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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May 30. 2022

각자의 스토리, 켜켜이 쌓여가는
새로운 원도심

제주센터 ‘원도심의 과거-현재-미래’ 대담

도시에 사람이 모여들고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기존에 없던 가치가 생기고,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생명을 얻기도 한다. 특히 오랜 이야기가 담긴 지역에서 새것과 옛것이 조화를 이뤄 갈 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최근의 제주 원도심이 바로 그렇다. 원도심과 인연 깊은 3인을 초대해 원도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김종현 제주더큰내일센터장    |  김유정 알로헤어 대표    |  이진욱 자키커피 대표    |  전정환 前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



각자의 기억 속 원도심은?



전정환       사람들이 몰리고 연결되며 커뮤니티가 새로운 시너지를 만드는 것이 도시가 가진 최고의 순기능이고, 도시가 성장하는 바른 방향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반대로 이런 사람 사이 연결성을 잃으면, 비로소 도시가 쇠퇴하기 시작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주 원도심은 근래 이런 부분들이 가장 잘 되고 있는 사례 중 하나일 것 같은데요.

오늘 장소를 빌려주신 자키커피도 그렇습니다. 이진욱 대표님의 부모님이 제주에 정착하시고 2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조화를 꿈꾸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주 프로그램을 통해 이주하신 김유정 대표님이 SNS 등에 소개하는 원도심도 참 재미있어요. 더불어 이 자리에서 가장 오랜 원도심을 기억하는 분은 김종현 센터장님 아닐까 싶습니다.


김종현       저희 집안은 증조부 때 제주로 이주를 했어요. 아버지가 4살 무렵, 증조부, 할아버지, 아버지가 함께 오셨다고 해요. 아버지는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여고인 신성여고의 교사였어요. 당연히 저는 제주에서 태어났고요. 주요 활동 반경이 현재의 원도심 부근이었습니다. 어린시절의 기억은 모두 이곳에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제가 1974년생인데요, 당시만 해도 원도심 일대는 말이 필요 없는 제주의 중심지였어요. 도립 병원을 비롯해서 가장 큰 성당인 중앙성당이나 신성여고 등도 모두 몰려 있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제주에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저를 키운 것은 제주라고 할 수 있죠. 

대학 졸업 후에는 인터넷 포털회사 다음에서 검색 비즈니스를 기획하는 기획 팀장직을 했어요. 회사가 제주로 옮기면서는 제주 이주 프로그램을 맡았고요. 그 인연으로 넥슨의 제주 이전 프로그램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는 내가 나고 자란 제주의 가치를 높이는 사회적기업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섬이다’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서 제주의 로컬푸드를 아이템으로 하는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원도심의 추억을 담아 관덕정분식이라는 아이템을 만들기도 했어요. 


전정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바탕으로 만든 아이템이네요.


김종현       원도심은 당연히 제가 나고 자란 곳이고 쇠퇴하는 모습도 직접 목격해왔으니, 여러 가지 건설적인 생각은 많이 있었습니다. 항상 관광객과 주민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해왔고요. 그런데 보통 관광객들의 우선순위는 제주의 자연환경에 방점이 찍혀요. 그래서 과거에는 용담 해안도로나, 이슬목장 이런 곳에서 접점을 찾아 비즈니스를 해왔습니다.

그러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한 리노베이션 스쿨을 기점으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인문학적인 배경을 비즈니스화 하는 것 또한 무척 중요하겠더라고요. 어린시절의 추억이나 지역의 문화가 비즈니스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관덕정분식도 그렇게 한짓골 옛 떡볶이 골목의 역사와 추억을 바탕으로 생각했고요.


전정환       누구보다 제주에 애정이 많으신 센터장님도 4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주 배경을 가지고 계시고요. 어떤 분은 이주 시기가 고려시대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이제 갓 이주를 결정한 분들도 있고요. 제주의 모든 이들은 사실 이주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진욱 대표님의 이주 스토리도 궁금한데요.


이진욱       저도 따지고 보면 이주민이라고 할 수 있어요. 8살 무렵 부모님과 고모님과 함께 제주로 왔습니다. 지금 자키커피가 있는 이 자리에서 부모님이 아동복을 판매하시는 옷가게를 운영하셨어요. 자연스럽게 저도 제주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니깐 육지로 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군 전역 후 원래 고향인 대구로 갔어요. 6~7년 정도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주에 살 때는 육지나 도시 생활이 로망이었는데 막상 나가서 살아보니, 제주가 너무 그리운 거예요. 마침 제주에 사는 여자친구와 장거리 연애를 그만두고 제주에서 결혼을 하고 싶기도 했고요. 또 제가 종사하던 업종인 통신업이 단통법으로 직격탄을 맞아서 새로운 걸 도모해보자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창업을 하면서는 역시 초기 자금 문제가 컸어요. 제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충분할 리는 없겠죠. 처음엔 낭만을 가지고 바닷가 같은 데서 멋있게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임대료를 지불 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지금 자리로 들어오게 됐고요. 처음에는 원도심이라는 단어도 잘 몰랐어요. 원도심의 어떤 상징이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고요. 

자키커피에 관광객을 유입시켜보자는 생각을 하기보다 제가 자란 이 지역의 도민들이 조금 더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로 오픈했어요. 다소 낡고 오래된 동문시장이지만, 꼭 그 뉘앙스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원도심 주민들도 좋은 퀄리티의 스페셜티 커피를 향유하고 분위기 좋은 공간에 가고 싶은 수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자키커피에 있는 모든 바와 테이블 의자 등도 저희가 직접 만든 거예요. 


전정환       이곳만의 스타일이 있는 것 같아요. 시장통에 정문이 뻥하고 트여있는 카페에 시장분들이 오가듯 들르고, 또 좋은 커피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시장과 배척될 것 같은데 묘하게 잘 어울려요. 원도심만의 색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분명한 일조를 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진욱       처음에는 주변 상인분들이 ‘이질감 든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고집을 부리고 제 스타일대로 밀고 간 게 다행히 잘 들어맞은 것 같아요. 보시듯 간판도 없어요. 어차피 개방된 공간에 누구나 보이면 마실오듯 들를 곳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으니깐요. 

‘일부러 찾아간다’라기 보다, 상인이나 장을 보러 온 분들이 자연스럽게 올 수 있는 공간이 제법 커피도 맛있더라는 말을 듣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전정환       김유정 대표님은 앞선 두 분보다 비교적 최근에 오신 분이에요. 어떻게 제주랑 인연을 맺으셨고, 원도심과는 어떤 연결고리를 만들어오고 계시나요?


김유정       저도 이진욱 대표님처럼 대구 출신인데요. 직장 생활을 대구에서 오래 했어요. 하던 일을 그만 두고 다른 꿈을 꿀 때가 있었거든요.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1년 정도 제주에서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했습니다. 무작정 떠나오기는 사실 너무 마음이 불안했죠. 그때 마침 제주 올레에서 제주 청년활동가 양성과정이라는 프로그램이 있길래 지원할 기회가 있었어요. 육지 청년들의 제주 체류와 그들이 제주의 문제를 찾아 해결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었어요. 

프로그램을 통해 제주에 있는 다양한 스타트업에서 일해 보게 됐어요. 다양한 창업 사례들을 접하다 보니, 저도 안목이 생기고 해보고 싶은 일들이 차차 생기더라고요. ‘이곳에서 터전을 잡고 살겠다’라는 생각이 확실히 든 건 올레길을 걸으면서였어요. 완주 과정에서 제주 원도심의 사라봉이 포함된 올레길 코스를 걷다가 불현듯(웃음). 처음 제주에 와서는 로망을 갖고 종달리에 연세를 얻어 살았어요. 한 달 정도는 좋았는데 아무래도 불편하더라고요. 종달리 계약이 끝나고 바로 사라봉 바로 앞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어요. 산책을 하면서 제가 터전을 잡으려고 맘먹었던 동네, 바로 원도심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됐고요. 

이후에는 이제 체류 기간이 끝나서 돌아가야 할까 하는 고민도 들었죠. 그때 김종현 센터장님이 계신 제주더큰내일센터의 창업교육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그 프로그램이 제게는 전환점이 됐던 것 같아요. 프로그램을 통해 원래 제가 종사해오던 미용업 쪽에서 제주의 자원으로 뭔가 시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업을 맘먹고 나서는 더큰내일센터에서 교육을 받으며, 아이템을 구체화했어요. 작년 3월에 법인을 설립했고, 올해부터 산지천변 W360에서 제품을 개발하며 저희만의 차별성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전정환       제주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육지 사람들이 제주를 한달 정도 살며 ‘소비’하고 가고 다시 나가는 순환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김유정 대표님처럼 터전을 잡고  ‘생산’을 하게 된 사례가 늘고 있어요. 원도심이 살아나면서 그렇게 사람을 흡입하고 인재들이 활동하는 무대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해요.

더불어 정착하시는 과정에서 커뮤니티가 생성되는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이 이뤄진 게 아니라, 하나씩 여러 기관들의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친구도 사귀고, 또 대표님을 통해 다른 육지 사람이 올 수도 있고요. 이런 모습들이 점차 원도심이 도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시작한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자키 커피 내부 전경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원도심



전정환       4대의 이주 스토리부터 생산을 위한 무대로 살아난 원도심의 이야기까지 재미있는 시사점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원도심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이야기해보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특히 김종현 센터장님은 원도심이 중심지이던 시절부터 쇠퇴하는 과정도 보셨고, 다시 재미있어 지는 최근까지 모두 목격하셨어요.


김종현       원도심이 쇠락한 배경에는 역시 도시 기능이 확대되면서 원도심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도시 기능이 위축된 것이 컸습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도심지 안에 있던 학교나 병원 등의 기능들이 도심 밖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요. 그러면서 신도시까지는 아니어도 새로운 시가지가 형성됐어요. 이른바 신제주가 그것이죠. 1970년대말 1980년대에 본격화되더니, 1990년대 중반 아파트단지까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원도심이 물질적 기능으로는 공동화되기 시작했죠. 제주시 밖의 사람들이 교육·의료 등의 목적으로 제주시에 와도 현대적인 것들을 원했고요. 당시 육지분들이 이주한 사례들도 제주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상업적인 목적이 처음부터 명확한 편이었어요. 그래서 원도심보다는 쾌적한 환경이 있는 신제주를 찾았죠. 다음이 처음 제주로 왔을 때도 직원들이 로망을 따라 원도심 부근에 있다가,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금방 아파트 단지로 이주하기도 했어요.  

신제주에 밀려 쇠락한 원도심이 최근 다시 살아난 배경을 분석해보면, 몇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공동화가 진행되면서 원도심의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낮고 빈 공간들이 생기니까, 이곳이 무언가를 처음 시도하기는 맞춤인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곳의 과거를 기억하는 도민들이 본인의 추억이 있는 공간에 애착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도시화를 겪고 반대 급부로 고향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과정과 비슷한 거죠. 

또 하나는 기능적으로 물질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예요. 자연경관을 소비하는 제주가 아니라, 오래 거주하면서 자기의 스타일을 만들어 간다면 원도심이 제격이었던 거죠. 원래도 충분한 인문학적 배경이 있는 장소에서 새로운 매력도 재발견되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으니까요. 


전정환       신제주의 사례와 원도심의 쇠락, 그리고 되살아나고 있는 최근을 보면, 서울 강남의 개발 사례가 떠올라요. 행정 교육 등 모든 기능을 강남에 몰아넣어 개발했다가 강남이 뜨니까, 모든 지방 도시들이 신도시를 만들 때 이를 모델로 했다고 해요. 

이런 방식으로 개발한 사례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각 지방 도시의 원도심은 쇠락해갔고요. 최근에는 그 반성으로 각 지방 도시들의 각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원래 도시의 정취와 문화가 있는 ‘원도심’이 각광 받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제주가 가장 앞서서 그런 모델을 만드는 중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진욱 대표님께서 제주를 떠나실 때가 원도심이 쇠퇴해가던 기간이 아니었나요. 그리고 돌아오실 때 바로 이 변화하려는 에너지가 보였을 것 같습니다.


이진욱       2008년경에 제주를 떠나 군생활을 비롯한 육지 생활을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탑동이 소위 가장 핫한 지역이었어요. 수영장도 있었고, 노상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많았던 매력적인 공간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리고 죽은 동네가 되어 버렸어요. 



이진욱 대표



김종현       대표님 말씀처럼 탑동이 매립 전에는 바로 앞에 바다도 있고 사람 머리만한 까만 돌들이 지천에 있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매립 이후 광장이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대형 상업시설들이 점점 들어서면서 기능이 죽어간 것 같아요. 도민들이 활동할 수 있고 생활하는 지역은 사라지고, 자동차만 오가고 관광객들이 비행기 타기 전에 한번 들러야 하는 곳 정도의 기능만 남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정환       같은 공간인데 세대별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50대 이상의 제주도민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아름다운 곳을 매립한 것이 잘못됐다고 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 이후 바로 아랫 세대들은 매립된 광장에서의 추억이 있는 분들도 있고요. 그 이후 더 이상 즐길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가, 최근에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다시 생기고 있고요. 

이진욱 대표님이 돌아오신 건 언제쯤이실까요. 돌아오고 나서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원도심을 목격하셨을 텐데 어떠셨나요.


이진욱       2015년쯤인 것 같아요. 구제주, 원도심이 저는 원래 매력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 활동반경이 항상 이곳이다 보니 애정이 많기도 했고요. 신제주는 그냥 육지와 별 다를 것 없는 상업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이었고요. 동문시장 근방은 활기차고 정겹고  ‘제주’라는 지역색이 확실하잖아요. 

돌아오고 나서 부근이 활성화되는 모습을 지금도 목격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원주민 입장에서 바라보면 너무 많이 바뀌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있어요. 말씀하신 ‘재미난 일’들이 일어날수록 결국 노출도 많이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일반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말은 결국 원주민이 소외되는 일이 생기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다시 도민들의 발길이 끊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당장 동문시장도 골목 안쪽에 관광객들이 많아지는 야시장 등에는 도민들이 못 가게 되기도 했고요. 새로운 사람이 순환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원래 살던 사람들도 함께 발맞춰 갈 수 있는 적절한 속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전정환       중요한 말씀입니다. 인위적인 공간에서 뭘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처럼 단기간 오는 분들과 오래 살아온 도민들이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는 공간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최근에는 ‘관계인구’라는 말을 많이 해요. 새롭게 이주한 ‘정주인구’나 관광으로 방문하는 ‘교류인구’가 아니라 지역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인구를 말하는데요. 제주는 사실 이런 관계인구가 많은 곳입니다. 70만 제주도민 외 15만에서 20만 명 정도가 외지인으로 제주에 애정을 가지고 제주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요. 


김종현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 참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장소가 변화할 때 누군가는 배제 될 수 있는데, 다양한 스토리와 배경을 가진 모든 사람이 동시에 숨쉴 수 있는 장소로 원도심이 변화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좌)더큰내일센터 후배와 김유정 대표의 W360 간담회, (우)김유정 대표



전정환       김유정 대표님은 몇 개월 전 원도심에서 일하기 시작하신 걸로 아는데요. 원도심을 경험하고 느낀 감상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김유정       저는 원도심을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기회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관광객으로, 두 번째는 제주도 이주민으로, 세 번째는 이제 이곳을 터전으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려 하는 스타트업 대표로서의 관점입니다. 최근에는 아무래도 스타트업 대표로서 바라보는 게 클 것 같아요. 쉬는 시간에 한 번씩 원도심을 관찰 하거든요. 우선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입이 굉장히 많이 되고 있어요. 산지천을 중심으로 이렇게 활기가 뻗어가는 모습이 상당히 매력적이에요. 

산지천에 관광객들이 많이 유입은 되지만 사실 체류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들이 원도심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콘텐츠가 좀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항상 들어요. 또 원도심에 오는 분들이 보통 도민과 관광객이 적절하게 섞여 있더라고요. 이게 스타트업 대표의 관점에서 봤을 때 굉장히 좋은 테스트베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도심에 있으면 그 지역의 인구는 물론이고, 관광객들에게도 뭔가를 시도해볼 수 있는 거니까요. 더불어 제주도는 전국에서 다 찾아오는 관광지이다 보니, 상품을 자연스럽게 바이럴할 수 있기도 한 거죠. 

앞으로 원도심에 저희 같은 스타트업들이 더 많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새로운 콘텐츠들을 만들고, 그걸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마련 된다면 외지인과 도민들이 더 많은 교류와 융합의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전정환       특별히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요?


김유정       단연, 산지천입니다. 산지천을 중심으로 동문시장, 칠성로 등이 모여 있기도 하고요. 제주의 사통팔달 중심지죠. 그래서 산지천이 더 활성화 되면 관광객의 원도심 체류 시간도 더욱 늘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정환       제주의 청년들은 산지천은 잘 안 가는 곳이라고 하고, 윗세대도 예전에 안 좋은 시설들이 있었다는 인식 때문에 꺼리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이런 생각에서 외지인은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여기서 뭔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는 게 보이는 것 같아요. 


김종현       산지천 영역은 일단 기본적으로 풍광이 좋아요. 한라산도 잘 보이고 바닷가도 좋고요. 그리고 제주는 물이 흐르는 곳이 귀한데 맑은 천이 흐르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아라리오 뮤지엄 같이 현대적인 건물들이 기존과 어우러지는 모습도 재미있습니다.


전정환       산지천이 살아난다는 건 연결이 다시 살아난다는 말이기도 해요. 제가 처음 왔을 즈음인 2015년에 지역의 오랜 기억을 갖고 있는 대동호텔·비아아트 박은희 대표님이 해주신 말씀인데요, 동문시장도 칠성로도 건입동도 사람이 각기 방문하는데 서로 길을 안 건넌다는 거예요. 그 가운데 있는 산지천이 공동화 됐던 거죠. 근래에 산지천이 매력적인 곳이 됐다는 건 서로 다시 연결됐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대표님은 대구에도 매장이 있으신데요. 제주의 원도심과 대구의 원도심을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김유정       대구는 알다시피 덥다는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공원 같은 녹지가 많은 편이에요.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정해 차량 통제를 하고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행사들을 꽤 많이 하고 있어요. 이런 걸 원도심에서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산지천이나 동문시장 앞 도로들을 보면서 상점이 문을 닫는 주말에 노점도 깔리고 이런 모습들이 또 평일과 다른 풍경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별한 날을 정해서 차 없는 날로 만들고 이벤트성인 재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전정환       추억이 쌓이고 연결되면서 지역에 매력이 생기는데, 많은 지역들이 그 기능을 상실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다행히 원도심은 지금 나눈 이야기에서 나온 것처럼 각자 다른 기억과 추억이 다시 쌓이고 연결되고 있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10년 뒤 내가 생각하는 원도심



전정환       원도심의 과거와 현재까지 살펴봤습니다. 이제 상상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10년 뒤에 원도심이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공유해볼까요.


김종현       역시 제일 중요한 건 스토리일 것 같아요. 역사가 있어야 하고 사람이 있어야 그런 스토리가 생길 건데요. 제 아버지도 그런 스토리를 만든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교사도 하셨고, 협동조합도 하셨고, 성당 활동도 하셨고요. 공간을 배경으로 다양한 교류와 경험이 생기고 엉긴 거죠. 이런 스토리가 점점 더 많아져야 도시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또 하나는 아까 말씀하신 관계인구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까지 제주는 관광객과 도민이 분리돼 있었어요. 이제는 그 접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욱 그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주로 제주의 자연을 소비하는데, 앞으로는 제주의 사람과 문화 또한 소비할 거예요. 그러려면 결국 도시를 찾을 겁니다. 그리고 접근성이나 앞서 이야기한 스토리의 풍부함에서 당연히 원도심이 유력할 것이고요. 지금의 방향성을 바탕으로 원도심이 앞으로 제주도민의 스토리가 녹아있는 애정이 담긴 공간, 새로운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유정       저는 사실 제주에서 생긴 제 네트워크 때문에 남아있는 이유가 커요. 과거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네트워크에 속할 수 있었어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죠. 원도심이 계속 이렇게 교류의 장으로 성장하면, 저처럼 특정한 지원 사업에 선정되지 않더라도 원도심 자체가 네트워크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말씀드린 것처럼 산지천을 좋아하다 보니 매일 이곳을 산책하는데요. 아직도 비어있는 공간들이 많아요. 10년 후에는 저 공간들이 각기 다른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돼 원도심에서  몇 시간이고 몇 일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장소가 됐으면 해요.


전정환       김유정 대표님을 만나러 오는 분들도 있다고요.


김유정       맞아요, 친구들이나 가족들도 오고요. 제가 직원을 채용한다면 앞으로 새로운 분들이 또 더 육지에서 올 수 있겠죠.



제주 원도심 산지천 모습



전정환       원도심에 창업가가 있다는 이유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고, 인연이 생기고 네트워크가 형성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아까 이야기한 관계인구의 효과라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도 기대가 큽니다. 

이진욱 대표님은 어떠실까요. 원도심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부분도 있으실 것 같아요.


이진욱       원도심이 지금 이대로 가만히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너무 갑작스럽게 변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공간을 즐기기 위해 오는 관광객들도 있고, 상가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고 복합적인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데 한 번에 변해버리게 되면 누군가는 소외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잘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과거 안 좋은 사례들처럼 상업적으로만 접근해서, 지금 저희가 나눈 이야기의 요소들이 잘 반영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아요. 

원도심을 다 같이 즐기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의 속도로 변화하고, 과속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매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저도 무엇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생업을 해야 하니, 생각이 앞으로 달라질 수도 있는 거고요. 공간 자체를 다 같이 누리자는 개념에는 언제나 동의해요.


김종현       정서적인 교류가 있는 애착이 생긴 공간은 영속성이 생겨요. 아이들이 애착인형을 버리지 못하듯이요. 그리고 상업적이고 작의적인 공간이 아니라 철학과 깊이를 담은 공간은 롱런할 수 있어요. 인위적으로 쉽게 생긴 곳들은 외부의 유행을 타듯 금세 시들해질 수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자키커피의 지향점이나 이진욱 대표님의 의견에 동의해요. 


전정환       중요한 말씀들을 해주신 것 같아요. 근래까지 제주도는 관광객과 자본 중심으로 변화했고 개발돼 갔던 것 같아요. 지역과 공감하며 어느 하나 배제됨 없이 발을 맞춰서 변화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오늘 대담에서 김종현 센터장님이 말씀하신 ‘스토리’를 쌓는 과정이라는 말에 큰 공감이 가요. 두 대표님도 지금 스토리를 쌓아가는 과정에 있고, 10년 뒤에 어떤 스토리가 돼 있을까가 기대됩니다. 자키커피가 10년 후에 도민들과 이주민들의 소통을 위한 중심지가 돼 있고 과거의 관덕정처럼 되어서 전설이 될 수도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이루다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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