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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울 Dec 12. 2021

육지것, 제주에 도착하다.

캐리어 한 개와 백팩 하나.

  "밤 비행" 생각만 해도 설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창가 자리의 밤 비행을 예약하고, 한 시간밖에 안 되는 짧은 비행시간 동안 무슨 노래를 들을까 고민했다. 검정치마 그리고 백예린, 그중에서도 기내에서 듣는 "hollywood"는  이륙할 때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라고 감히 말해본다.

개인적으로, 밤하늘과 잘 어울리는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상공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집들과 고층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뉴스에서 지겹도록 들어온 단어 부동산, 그리고 파이어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MZ세대의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그 어떤 수를 상상하더라도 아마 내 눈에 들어온 집들의 수가 더 많을 것이다. 다만 "온전한" 내 소유의 집은 없다는 것. '나는 혹시 서울이 두려워 도망치는 걸까?' 문득 들었던 생각은, 마음 한켠에 접어두기로 했다. 

도대체 내 집은 어디에 있을까?

  2019년 8월 초의 늦여름 밤. 캐리어 한 개와 백팩 하나, 나는 제주에 발을 붙일 수 있었다. 미리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 잠시 눈을 붙였다. 내일은 아마 바쁜 하루가 될테니까. 오늘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한 시간의 짧은 비행에서 느낀 내 감정은 어딘가에 묻어두기로 했다. 이 공간에 적응한 내가 스스로 깨닫고 찾아볼 그때를 위해, 타입캡슐로 감정을 묻었다.


  다음 날, 서울에서 미리 알아봤던 집 몇 군데를 돌아다녀 보았다. 내가 정한 두 분류의 집은 다음과 같다.

1) 잘 지어진 깔끔한 오피스텔 , 2) 오래되어도 아늑한 느낌이 드는 원룸

상상했던 원룸 제주생활의 이미지 (사진은 이태원의 airbnb)

  처음에는 후자의 생각으로 집을 구경하러 다녔다. 제주까지 왔는데, 도시 느낌이 잔뜩 묻어있는 풀옵션 오피스텔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말이다. 그러나, 첫 번째 집을 본 순간 내가 생각하는 제주의 느낌은 저 멀리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풀 옵션 오피스텔과 원룸의 가격차이는 한 달 5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룸 안의 집기들은, 오피스텔을 홍보할 때 괜히 "풀옵션"을 강조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는 상태였다. 또한, 방 상태를 봤을 때
집주인님께서 제시한 월세는, 내가 이 방을 직접 보고 판단한 월세와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얼핏 들었었던 제주의 집 값 이야기가 생각나며 첫날부터 풀이 죽은 내 모습을, 금이 간 거울이 비추고 있었다.

정말.. 이 가격이 맞나요...? (글의 내용과 관련 없음)

  두 번째, 그날따라 제주에는 비가 왔었고, 집주인께 전화를 드려 혼자 비밀번호를 들어가 본 집들이 많았다. 눅눅한 공기를 맡으며 원룸의 문을 열고, 그날따라 어두웠는지 나도 모르게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내 눈에 보이는 바선생님 한 쌍은, 살짝 금이 갔던 원룸의 로망을 와장창 박살내기에 충분했다.


  '제주 라이프에 오피스텔은 없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로망대로 살아야지' 지키고자 했던 첫 번째 다짐은, 어쩔 수 없는 타협을 이룰 수밖에 없었고 결국 나는, 12층의 아침해가 드는 동향으로 큰 창이 나있는 풀 옵션 오피스텔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제주살이는 풀옵션 오피스텔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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