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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Dec 26. 2020

마케터가 보는 요즘 커뮤니티 전략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2020 로컬 브랜딩 스쿨’ 마스터로, ‘BTS 포럼’의 기획자로, 문화마케팅그룹 머쉬룸 대표로 활동 중인 마케터 김영미가 주목하는 다음 화두는 ‘로컬 커뮤니티’다. 최근 두드러지는 로컬 커뮤니티 활동부터 비즈니스로의 확장까지, 이 흐름을 지켜보는 그의 발견과 식견.


내가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원대한 전략에 따라 취한 선택은 없다. 그러나 하나하나를 실로 꿰어보면 소비자와 소통하는 더 나은 마케터가 되기 위한 여정의 그럴듯한 서사가 만들어진다. 꽤 자연스러운. 요즘은 ‘자연스럽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마케팅의 기반은 다름 아닌 살아 움직이는 시장이고, 시장의 기본은 (이제야 비로소 다시) 소비자이며, 소비자에 닿는 방향성은 일상의 필요와 비일상적인 욕망 사이를 오가는 충돌의 힘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에, 마케터의 기본 태도는 스스로 소비자로서의 일상과 욕망을 원 없이 경험하고 분석하며, 나와 다른 소비자를 깊이 있게 관찰하고, 여기서 얻은 통찰을 시장에 적용하고 빠르게 테스트하는 것이 가장 우선된다고 할 수 있다. 관찰하는 방법과 통찰을 얻는 과정, 그리고 시장에 적용하는 방법에서 수많은 마케팅 기법이 파생되지만, 마케터의 기본은 경험–관찰–통찰–적용–분석의 끊임없는 선순환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이러한 마케터의 태도가 몸에 배어 있는 나는 미국에서 거주하다 귀국해 복직했던 2016년 한국의 마켓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수많은 개개인의 노드(node)가 기존 경계를 뛰어넘어 연결될 수 있으며, 이 연결에서 생겨나는 콘텐츠의 양을 브랜드로서는 감당할 수 없음이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시장의 위계가 무너지고, 드디어 소비자가 왕관을 쓰는 시대가 도래했다. 마케터의 짐작이나 예상에 따른 기획이 아니라, 전적으로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시장은 세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이를 테크놀로지가 뒷받침해주었다. 소비자가 주도하고 테크놀로지가 지지해주는 시장은 이전의 위계질서가 뚜렷했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신세계였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지만 ‘내 방, 내 집, 내 동네에서부터 먼저 잘해보자’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해외 진출을 하려면 영어를 잘해야겠지만, 우선은 모국어로 나의 일상, 나의 고민, 나의 꿈, 나의 좌절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는 듯했다. 전직 잡지사 디렉터라는 이력도 좋지만, 이젠 나의 플랫폼에서 내가 만든 콘텐츠로 팬들과 소통할 거라는 메시지도 들려왔다. 수많은 크고 작은 노드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마케터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주목한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은 ‘당근마켓’, ‘방탄소년단’, 그리고 ‘디렉터파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오픈한 전 <엘르> 매거진 뷰티 디렉터 피현정 이사, 마지막으로 취향 중심의 소규모 학습 커뮤니티였다. 당시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하고 경험한 학습 커뮤니티만 하더라도 트레바리, 브런치, 비마이비, 리뷰빙자리뷰, 헤이조이스, 스여일삶(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 등 다수였다. 참여하고 싶었으나 기회를 갖지 못했던 커뮤니티로는 낯선대학, 소셜살롱 문토, 남의집프로젝트, 그리고 나의 일과 삶을 스스로 기획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인 빌라선샤인이다. 몇몇 커뮤니티의 세션에 신청해 경험한 뒤로는 나의 취향과 목적에 적합한 형태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기획과 집행을 하게 됐다. 그 시절, 강남 끝자락에 있던 내 아파트의 문을 열어 거실에서 마케터들의 연결과 연대를 위한 모임을 오픈한 것이다.


또 당시에 너무나 열독하던 책이 있었는데, 철학을 전공한 교수님이 쓴 것이라 다소 버겁긴 했지만, 운 좋게 저자를 섭외해 모임에 초대했다. 주변 마케터들을 모아 각자 책을 완독한 후 첫 모임을 가졌다. 이름 하나 없이 시작하긴 했으나, 아무래도 가정집 거실이 주는 편안한 분위기가 작용했던 터라 ‘북, 살롱’이라는 단서를 얻게 됐다. 경계를 넘나들며 변화하는 마케터가 되었으면 하는 방향성을 담아 ‘무경계’라는 단어까지 연결 지었다. 이내 ‘#무경계북살롱’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무경계북살롱은 한 달에 1회 모임이 기본이었으나, 많을 때는 한 달에 주 3회까지 열리곤 했다. 이 커뮤니티는 변화하는 시대를 관찰하고 통찰하기 위해 마케터들이 갖춰야 할 태도와 철학,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최적의 책을 선별하고, 저자를 초대해 이를 정독한 마케터들이 서로의 관점에서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거실의 소파나 접이식 의자에 동그랗게 앉아 시간을 보냈고, 솜씨는 없지만 정성껏 준비한 식사와 차, 과일을 곁들였다. 퇴근 이후 저녁 7시 30분에 시작해 보통 휴식 없이 3시간은 기본이었다.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 누군가는 급히 떠나기도 했지만, 남은 이들의 토론은 이어졌다. 저자로 먼저 초대된 이가 이후 세션에 신청해 참석하기도 했고, 한 번으로 끝낼 수 없다며 3주 연속으로 한 사람의 세션을 진행한 적도 있다. 몸과 마음에 대한 테마로 진행한 세션에서는 마케터의 가족이 동석했으며, 명상가이자 자연 요리 전문가의 세션 후에는 무경계북살롱의 모든 참석자를 위한 특별한 쿠킹 클래스가 별도로 오픈되었고, 지금까지 매월 이어지고 있다.


무경계북살롱을 통해 같은 책을 읽고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구나, 하고 속으로 감탄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1년간 꾸준히 진행하는 동안, 이 의지적이고 주도적인 학습이 스스로 책을 읽을 때, 저자에게 의도를 들을 때, 저자조차 미처 몰랐던 새로운 관점을 참석자들이 공유할 때, 이를 자신의 삶과 업무에 적용했을 때 점차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1년간의 학습이 차고 넘쳐 급기야는 사흘간 별도의 포럼을 오픈하게 만들었다. 500여 명의 유료 관객을 유치했던 포럼은 그 어떤 스폰서 없이, 오롯이 무경계북살롱을 경험한 마케터 개개인이 스스로 홍보와 운영에 참여했던 ‘오가닉’한 행사였다. 18명의 연사, 12여 명의 패널이 거쳐간 깊이 있는 강연은 방송사의 메인 뉴스와 신문에 보도되기에 이르렀다. 커뮤니티가 생성되고, 이것이 비즈니스화되는 경험은 나뿐만 아니라 참여자 모두가 경험하고 공유한 순간이었다. 2018년, 그리고 2019년에는 그랬다. 많은 이들이 커뮤니티를 이야기하고, 팬덤을 추구했으며,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가 열렸고, 크고 작은 사이드 프로젝트가 파생되었다.


이후 커뮤니티를 커뮤니티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공간’이라는 생각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던 아파트 단지를 떠나 남산 기슭, 이름도 아름다운 소월길에 공간을 오픈하기로 결정했다. 이 또한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공간 기반 커뮤니티 활성화를 모델로 다양한 기획을 시도하던 중 뜻하지 않게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었다. 이러다 말겠지, 싶었던 역병은 이미 몇 계절을 통과해 겨울이 되니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뭉치면 산다’라는 문장을 다시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안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최소 단위에 맞춰 모든 것이 해체되고 있는 요즘이다.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온 온갖 노력은 확진자 숫자의 추이에 따라 오픈과 취소를 반복하는 험한 시기를 마주하고 있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올 한 해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위한 수고와 노력까지 마지막 세미나를 통해 공유하며 종료를 공지했다. 어떤 커뮤니티는 유튜브 채널로 모임 형태를 전이하기도 했다. 수많은 세미나는 대개 온라인 줌(zoom) 컨퍼런스로 대체되었고, 무경계북살롱 역시 ‘무경계줌살롱’이라는 이름으로 테스트 모임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앞에서 오프라인 모임은 이렇게 무력화되었다.


무기력한 시대 상황에도 많은 기획자가 일상의 영위가 허락되는 가장 안전한 최소 단위와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경험을 이어가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나 역시 2020년 내내 경험한 무기력과 추위와 함께 더한 공포감으로 찾아온 팬데믹의 공포라는 현실 속에서 나를 꺼내 팬데믹 이후를 준비하는 태세로 전환한 상태다. 전환의 계기는 지난 11월부터 제주에서 진행한 ‘2020 로컬 브랜딩 스쿨’의 영향이 크다. 제주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4인의 장인, 장인과 팀을 이룬 12인의 크리에이터, 이들을 서포트하는 3인의 마스터, 그리고 파트너라는 다층의 참여자로 구성된 스쿨은 이제 두 번째 걸음을 뗐다. 마스터로 참여한 나는 5주간 진행된 온·오프라인 학습 기간을 거치며, 장인과 크리에이터의 연결은 물론이고 장인과 장인, 크리에이터와 크리에이터, 장인과 파트너, 마스터와 마스터 등 예상치 못한 풍성한 연결을 경험했다. ‘스쿨’로 시작했지만, 무성한 커뮤니티로 발전할 기회를 이들의 연결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순간도 있다. 로컬로 돌아온 이들의 커뮤니티, 아니 로컬로 돌아온 20대, 30대, 40대의 커뮤니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향토사를 애정을 가지고 수집한 준전문가의 커뮤니티, 헌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의 커뮤니티, 제주와 연결을 원하는 도외 콘텐츠 기획자의 커뮤니티 등 서로를 안전하게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는 작은 단위로서 커뮤니티의 씨앗을 역병의 시기에도 쉬지 않고 뿌려야 한다. 그 씨앗만이 코로나 이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마주해야 할 오늘의 사람들에게 ‘안전함’이라는 최후의 보루를 제공하는 단초가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배달 앱과 새벽 배송 서비스 외에 연결과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보다 절실해진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말 필요한 커뮤니티는 커뮤니티 운영자의 허심탄회한 모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참고 자료이자 더 나은 오늘을 함께 사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빌라선샤인이 12월 18일 서비스 종료 전 선보인 콘텐츠 ‘코로나 시대 커뮤니티의 기쁨과 슬픔’*에 대한 ‘기획의 말’의 일부를 소개한다. “빌라선샤인의 서비스 종료를 앞두고, 팀 선샤인은 각자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사람과 사람의 연결은 더욱 중요해질 테고, 그 연결을 만드는 데는 아마도 온라인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하게 될 테니까요. 그동안 빌라선샤인이 꾸준히 ‘우리 경험이 서로의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해왔듯, 팀 선샤인이 겪은 시행착오와 거기서 얻은 배움 또한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황효진 콘텐츠 디렉터).”


*코로나 시대 커뮤니티의 기쁨과 슬픔, 빌라선샤인 오픈 프로그램(12/18), 스피커: 신선아, 신지혜, 이주하, 홍진아, 황효진





김영미 문화마케팅그룹 머쉬룸 대표이자 마케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GS샵, 금강제화, 디자인블루, 쌈지농부, 아벤느 등 다양한 산업의 경계를 넘나들었으며, 직장 생활을 하던 중 독서 커뮤니티 ‘무경계북살롱’ 활동을 시작으로, Beyond & Behind [BTS] 라는 국제포럼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무경계스테이 공간을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경험을 만들고 있다.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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