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선 건축공간연구원 부연구위원·성훈식 코스모40 대표(거인의 친구들)
이른바 PPP(public-private partnership, 민관합작투자사업)가 국내에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매년 적자가 1조2,000억 원에 달하는 ‘공공시설’에 대한 정부의 고심이 커진 영향이다. 그런 가운데 ‘PPP 국내 1호 사례’인 군산시민문화회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과 관이 함께 그려나가는 지방 소도시 문화예술시설의 자생법과 그 과정이 궁금하다.
군산시민문화회관은 어떤 곳이었나요?
성훈식 과거 지방 곳곳에 예술활동을 위한 문화공간이 지어지던 때가 있었어요. 군산시민문화회관 또한 마찬가지로, 당시 다목적 문화예술시설로 지어진 케이스입니다. 많은 분들이 잘 모르고 계시겠지만, 사실 군산시민문화회관은 한국 근대 건축 1세대 건축가의 대표인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했어요. 서울 올림픽공원의 평화의 문 같은 대표적인 우리 건축물을 건축한 그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죠. 건설 당시 1,100석 규모(두 차례 리모델링 이후 현재는 858석)의 공연장은 당시에도 제법 큰 규모였다고 해요. 이런 큰 규모의 문화예술시설을 인구가 계속해서 줄어드는 지방 도시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하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대다수 지자체에 운영되는 공공시설들은 일반적으로 적자를 내면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군산에는 예술의전당이라는 새로운 유사 문화예술시설이 생기기까지 했어요. 군산시 입장에서는 적자 폭이 큰 문화예술시설을 두 곳이나 운영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었죠. 오랜 문화예술시설의 처리법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오갔습니다. 철거를 하자니, 김중업의 건축물로 뜻깊은 이곳을 손쉽게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요. 그렇게 시민문화회관은 커다란 ‘잠든 거인’으로 군산시 나운동에 남아 있었습니다. 프로젝트명도 ‘거인의 잠’이 되었어요.
다른 지역의 재생 사례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윤주선 2019년 12월 군산시청은 국토교통부로부터 도시재생인정사업을 따냈어요. 6개월 후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 연구기관인 저희 건축공간연구원에 사업을 의뢰했고요. 프로젝트 거인의 잠이 특별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역시 국내 본격적인 1호 PPP사업이라는 점입니다. 민간 운영자의 책임과 권한을 최대한 끌어올려주는 방식인데요, 공공의 지속적인 예산 투입 없이 운영자가 자체적인 수익활동을 통해 공공서비스 제공 비용을 충당하는 시스템입니다. 민간이 운영과 기획을 책임지고 수익을 공유하기 때문에 민간공간 못지않은 매력적인 공공서비스가 가능합니다.
두 번째는 운영자가 중심이 되도록 하는 사업이라는 점입니다. 운영계획하에 설계를 하고자 해요. 이를 위해서 기존과 다른 독특한 공모과정을 거치기도 했습니다. 우선 운영자와 설계자를 동시에 뽑는 공모였습니다. 기존의 공공건축사업계획에 늘상 운영 계획을 포함하긴 했지만, 운영 주체라는 실체가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상상만으로 계획이 이뤄져서 구체적인 부분들이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다양한 상황에 부딪히다 보면 일정도 지연되고 예산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사전에 운영 주체를 선정해서 보다 명확한 운영 계획이 사전에 수립되게끔 했어요.
세 번째는 공모법 자체가 남달랐다는 점입니다. 공공에서 공간의 용도나 콘셉트를 정한 다음 공모를 내는 것이 아닌, 민간 운영주체가 직접 용도와 콘셉트를 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2020년 도입된 ‘경쟁적 대화’라는 절차이고, 국내에서는 공공건축에 처음 적용한 방식입니다. 경쟁적 대화로 정한 주용도와 심사방식을 기반으로 ‘사회실험’이라는 새로운 심사 방식을 통해 운영자를 뽑았습니다.
PPT나 서류가 아닌 20년간의 운영계획을 현장에서 간단히 보여주고 시민들이 이를 즐기며 심사과정의 일부가 되는 형태입니다. 이렇게 선정된 팀이 ‘거인의 친구들’입니다. 실제로 사회적 실험에 대한 내용들은 경쟁적 대화를 통해 보다 구체화되고 기획이 쫀쫀해지는 효과가 생겼어요. 과정이 없었다면 이상만 있고 현실에서 문제가 생기는 일이 분명히 생길 수도 있었을 거예요.
‘PPP 1호 사업’이라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왜 PPP인가요?
윤주선 사실 공공과 민간은 서로 움직이는 방식이 무척 달라요. 그럼에도 왜 필요한가에 의문이 있을 겁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인구감소예요. 수도권에서는 체감이 잘 안 될 수 있지만, 지방의 인구 감소는 정말 심각한 편이에요. 세수가 줄어듦에 따라 중앙정부의 보조가 있어도 공공에 대한 지출 감소는 꼭 필요한 상황이 된 거죠. 이런 경우에 대개 문화예술에 대한 예산을 우선적으로 검토합니다. 물론, 꼭 필요한 것이라는 집단적 동의가 있기 때문에 세금을 적게 쓰면서 문화예술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요. 이때 PPP를 우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인구 감소를 경험한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이미 보편화 된 방법이죠. 일본 같은 경우는 전체 국가주도 재생사업의 절반가량이 이런 PPP형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기도 합니다. 군산시민문화회관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사례 1호입니다. 공공시설 중에도 가장 적자폭이 큰 문화예술시설에 대한 운영법을 바꿔보자는 거죠. 세금 투입은 줄이고 민간의 자유도를 높여서 창의적인 공공서비스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예요. 민간의 사업성과 행정의 공공성을 잘 조율하는 것이 사업성공의 포인트입니다.
성훈식 대표님은 거인의 친구들에 어떤 계기로 합류하셨나요?
성훈식 행정적 과정을 거쳐 ‘거인의 친구들’이 군산시민문화회관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시민회관이 리모델링 되어가는 과정에서 운영자로서 여러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이후 20년간 이 공간을 운영할 예정이에요. 저희는 원래도 PPP형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았어요. 당연히 한국형 PPP 1호인 군산시민문화회관에 대해 여러 상상력이 생기기도 했고요. 그렇게 군산을 오가며 군산 지역의 생활예술가 그룹인 ‘음미당’을 소개받았습니다. ‘클리마 아키텍츠’의 임권웅 소장님은 원래부터 알던 사이였고요. 국내는 물론이고 독일을 비롯한 해외에서 재생건축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해오셨어요. 군산시민문화회관 재생사업을 생각하면서 꼭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거인의 친구들에 함께하자고 설득 했습니다. 아직은 사업 초기 단계여서 구체적인 업무 진척이 많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지자체와 협의도 원만하고 군산시민문화회관을 잘 살려보겠다는 같은 지향점 아래에서 원팀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지 지역민 반응은 어떤가요. 생각지 못한 애로사항은 없으신가요?
성훈식 주민분들은 현재까지는 동네가 변화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가 크세요. 저희는 과거 인천 화학공장의 복합문화공간 재생 사례 등 재생 사업을 펼쳐온 경험이 있어요. 타 사례와 비교해서 군산시민문화회관은 역시, 공공이 소유한 상태에서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게끔 사업을 진행하는 점이 다릅니다. 한 가지 아이템으로 문화공간 사업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지역의 스토리, 콘텐츠를 많이 담는 것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군산시민문화회관은 어떤 공간으로 거듭날까요?
성훈식 공모 참가 당시 메니페스토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예요. 바로, ‘모두를 위한 공간, 군산시민문화회관’이 그것입니다.
첫 번째는 ‘모두의 속도’예요. 각자 나이와 신체의 다름에서 오는 다양한 속도를 존중하는 공간을 디자인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군산시민문화회관은 개방적이면서 동시에 누구에게나 접근과 이동이 용이하도록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모두의 경험’입니다. 모두가 문화를 접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회관이 거듭나길 바랍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간에서 콘텐츠의 향유와 경험 또한 소외됨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군산시민문화회관에서의 경험은 세대, 지역, 성별 간 차이 없이 모든 이의 공감을 얻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모두의 장소’입니다. 나운동 주민, 군산 시민만의 문화회관이 아니라, 지역 안팎으로 문화예술을 퍼뜨리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공모과정부터 벌써 남달랐던 사업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성훈식 아직 사업 초기 단계여서 구체적인 변화를 언급하긴 이른 감이 있습니다. 다만 윤 연구위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업의 공모과정부터 남다른 성과가 있었죠. 시청과 건축공간연구원에서 주민참여형 사회실험 형식으로 진행했다는 점이 이미 기존과 다른 ‘행정의 혁신’을 이뤄낸 최초 사례가 되었습니다. 1호 PPP에 이어 다음 사례들이 계속 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화콘텐츠 기업으로서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성훈식 동시대적 관점으로 예술과 사람, 사회를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더불어 공간을 기반으로 지역의 문화·예술 자원을 발견하고 연결하여 지역의 크리에이티브 존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역-지역민-창작자를 비롯해 다양한 세대, 계층의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지역 생태계를 만들려고 해요. 이런 저희의 비전이 군산민문화회관에도 투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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