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생, 5년차 제주도민, 자영업자, 혹은 어머니의 아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계속해서 드는 생각이다. 내 눈앞에 있는 오렌지색 문, 내가 운영하는 내 공간. 그 사이로 들어오는 노을빛은 룸바 오렌지 빛이 가득 감싼 우리 매장, 벽돌과 우드톤으로 장식된 실내 인테리어를 따듯하게 밝히는 조명이 된다.
25살, 서울에서 전공을 살린 직장생활을 마무리했다. 23살부터 2년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언가를 잃고 무언가를 얻은 소중한 시간인 사실은 변함이 없다. 꿈을 꾸었었던, 각자 머릿속에 존재하는 그 언저리의 시간들은 우리는 모두 잊고 살아감에 당연한 세상이 되어버렸으니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은 꼬리를 물고 내 자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서울살이는 "더 큰 톱니바퀴가 되기 위한 경쟁"이라고 생각했다. 시스템이 정해주는 퍼소나는 명확했고, 나는 시스템이 원하는 톱니바퀴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모 예능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내가 유지해야 통과할 수 있는 벽이 저 앞에서 다가온다. 내 등 뒤에는 그 몸짓을 하지 않으면 떨어져 버리는 물이 있고 벽은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온다. 어떻게든 그 벽을 통과하면, 다음 벽이 다가오고 만약 통과하지 못하면 부품조차 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중2 때 생각할법한 생각을 25살에 해버린 건 "제주가 나를 불렀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라왔다. 중랑구에서 동대문구로, 다시 중랑구로, 그리고 홍대로. 한 지역에서 무탈히 살아간다는 건 사실, 아무 의미도 없다. 굳이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었고 나에게 서울에서 나고 자람은 당연한 일이고 그 일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부모님이 서울에 계셨기 때문이고, 그들의 직장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무탈한 일상이 반복되며 변화의 필요성을 그들이 느끼지 못했기에 나는 서울에 있었고 이곳은 내가 선택한 장소가 아니었음엔 분명했다.
부모님의 전출, 회사의 발령 등이 아닌 나 스스로가 그렇게 결정하고 싶었다. 단지 현재 내가 살아가는 장소를 바꿔보고 싶은 욕심. 그 욕심을 현실로 만들기에 필요한 시간은 단 하루에 불과했다. 연극의 1막을 내 손으로 끝내고 다시 시작하는 2막, 우스운 일이지만 결심을 행동으로 옮긴 찰나의 시간에 나는 "드디어 내 삶에 주도권을 스스로 쟁취했다."는 생각에 실소를 지으며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