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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Dec 23. 2021

탄소중립, 농촌의 길 그리고 농민의 길

이도헌 성우농장 대표

성우농장의 이도헌 대표는 월가 출신의 글로벌 금융전문가였다.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던 그는 양돈업을 미래의 유망업종이라 판단해 2010년 금융계를 떠난다. 이후 홍성 원천마을의 양돈농가에 투자했으나 뜻하지 않게 대표직을 맡으며 농장을 직접 운영하게 된다. 현재는 8천 마리의 돼지를 기르는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고 있고, 가축 분뇨로 에너지를 만드는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설립해 원천마을을 에너지 자립 마을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영국 산업혁명과 인클로저 운동1
17세기 소규모 자영농이 농사를 짓고 살던 영국 농촌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농촌 공간은 귀족, 대농 중심의 기업형 농업 중심으로 재편된다. 윤작이라는 새로운 농법이 도입되고, 규모의 경제와 분업의 원리가 작동하면서 곡물 생산성이 상승한다. 다른 한편 영국의 모직 산업이 발전하면서 양모 수요가 커지고 그 수요를 맞추다 보니 경작지는 양을 키우기 위한 목초지로 바뀐다. 양에게 경작지를 양보하고 농촌에서 밀려난 소작농과 소농은 도시로 이주하면서 영국 산업의 노동자로 전환된다. 도시의 인구와 규모는 급격하게 늘어난다. 1) 농업 기술혁신과 농업 구조의 변화 2) 농촌 공간 활용 방식의 변화, 그리고 3) 도시 산업구조 변화가 맞물리면서 영국 농촌과 도시에 큰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스마트 농업, 농지를 잠식하는 대규모 농촌 태양광과 분산형 에너지, 탄소 중립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 그리고 수도권의 비대화. 17세기 영국 농촌의 사례는 앞으로 다가올 우리나라 농촌의 구조 변화를 암시하는 듯하다.


에너지 전환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한 주제 영역
에너지 전환은 석탄발전과 같은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공급체계를 태양광, 바이오에너지와 같은 재생 에너지 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기존의 발전소가 대량의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생산하는 반면 재생 에너지는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저밀도의 에너지를 생산한다. 에너지 생산 방식이 저밀도화되면서 에너지 생산에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게 되고, 그 대상은 농촌 농지가 된다.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공급하는 중앙집중식 전력망을 대신해서 재생 에너지 유통하기 위한 분산형 전력망이 대두된다.

탄소중립 달성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면서 에너지 전환, 수소 경제 같은 단어들이 키워드가 되었다. 하지만 에너지 전환이 탄소중립은 아니다. 에너지 전환은 탄소 중립에 적응하기 위한 에너지 산업의 한 주제영역이다. 에너지에 묶여 있는 시야를 넓혀 본다면 탄소중립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경제 시스템, 외부로부터 유기물 반입을 최소화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다. 18세기 시작된 산업혁명과 궤를 같이하는 화석연료가 우리 경제 시스템에 작동하는 영역은 에너지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도로 포장에 널리 쓰이는 아스팔트는 석유 정제 공정의 부산물이다. 석유가 없으면 아스팔트 포장을 못 하는 셈이다. 아스팔트를 대신해서 시멘트로 도로를 포장하면 될까? 하지만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서 유연탄이나 플라스틱 폐기물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원료로 석탄발전소 폐기물이 재활용된다. 석유화학 공정에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 대신에 유리병을 사용할 수 있을 듯하지만 유리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원으로 LNG가 사용된다.
농업에서 널리 쓰이는 비료는 어떨까? 최근 요소 부족 사태로 알려졌듯이 요소비료는 석탄, LNG와 같은 화석연료에서 추출되는 원료를 사용한다. 요소비료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화학비료인 규산질 비료는 석탄을 사용하는 제철소의 산업 폐기물을 재활용하여 제조된다. 에너지 전환을 넘어서, 탄소중립을 위한 경제 시스템 변화는 농업·농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 파장이 어떠할지는 아직 본격적으로 고민되지 않았다.

태양광, 풍력을 늘리고 에너지 전환만 앞당기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까? 그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제주도의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다. 제주도는 재생 에너지 보급을 전국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늘렸지만 그 기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우리의 목표는 ‘온실가스 감축’이다.


넓은 시야로서 탄소중립과 그 실천
탄소중립을 위한 실천 목표는 온실가스를 저감하고, 온실가스 흡수원을 늘리는 데 있다. 온실가스를 저감하기 위해서는 1) 단위 경제활동에 투여되는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이고, 화석연료의 의존도를 제로화할 수 없다면 2) 온실가스 흡수원을 개발하여 탄소중립을 실현해야 한다. 단위 경제활동에 투여되는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이는 노력은 1) 순환경제, 재활용의 비중을 늘리고 2) 효율성을 높이고 3)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활동으로 요약된다.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에너지 산업의 노력은 아래 그림과 같이 요약된다.



다시 영국 산업혁명과 인클로저 운동, 농촌의 길 그리고 농민의 길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하여 제철 업계는 공정에 투입되는 유연탄을 대신할 수소환원제철 공정 개발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정부의 재정적·정책적 지원이 잇따른다. 자동차 회사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 생산 비중을 늘린다. 심지어 대표적 화석연료 산업인 LNG 업계도 블루수소라는 이름으로 산업 구조 변화에 적응하려 하고 있다. 에너지 빅데이터, 스마트 그리드, 인공지능…. 대도시 ICT, 통신 회사들은 에너지 전환이 수반할 전력 시장 구조 변화를 자신들이 사업화하기 위하여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농촌과 농업의 현장은 어떠한가? 태앙광, 풍력 등 농지에 설치되는 대규모 재생 에너지 문제로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재활용하기 위한 시설이 농촌에 집중되면서 지역 내 갈등도 심각한 수준이다.
도시의 산업자본은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노동자의 인건비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곡물 가격이 낮아야 했다. 모직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곡물을 생산하던 농지가 양을 키우는 목초지로 전환해야 했다. 17세기 영국 농촌에서 진행된 농업 기술 발전과 농업 구조 변화 그리고 농촌 공간의 변화가 농촌을 풍요롭게 하고, 농민의 삶을 개선하기보다 산업자본의 발전과 도시 성장을 위한 초석이 된 셈이다. 17세기 당시 영국 사람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후, 경제사학자들은 인클로저 운동이 산업자본과 도시의 성장을 촉진시키고 농촌은 배후지화 하는 계기로 해석한다. 스마트 농업 기술과 현재 진행형인 농업 구조 변화, 그리고 향후 예정된 우리나라 산업 구조 변화의 결과는 먼 미래에 농촌·농업을 배후지화 할까? 아니면 농촌·농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까?


이도헌 대표가 운영하는 원천마을 바이오가스 플랜트


탄소중립의 시대, 공간으로서의 농촌, 산업으로서의 농업의 미래는 어떠한가? 아니면 농촌·농민의 길이 있기는 한 것일까? 탄소중립에 대응하기 위하여 모든 산업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농촌·농업의 길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길이 있다면 그 길은 무엇인가? 기후온난화에 대응하여 벼농사만 짓던 농지에 사료용 작물과 벼를 재배하는 이모작을 도입하면 어떨까? 국내에서 사료 작물을 재배하는 만큼 해외에서 유기물인 사료를 반입하지 않으므로 총량으로서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 한 농지에서 두 번 작물을 수확하므로 농가는 소득을 늘릴 수 있다.
가축분뇨나 생활하수로 지하수 오염이 심각하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질소는 식물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이기도 하다. 지금은 가축분뇨를 정화 처리하기 급급한 실정이다. 하지만 가축분뇨를 에너지화하여 재생 에너지를 생산하고, 남는 분뇨의 질소로 미세조류를 키우면 어떨까? 미세조류는 가축분뇨의 질소를 영양분으로 광합성을 하여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바이오 에너지원이 된다. 남아도는 재생 에너지를 활용하여 LED 조명을 하면 미세조류의 성장을 증대시킬 수 있다. 남는 전기로 바이오 에너지양을 늘리고 바이오 에너지양이 느는 만큼 광합성을 통한 이산화탄소 흡수량도 늘어난다. 축산분뇨를 활용하여 곤충을 키워보면 어떨까? 이 곤충은 훌륭한 단백질원으로서 양식, 축산 사료로 사용되고, 해외에서 수입되는 콩과 같은 식물성 단백질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축산분뇨로 인한 환경문제도 해결하고, 해외 유기물 반입이 줄어들어 그만큼 온실가스도 줄어들 것이다.

농촌의 길 그리고 농민의 길….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확실한 것은 그 길이 농촌·농업의 미래를 결정지으리라는 것이다. 기후 변화, 스마트 농업 기술 그리고 에너지 전환 등 제2, 제3의 인클로저 운동은 예정되어 있다. 1) 대도시 중심의 시각 대신 우리가 살고 있는 ‘로컬-농촌’을 중심으로 2) 다른 산업의 잣대 대신 생명을 키우는 ‘농업’을 중심으로 모인 창의적인 생각이 큰 흐름을 만들 때, 농촌은 배후지가 아니라 희망과 풍요가 넘치는 공간이 될 것이다.




1. 양모 수요 증가에 따라 양을 기르기 위해 경지를 목초지로 전환하고자 울타리를 세우고 목장을 만든 운동
2.
 최소한의 냉난방으로 적절한 실내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첨단 단열공법으로 설계된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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