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돌고래가 넘실대는 서쪽 끝 마을 용수리를 아시나요?
제주에 오게 된다면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고 싶었다. 3년 차 제주도민이 되어갈 때 즈음,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서울에서의 삶과, 직장을 정리하고 제주에 가서 일 년 살아보려고, 지금 아니면 언제 제주도에서 살아보겠니?"
부모님의 외동아들로 자란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어머니, 아버지, 나 셋은 각자 분리되어 따로 살아가고 있었다. 가족의 정체성은 이미 중학교 때 어머니와 둘이 살게 된 이후로 옅어져만 갔고, 나의 제주 행 이후로는 그저 안부인사만 묻는 그런 독립적인 구성원의 역할만 수행할 뿐이었다.
"왜 내려오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은 '지금 아니면 우리가 언제 같이 살아보겠냐'는 말이었다. 내 밥을 챙겨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받은 답변은 마음 한편에 꼭꼭 닫아놓았던 "가족"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되살리게 된 말이었을까.
그 통화를 받을 즈음, 제주에서 한 반려동물 관련 프랜차이즈의 총괄 본부장을 맡아 일 년 정도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고 제주로의 본점 이전을 통한 새로운 브랜딩 과정도 조금씩 끝을 볼 때였다. 나는 태생적으로 한 가지 일에 몰입해서 진행하고, 그 일이 끝나고 내 손을 떠났다고 생각하면 쉽게 놓고 다른 일을 찾는 사람이었고, 내가 사는 동네에 맞춰 일을 하는 성향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이 생각부터 떠올랐다. "다음 일은 뭘 해볼까?"
정립되어가던 지금의 브랜드를 놓고, 새로이 나를 즐겁게 만들어줄 일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제주행을 통보하는 전화를 마치고 3일 후, 방문할 집의 리스트 약 30여 곳을 정리해 내 집을 방문한 건 예상하지 못한 빠른 전개였다. 하고 싶은 일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내 의사결정 방식은 과연, 어디에서 왔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가족의 유대감이 이런 점에서 발휘되는 부분일까?
나는 '평화로운'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제주 서쪽 마을 한경면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하루 종일 서쪽을 돌아다니시며 한 가족이 함께할 집을 찾아보기 시작하셨다. 생활권, 내 일터와의 거리 등 여러 가지 요인을 놓고 두 분께서는 한참을 고민하시고 결국 한 집에 의견이 모아졌다. 퇴사하기까지 시간이 남은 터라, 함께 집을 보러 다니지는 못했지만. 홍대에서도 그랬듯, 나의 부모님이 선택한 공간은 무조건적인 최선일 것이라는 믿음은 존재했다. 나의 어머니를 신뢰하기에.
제주에서 처음으로 책임자를 맡아 진행했던 이 브랜드는, 이제 탄탄한 기반하에 날개를 달고 전국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살고 있던 집을 정리했다. 집주인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12층의 시티뷰는 사진첩 한편에 남기고 새 집 주소를 받아 들었다. 제주 시내에서 1시간이 걸리는 집. 이삿짐은 부모님이 갖고 내려오신 차에 미리 싣고 챙기지 못한 오토바이에 몸을 의탁해 한경면으로 출발했다.
놀멍 쉬멍, 바람을 만끽하며 새 보금자리로 이동할 때 즈음, 시계는 오후 6시를 넘기고 있었고 나는 서쪽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동쪽에서 뜨는 해를 바라보던 나는, 서쪽에서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왔다. 한경면에 어서 오라는 듯, 져가는 태양은 네가 항상 보게 될 광경이라며 소름 돋는 일몰 풍경을 선사해 줬다.
오토바이를 몰며,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바다 위에 놓인 풍차들 사이로 져가는 해를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제주 서쪽 끝, 용수리에 도착하고 우리 집이 될 빌라에 들어섰다. 꼭대기층, 복층, 오션뷰 테라스, 노래방 기계, 서쪽으로 틔여 있는 주방과 복층 방.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일 년,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일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떨어져 살았던 우리 가족의 유대를 끈끈이 하기에는 더욱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 다만,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이게 되었고, 좋은 공간에 제주에서 함께하기에 더 바랄 것이 없었다. 3년 만에 얻어먹은 어머니의 밥상은 제주에서 먹은 어떤 음식보다 훌륭했다. 아무래도, 내가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독립적인 개체로 행동하는 것보다, 함께할 때 가족은 더욱 의미 있는 것임을.
어서 오세요, 돌고래가 넘실대는 평화로운 서쪽 마을 용수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