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이사
2021년 12월 29일 제주 한경면 용수리에서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와 KAIST가 공동 개발한 민간 소형 로켓이 발사됐다. 인공위성 소형화라는 추세에 맞춰 소형 로켓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그동안 정부 주도로 이뤄진 로켓 발사체 산업에 민간주도의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
KAIST 항공우주공학과 출신의 청년들이 주축인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어떤 스타트업인가요?
저희는 소형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필요한 로켓을 전문적으로 개발하고 제작하는 스타트업입니다. 왜 국가 기관이나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이 로켓을 개발하고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우주산업 분야 기술 발전의 영향이 큽니다.
기존의 인공위성은 많은 기능이 탑재됐고 크기도 커 제작에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죠. 하지만 최근에는 영상 촬영이나 통신 등 한 가지 용도로만 사용할 소형 인공위성의 수요가 늘어났습니다. 무게가 10kg 미만인 작은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로켓이 클 필요는 없죠. 저희는 그런 소형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주는 로켓을 만들고 있습니다. 뉴 스페이스 시대가 시작되면서 이제 막 새로운 우주산업의 시대가 열렸고 앞으로 저희가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아졌죠.
일반적으로 대중이 생각하는 로켓과 다르게 작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소형 발사체를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존 로켓을 버스, 소형 로켓을 택시에 비유하면 적당할 것 같아요. 택시는 내가 원할 때 편하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죠. 그걸 원하는 곳이 많아 점차 큰 시장이 형성될 거고요. 무엇보다 빠르게 변하는 우주산업의 트렌드를 막을 수 없습니다. 데이터를 보면 우주시장의 가능성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어요. 벌써 글로벌 시장 수요도 상당하죠.
물론 극복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소형 로켓 개발은 단순히 크기만 줄이는 게 아닙니다. 인공위성을 작게 만들려면 필요한 기술만 넣고 불필요한 것은 빼면 되지만, 발사체는 발사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그대로 축소해야 하죠. 그런 점에서 진입 장벽이 높아 지금으로서는 새로운 경쟁자가 들어오기가 어렵죠. 게다가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유능한 인재와 기술력을 보유했으니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신동윤 대표님이 상당히 이른 나이에 우주산업에 뛰어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초기 10명이던 직원이 현재 50명으로 늘어날 만큼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창업과 성장 과정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2018년 신동윤 대표님이 우주와 로켓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모여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스타트업입니다. 신동윤 대표님은 어릴 때부터 로켓을 좋아했고, 캐나다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는 동안에도 작은 로켓을 직접 만들어 발사했다고 해요. 취미로만 로켓을 만들다가 사업으로 해보자는 생각에 당시 다니고 있던 워털루대학도 자퇴하고 귀국했죠. 같은 해 본격적으로 창업을 했고, 로켓 제작에 나섰어요.
신동윤 대표님 같은 학부생 창업 선례가 드물다 보니 창업 직후에는 조언을 얻을 곳이 없어서 그냥 부딪히는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신동윤 대표님의 노력과 가능성을 알아본 교수님들이 도움을 주기 시작했죠. KAIST 캠퍼스 내에 액체로켓 엔진 연소시험장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학부생이 만든 스타트업과 KAIST가 산·학 협동으로 ‘페리지-KAIST 로켓연구센터’를 만들었고, 지난해 12월 KAIST 개교 50주년을 기념해 제주도에서 시험발사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신동윤 대표님과 함께하게 된 계기도 궁금한데요. 회사 운영과 성장 전략 책임자로서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제주에서 시험발사를 시작할 무렵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와 함께하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한국거래소에서 상장 심사를 담당했고요.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주요 투자자였던 벤처캐피털에서 저에게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좋은 기술을 가졌으니 잘 운영해서 상장도 하고 회사를 성장시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거래소에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에 있는 웬만한 상장기업은 다 봤는데, 로켓을 만드는 곳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하지만 뛰어난 기술력이 있어도 회사는 기술 개발로만 성장할 수 없잖아요.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조직을 잘 운영하고, 투자금을 유치하고, 대외 활동도 해야 하는데, 엔지니어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이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죠. 기술 개발 외적인 것은 제가 잘 알고 있고, 잘할 수 있으니 제가 CFO(재무 이사)로서 함께한다면 큰 성과를 이뤄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라는 우주선에 함께 올랐어요. 무엇보다 신동윤 대표님을 포함한 엔지니어들의 열정에 감동했습니다. 로켓에 너무 진심이더라고요. 그런 열정이면 안 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해 제주에서 최초로 우주로켓이 발사됐습니다. 페리지에이로스페이스가 직접 개발한 소형 로켓이 그 주인공인데요. 제주 시험발사를 통해 얻은 성과나 개선해야 할 점, 새로운 목표가 있나요?
지난해 11월 1차, 12월 2차 그리고 올해 3월 3차까지. 저희 최종 목표인 ‘Blue Whale 1.0’ 제작을 위해 작은 것을 먼저 만들어 시험발사해 보고 결과치를 얻어 반영할 계획이었죠. 모두 제주시 서쪽의 한경면 용수리라는 작은 어촌마을에서 진행했는데, 발사 장소로 제주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이 잘 맞았기 때문입니다. 제주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 남쪽 끝에 있어 로켓이 날아갈 때 다른 국가의 영공을 침범할 우려가 적어 시험발사 최적지라고 판단했죠.
언론에 공개한 건 2차로 진행된 KAIST 개교 50주년 기념 발사 때입니다. 당시 제주 최초로 민간기업이 로켓을 발사하는 것이라 관심을 크게 받았는데, 다행히 목표였던 기술 검증이라는 측면에서 저희는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어요.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입력한 항로대로 로켓이 날아가는지, 통신은 제대로 이뤄지는지 등인데, 그 데이터를 확보했거든요. 마지막 순간까지 데이터를 수신했습니다. 설계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 거죠. 무엇보다 많은 사람에게 제주에서 민간기업의 로켓 발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 뿌듯합니다. 앞으로 제주에서 우주산업이 더 활발하게 일어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을 거예요.
이렇게 세 번이나 시험발사를 진행한 이유는 그날그날 대기 조건이 다르고, 매번 다른 변수가 생기기 때문이죠. 2차 발사 때 있었던 일인데, 당시 방송사에서 촬영용 드론을 띄웠어요. 그런데 드론 조종 주파수가 로켓 송수신 주파수와 똑같아 혼선이 발생했어요. 잘 대처하긴 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훗날 진행할 더 큰 프로젝트 때 당황하겠죠. 시험발사를 통해서 얻어지는 경험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많이 시도해서 성공도 해보고, 실패도 해봐야 합니다. 저희는 이런 시행착오의 과정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회의실 한쪽에 ‘실패의 전당’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어요. 실패의 결과물을 모아둔 곳인데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한눈에 보이죠.
제주도의 작은 마을인 용수리에서 발사를 준비할 때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마을 주민들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발사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동의가 있어야 했는데, 직접 마주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지역 민박집에서 숙박하고, 식당에서 밥 먹고, 마을 행사가 있을 때 인사도 드리고요. 그 이후에 용수리에서 로켓을 발사해야 하는 이유를 차근차근 말씀드렸죠. 우주산업 같은 첨단 산업을 유치하면 지역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파급 효과가 클 테니까요. 제 고향이 제주인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요.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어요. 시험발사 후 바다에 떨어진 발사체 부품을 회수해야 했는데, 이때 정말 큰 도움을 받았어요. 바다 한가운데 떨어진 부품을 회수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해녀분들에게 물질하다가 뭔가를 발견하면 꼭 연락해 달라고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실제로 찾아주신 거예요. 그런 점에서 너무 감사한 일들이 많죠. 그렇게 회수된 부품 중에는 영상 자료가 담긴 것도 있었어요. 매우 귀한 자료였죠. 이러한 따뜻한 인심 덕분에 세 번의 시험발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제주에서 로켓 발사를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발사 이후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와 제주도의 관계가 특별하게 이어진 것 같은데요. 제주와 함께 성장하기 위한 비전이 있나요?
제주와의 협력 강화를 위해 사무소를 연동에 설치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국내에서 로켓 발사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 발사장을 제주에 설치하는 것도 희망하고 있고요. 지금까지 제주도가 인허가를 비롯한 여러 지원에 적극적인 덕분에 국내에서 로켓을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협력이 강화된다면 발사 관련 인력 중심으로 본사를 제주도에 옮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대전에서는 지금처럼 연구를 이어가고, 곧 충북 옥천에 들어설 생산기지에서는 발사체를 만들 예정입니다. 정리하면 대전에서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옥천에서 발사체를 제작하고, 제주에서 조립 후 발사하는 거죠. 이렇게 세 지역에 각각 분리하는 이유는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어서입니다. 대전에는 KAIST,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비롯한 연구기관이 많고, 옥천군과는 우주산업 분야의 발전을 위한 협약을 맺었죠. 제주도는 아시다시피 우주산업에 적극적이며, 발사 장소로 더할 나위 없이 좋고요.
발사체 제작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스타트업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가장 먼저 이뤄야 할 목표는 ‘Blue Whale 1.0’ 개발을 완료하고 실제로 우주 궤도까지 보낼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로켓을 제작하고 충분히 실험할 공간이 필요한데, 옥천 개발기지 완공으로 이 부분이 충족되면 개발 속도에 탄력이 붙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소형 로켓 개발에 집중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발사체 재사용을 고려하고 있어요. 스페이스X의 팰컨9*처럼 추진체를 재사용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세 제어 기술이 중요합니다. 호버링(Hovering)*이라는 핵심 기술을 확보했고, 모형을 만들어 실험도 진행했습니다. 저희가 주력으로 개발하는 액체 연료 로켓이 추진력을 미세하게 제어할 수 있어 유리하고요.
이처럼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목표를 하나씩 이루면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상장과 글로벌 진출도 고려하고 있고요. 로켓 기술을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니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저희로 파생되는 다양한 산업에도 집중해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되고 싶어요.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지역과 상생하는 글로벌 우주로켓 기업으로 가는 데 많은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팰컨9(Falcon9)
재사용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발사체로 획기적인 발사 비용 절감과 로켓 크기에 비해 높은 효율성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민간기업이 우주산업을 주도할 수 있음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킨 혁신적인 발사체로 평가받는다.
*호버링(Hovering)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비행체(헬리콥터, 드론 등)가 공중에서 일정한 고도를 유치한 채 정지 비행하는 것을 말한다.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이루다플래닛(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