 때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이 얼마나 가치로운 것인지 깊은 탐색도 필요할 듯싶고요.


첫 번째 CIRI 회의에서 홍기빈 소장님이 말씀하신 기본소득의 개념도 떠올랐습니다. 누군가가 벌어들인 것을 나눠주는 재분배 성격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두가 플랫폼에 기여한 것을 정당하게 돌려받는 것에 가까웠거든요. 우리는 흔히 가치냐 경제냐로 관점을 나누는데, 그것을 통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은 제주 로컬의 어떤 정신을 살려내 이를 정립하고 확산하는 과정에서 공적 투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발언해주신 모든 분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시간이었습니다.


전정환: 한살림 리더 워크숍 경험을 통해 좋은 정보를 주셨고, 공공이 제주 로컬의 정신을 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정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파타고니아(Patagonia)[10]를 떠올렸습니다. 파타고니아는 친환경 정신을 가치로 삼아 수익을 창출하고 있고, 소비할수록 자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진화했으니까요. 우리가 논의한 영역에서도 이런 시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다음으로 황세원 대표님께서 발언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황세원: 사회적 경제를 전공한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생협에 대해 약간의 오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생협은 올가나 초록마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입니다. 규모로 보면 아이쿱이 제일 크고 한살림, 두레 등 3대 생협만 해도 대기업 수준입니다. 생협은 기본적으로는 소비자 조합원이 중심이지만, 지역 생산자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태양광 사업자 등 농업 외 분야와도 관계를 맺고 있어요. 생협은 매우 가치 지향적인 조직이고,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손해를 볼 의지도 있는 소비자들의 모임입니다. 물건값이 싸면 더 좋지만 좀 비싸더라도 가치가 있다면 살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모인 독특한 조직이죠. 물론 조직이 빠르게 확장되다 보니 가치 지향적인 면보다 경제성에 중점을 두고 들어온 사람도 있지만, 핵심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본래 추구하던 가치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특히 친환경에 대한 가치 지향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생산 시스템이 환경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이 밝혀지면 이를 수정하는 의사결정이 빠르게 이뤄집니다. 원래 생협 자체가 생산자의 농산물이 무농약인지 아닌지 검증할 수도 없고 인증제도도 없던 시절에 생산자와 직접 거래하면서 신뢰 비용을 줄이는 혁신을 시도한 모델입니다. 예를 들면 비닐 장판 위에서 생산된 천일염에 플라스틱이 검출되는 파동이 일어났을 때 일반적인 식품 기업은 대부분 천일염을 대체할 대안을 찾지 못했지만, 아이쿱은 해저 심층수를 이용한 소금이라는 대안을 빠르게 찾아냈어요. 이런 방식으로 의사 결정을 빠르게 내린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사실 품질을 신뢰하고 담보할 수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판매하지 못하는 로컬의 농민들도 있잖아요. 그럴 때 생협이 좋은 구매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생협에 대해서는 편견 없이 관계를 맺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생협은 흩어져 있는 거버넌스라 서울 본부라는 개념도 없어요. 풀뿌리 같은 조직들이 모여서 의사결정을 합니다. 개인적인 관계는 전혀 없습니다만 제가 몇 년째 연구하는 조직이라 좋은 점을 강조하고 싶고, 이런 부분에 관심을 더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좋은 얘기를 많이 들어서 도움이 됐습니다. 왜 혁신가들이 지역과 농업에서 일하고자 하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진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널리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정환: 감사합니다. 생협에 관한 여러 가지 오해를 바로잡아주신 것 같습니다. 앞서 로컬 생산 및 유통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에만 포커싱해서 그렇지 생협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은 최도인 본부장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최도인: 저는 소감 정도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우선 로컬푸드가 로컬 경제에 갖는 의미와 문화적인 의미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책과 기후, 생산 환경의 변화에 따라 급변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엄청난 돌파력을 갖고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록야와 공심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모종린: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생산적인 토론이었습니다. 오늘 나온 이야기들을 잘 보완해서 제이커넥트데이에 좀 더 완성도 있는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경준: 이런 주제로 논의할 기회가 없었는데 참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일단 로컬푸드 논의 이전에 한국과 전 세계 농업의 현실을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은 토양 대부분이 산성이라 농사에 부적합합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농민들이 열심히 분투하고 계신 거죠. 우리가 유기농이라고 말하는 것도 땅에서 어떤 영양성분을 빨아들인다기보다, 인위적으로 영양성분을 집어넣은 것이 더 많습니다. 또한 기후변화의 원인 중 하나는 인간의 과잉소비로 인한 자연 파괴입니다. 인간이 소비하는 식품이 늘어나다 보니 농축수산물을 확보할 수 있는 땅을 늘리기 위해 자연을 파괴해버린 거죠. 마지막으로 한국의 농업인구는 현재 OECD 국가 평균 대비 5~6배 정도 많습니다. 그리고 농업인구 고령화 때문에 20년 이내에 1/6로 줄어들게 된다고 해요. 이 말인즉 앞으로의 농업은 사람이 많이 투입되지 않고, 노지를 활용하지 않는 형태의 스마트 농업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구가 변화함에 따라 편리함과의 다양성이라는 두 흐름이 공존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다양성이 존중된다고 해서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편리함을 추구하는 플랫폼은 갈수록 활성화되고 규모도 커질 것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다양성을 이유로 로컬 크리에이터의 활동도 더욱 많아질 겁니다. 이 두 가지는 변하지 않는 트렌드이며 10~20년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두 진영을 대표하는 사례가 스타벅스와 동네마다 있는 독립카페인데요. 서울에 있는 스타벅스에서만 판매하는 컵이 있고, 시애틀 스타벅스에서만 판매하는 굿즈들이 있어요. 이렇듯 플랫폼도 로컬라이즈(localize)[11]화 되고 동시에 로컬 중에서도 플랫폼화되는 것이 등장할 겁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제주가 실험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는 섬이기 때문에 물류와 환경적인 요소에서 다양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로컬 크리에이터가 많아지고 로컬 크리에이터 중심의 플랫폼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한라산 소주가 좋은 사례입니다. 한라산 소주는 사용하는 원료나 발생 지역 등이 전형적인 로컬인데 이미 전국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데다 인지도 역시 국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성과를 올렸죠.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로컬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로컬푸드 관련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제주뿐 아니라 전국 단위로 소비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오늘 나온 논의 등을 통해 제주의 로컬 크리에이터가 활성화되고 로컬 크리에이터 중심의 플랫폼까지 등장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전정환: 회의의 취지를 알아주신 것 같습니다. 논의를 통해 지식이 창출되고 제주를 알아가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다양한 부분에서 협업 가능성을 높이고 이를 실제로 실행하는 일도 저희가 만들어가고 싶은 생태계의 그림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정원 팀장님, 이경호 팀장님이 간단하게 소감을 이야기하신 후에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정원: 지역의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센터의 직원으로서 로컬 크리에이터를 일반적인 스타트업과 같이 큰 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됩니다. 특히 농업 분야에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전에 잠깐 미국에 체류한 적이 있었는데, 농산물을 소비할 때 사람들의 판단 기준은 내 몸에 좋은지 아닌지에 있지 로컬의 가치가 우선은 아니었습니다. 유기농산물이 신선한 상태로 소비자에게 공급되려면 가까운 거리에서 오는 게 좋습니다. 미국은 땅이 넓으니까 자연히 가까운 거리에 있는 로컬 생산자의 제품을 소비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사실 로컬의 유기농가는 절대 대기업 형태의 농업기업이 될 수 없습니다. 규모가 작은 농업 생산자들이 조합을 형성해 유기농산물을 시장에 제공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단기간에 크게 성장하려는 스타트업으로 보는 게 맞을지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이경호: 개인적으로는 로컬푸드라는 주제가 굉장히 의미 있었다고 봅니다. 앞서 현지 생산이 가진 신선함으로 수요를 자극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사실 수요는 많다고 봅니다. 단지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할지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닐까 싶고요. 이 부분에서 홍창욱 대표님과 권민수 대표님이 크게 기여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일본 이와테 현 모리오카 지역에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지역 내에 있는 생산품들을 협동조합을 통해 열 개 거점별로 나누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로컬 생산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의 좋은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를 제주도나 강원도 같은 특정 지역에서 활성화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전정환: 네, 로컬푸드 주제는 제이커넥트데이에 심도 있게 다뤄서 지속 가능한 논의와 좋은 결론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7]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회원국 간 상호 정책조정 및 협력을 통해 세계경제의 공동 발전 및 성장과 인류의 복지 증진을 도모하는 정부 간 정책연구 협력기구이다.

[8] 바로마켓: 전국 최대 규모의 농산물 직거래장터. 매주 화, 수요일 과천 경마공원에서 열린다.

[9] 올바른 농부장: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과 안덕면에서 열리는 유기농산물 직거래 장터

[10] 파타고니아: 친환경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는 사명을 내걸고 매출의 1%를 전세계 수백 곳의 풀뿌리 단체에 지원해 그들이 환경을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돕는다.

[11] 로컬라이즈: 특정 언어·문화 등 현지 사용자에 맞게 적용하는 것.




*CIRI 3차회의-④편(다음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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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제주 지역혁신 싱크탱크 협의체(CIRI) 아카이브 북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완성본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http://www.jccei.kr/archive/community.htm?act=view&seq=7599



기획 지역혁신팀 이경호최소영

제작 더스토리B

 

편집 이다혜배주희 

사진 이성근

일러스트·디자인 고경훈

교정·교열 박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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