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젤투자협회 고영하 회장 &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이병선 센터장
고영하 회장은 ‘창업주의자’ 혹은 ‘팁스주의자’로 불린다. 창업 생태계 활성화가 국력이며, 팁스가 그 열쇠라고 강조한다. 10년 전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팁스를 도입한 주역이며, 여전히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제주센터가 지역 내 첫 팁스 운영사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팁스 사업을 주도하고 운영하는 한국엔젤투자협회의 고영하 회장과 제주센터 이병선 센터장이 만났다. 팁스가 가져올 제주 지역 창업 생태계의 변화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이병선_제주센터가 제주 지역에서는 최초로 팁스 운영사로 선정되었습니다. 팁스 주관기관 입장에서 그 의미를 어떻게 평가를 하시는지.
고영하_우선 축하의 말을 전합니다. 앞으로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겁니다. 사실 창업 생태계라는 게 누가 뚝딱 만든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제주센터가 생기기 전에는 사실 제주에서 창업을 하려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창업을 하려고 해도 아주 막막했을 거예요. 제주센터가 생기면서 창업 생태계가 시작되었죠. 하지만 투자 여건은 다소 부족했던 게 사실입니다. 자기 자본금 몇 천만 원에, 정부 지원금 몇 억 수준으로 시제품 만드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이를 스케일업하기에는 부족해요. 보통은 10억 원 정도가 필요한데, 제주에 팁스가 들어오면서 그 정도 규모의 투자 시스템이 생긴 겁니다. 제주 지역에 처음으로 팁스 운영사가 생겼으니 앞으로 많은 관심을 받을 겁니다.
이병선_현재 제주센터를 포함해 110여 개의 운영사가 있는데, 그중 7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팁스 운영사가 생겼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고영하_지금 우리나라는 지역 균형 발전이 시급합니다. 지방이 소멸하고 있어요. 저는 창업 생태계 조성이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고 봅니다. 제주는 그나마 다른 지역보다 좀 더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어요. 좋은 자연 환경을 가졌고, 여전히 살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많은 곳입니다. 문제는 투자 여건인데, 지금처럼 팁스 운영사가 있다면 창업가들이 굳이 수도권을 고집할 필요가 없겠죠. 그럼 좋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고, 인재들이 더 모여들 겁니다.
이병선_창업 생태계의 확산이 이뤄진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인 듯합니다. 제주에서 투자받은 기업들이 점점 성장해 국내를 넘어 글로벌로 진출하기도 합니다. 이런 성과가 다시 제주 지역으로 돌아와 재투자가 이루어지는, 그런 선순환이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고영하_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느 지역만의 것이 아닙니다. 제주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로 나가고, 다시 제주에 와서 투자도 하고, 좋은 팀 발굴해서 협업하며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겠죠.
이병선_팁스는 현재 기술기반 스타트업 육성과 글로벌 진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이 팁스를 만드는 데 회장님께서 큰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팁스는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고영하_우선 (사)한국엔젤투자협회가 만들어진 배경부터 살펴봐야 하는데요, IMF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2010~2011년에는 창업 침체기라고 불릴 만큼 모든 게 어려웠어요. 꺼져가는 창업 생태계의 불씨를 살려보고자 2012년에 한국엔젤투자협회를 만들었지만, 역시 창업 아이템을 사업화하고, 양산하는 데 필요한 10억~20억 원 정도의 자금 지원은 어려웠죠. 소위 데스밸리로 불리는 구간의 스타트업을 지원할 시스템이 없었어요. 마침 눈에 보인 것이 이스라엘에서 진행하고 있는 TIP(Technological Incubators Program)이었어요. 당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 등과 함께 이를 벤치마킹했고, 국가 R&D 예산 중 30억 원 정도를 끌어와 2013년에 처음 운영사 5곳을 선정하고, 스타트업 15곳을 선발하면서 본격적으로 팁스를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정부 R&D 예산도 효율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예산 집행을 학계나 관이 주도하다 보니 시장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시장을 잘 아는 투자자, 액셀러레이터 등을 팁스 운영사로 정하고, 기업 선정 권한을 준 거죠.
이병선_팁스를 처음 시작할 때의 예산이 30억 원입니다. 올해는 3,700억 원으로 10년 만에 100배 이상 커졌는데요, 이런 성과가 있었던 이유에는 팁스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고영하_지금까지 팁스에 정부 지원 자금이 약 1조 2,000억 원 정도 들어갔습니다. 팁스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은 총 2,100곳 이상, 후속 투자 규모는 10조 8,000억 원 이상입니다. 정부 지원 자금 1조 2,000억 원이 마중물이 되어, 9배 이상의 효과를 일으킨 거죠. 팁스 선정 기업의 가치를 살펴본다면,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약 50조 원 정도가 됩니다. 정부 입장에서 본다면 이렇게 좋은 투자가 또 없죠. 하지만 아직도 부족합니다. 지원 규모를 연간 2,000곳까지 늘려야 합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연간 700여 곳의 스타트업을 지원합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는 힘들겠지만, 우리나라가 경제 규모가 더 크고 인구도 많으니 충분히 이스라엘을 넘어설 역량이 있다고 봅니다.
이병선_속도는 느리지만, 팁스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할 만합니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이나 팁스 운영사가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고영하_내수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영향력 있는 ‘히든 챔피언’을 육성해야 하죠. 강소기업이라 불리는, 매출액 5,000억 원에서 5조 원 정도 되는 중견 기업을 말하는데, 규모가 작아도 세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해요. 전 세계에 한 3,500개 정도가 있는데, 그중 46% 정도가 독일 기업입니다. 미국이나 중국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죠. 우리나라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병선_제주에 팁스가 들어오면서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가 마련되었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팁스 운영사로서 제주센터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팁스와 더불어 제주에 지금보다 더 힘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마련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고영하_바로 인재 양성입니다. 지역의 대학이 기업가 정신을 함양한 인재를 양성해 지역의 산업을 성장시키는 데 일조해야 하죠. 스탠퍼드대학을 빼고는 실리콘밸리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대학은 창업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 다른 예로 한때 조선업, 철강업이 활발했던 스웨덴의 말뫼라는 도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조선업, 철강업의 주도권이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넘어오자 도시가 소멸할 위기에 놓였는데요, 1998년 버려진 조선소 부지에 말뫼대학교를 세우면서, 이를 계기로 유럽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가 되었어요. 제주에 있는 대학들이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고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이유죠.
두 번째는 적극적인 투자 유치인데요, 예를 들어 혁신적인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외국인 예비 창업가에게 제주도에서 창업할 시 영주권을 주고, 초기 자금으로 1억~5억 원 정도를 투자한다면 어떨까요. 전 세계에서 인재가 몰려올 겁니다. 물론 엄격한 심사 기준이 필요하겠지만, 얼마든지 시도해 볼 만하다고 봅니다.
이병선_그동안 부동산 투자를 중심으로 해외 자본이 제주에 들어오는 패러다임이었다면, 앞으로는 기술과 창업을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될 수도 있겠군요. 제주센터도 다양한 방법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팁스 운영사로서 여러 기관과 협업해 우리나라 전체의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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