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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울 Apr 19. 2022

제주살이의 꽃, 바다 앞 우리 집.

가끔은, 돌고래가 넘실대는 서쪽 끝 마을 용수리를 아시나요?

  제주에 오게 된다면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고 싶었다. 3년 차 제주도민이 되어갈 때 즈음,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서울에서의 삶과, 직장을 정리하고 제주에 가서 일 년 살아보려고, 지금 아니면 언제 제주도에서 살아보겠니?"


  부모님의 외동아들로 자란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어머니, 아버지, 나 셋은 각자 분리되어 따로 살아가고 있었다. 가족의 정체성은 이미 중학교 때 어머니와 둘이 살게 된 이후로 옅어져만 갔고, 나의 제주 행 이후로는 그저 안부인사만 묻는 그런 독립적인 구성원의 역할만 수행할 뿐이었다.


  "왜 내려오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은 '지금 아니면 우리가 언제 같이 살아보겠냐'는 말이었다. 내 밥을 챙겨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받은 답변은 마음 한편에 꼭꼭 닫아놓았던 "가족"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되살리게 된 말이었을까. 


  그 통화를 받을 즈음, 제주에서 한 반려동물 관련 프랜차이즈의 총괄 본부장을 맡아 일 년 정도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고 제주로의 본점 이전을 통한 새로운 브랜딩 과정도 조금씩 끝을 볼 때였다. 나는 태생적으로 한 가지 일에 몰입해서 진행하고, 그 일이 끝나고 내 손을 떠났다고 생각하면 쉽게 놓고 다른 일을 찾는 사람이었고, 내가 사는 동네에 맞춰 일을 하는 성향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이 생각부터 떠올랐다. "다음 일은 뭘 해볼까?"


현재진행형, 다음 일 프리뷰

  정립되어가던 지금의 브랜드를 놓고, 새로이 나를 즐겁게 만들어줄 일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제주행을 통보하는 전화를 마치고 3일 후, 방문할 집의 리스트 약 30여 곳을 정리해 내 집을 방문한 건 예상하지 못한 빠른 전개였다. 하고 싶은 일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내 의사결정 방식은 과연, 어디에서 왔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가족의 유대감이 이런 점에서 발휘되는 부분일까?


   나는 '평화로운'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제주 서쪽 마을 한경면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루 종일 서쪽을 돌아다니시며 한 가족이 함께할 집을 찾아보기 시작하셨다. 생활권, 내 일터와의 거리 등 여러 가지 요인을 놓고 두 분께서는 한참을 고민하시고 결국 한 집에 의견이 모아졌다. 퇴사하기까지 시간이 남은 터라, 함께 집을 보러 다니지는 못했지만. 홍대에서도 그랬듯, 나의 부모님이 선택한 공간은 무조건적인 최선일 것이라는 믿음은 존재했다. 나의 어머니를 신뢰하기에.


  제주에서 처음으로 책임자를 맡아 진행했던 이 브랜드는, 이제 탄탄한 기반하에 날개를 달고 전국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살고 있던 집을 정리했다. 집주인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12층의 시티뷰는 사진첩 한편에 남기고 새 집 주소를 받아 들었다. 제주 시내에서 1시간이 걸리는 집. 이삿짐은 부모님이 갖고 내려오신 차에 미리 싣고 챙기지 못한 오토바이에 몸을 의탁해 한경면으로 출발했다.

앞으로 자주 등장할 홍대 출신 2018 슈퍼커브

  놀멍 쉬멍, 바람을 만끽하며 새 보금자리로 이동할 때 즈음, 시계는 오후 6시를 넘기고 있었고 나는 서쪽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동쪽에서 뜨는 해를 바라보던 나는, 서쪽에서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왔다. 한경면에 어서 오라는 듯, 져가는 태양은 네가 항상 보게 될 광경이라며 소름 돋는 일몰 풍경을 선사해 줬다.

'네가 매일 보게 될 풍경이라는 듯, 맞이해주는 집 앞 일몰 풍경'


  오토바이를 몰며,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바다 위에 놓인 풍차들 사이로 져가는 해를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제주 서쪽 끝, 용수리에 도착하고 우리 집이 될 빌라에 들어섰다. 꼭대기층, 복층, 오션뷰 테라스, 노래방 기계, 서쪽으로 틔여 있는 주방과 복층 방.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집 안에서 보이는 풍경과, 복층 테라스에서 보이는 차귀도 풍경

  일 년,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일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떨어져 살았던 우리 가족의 유대를 끈끈이 하기에는 더욱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 다만,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이게 되었고, 좋은 공간에 제주에서 함께하기에 더 바랄 것이 없었다. 3년 만에 얻어먹은 어머니의 밥상은 제주에서 먹은 어떤 음식보다 훌륭했다. 아무래도, 내가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독립적인 개체로 행동하는 것보다, 함께할 때 가족은 더욱 의미 있는 것임을.


어서 오세요, 돌고래가 넘실대는 평화로운 서쪽 마을 용수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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