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것, 제주에 도착하다.

캐리어 한 개와 백팩 하나.

by 산울

"밤 비행" 생각만 해도 설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창가 자리의 밤 비행을 예약하고, 한 시간밖에 안 되는 짧은 비행시간 동안 무슨 노래를 들을까 고민했다. 검정치마 그리고 백예린, 그중에서도 기내에서 듣는 "hollywood"는 이륙할 때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라고 감히 말해본다.

4424D027-EF7C-4D5B-A1C2-299996313267_1_201_a.jpeg 개인적으로, 밤하늘과 잘 어울리는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상공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집들과 고층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뉴스에서 지겹도록 들어온 단어 부동산, 그리고 파이어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MZ세대의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그 어떤 수를 상상하더라도 아마 내 눈에 들어온 집들의 수가 더 많을 것이다. 다만 "온전한" 내 소유의 집은 없다는 것. '나는 혹시 서울이 두려워 도망치는 걸까?' 문득 들었던 생각은, 마음 한켠에 접어두기로 했다.

DA43B998-FB3E-46D1-BBB7-BCB8425DAEFD_1_105_c.jpeg 도대체 내 집은 어디에 있을까?

2019년 8월 초의 늦여름 밤. 캐리어 한 개와 백팩 하나, 나는 제주에 발을 붙일 수 있었다. 미리 예약해둔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 잠시 눈을 붙였다. 내일은 아마 바쁜 하루가 될테니까. 오늘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한 시간의 짧은 비행에서 느낀 내 감정은 어딘가에 묻어두기로 했다. 이 공간에 적응한 내가 스스로 깨닫고 찾아볼 그때를 위해, 타입캡슐로 감정을 묻었다.


다음 날, 서울에서 미리 알아봤던 집 몇 군데를 돌아다녀 보았다. 내가 정한 두 분류의 집은 다음과 같다.

1) 잘 지어진 깔끔한 오피스텔 , 2) 오래되어도 아늑한 느낌이 드는 원룸

B8202BE8-1C2F-4643-A88F-2839A3855E85_1_105_c.jpeg 상상했던 원룸 제주생활의 이미지 (사진은 이태원의 airbnb)

처음에는 후자의 생각으로 집을 구경하러 다녔다. 제주까지 왔는데, 도시 느낌이 잔뜩 묻어있는 풀옵션 오피스텔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말이다. 그러나, 첫 번째 집을 본 순간 내가 생각하는 제주의 느낌은 저 멀리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풀 옵션 오피스텔과 원룸의 가격차이는 한 달 5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룸 안의 집기들은, 오피스텔을 홍보할 때 괜히 "풀옵션"을 강조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는 상태였다. 또한, 방 상태를 봤을 때
집주인님께서 제시한 월세는, 내가 이 방을 직접 보고 판단한 월세와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얼핏 들었었던 제주의 집 값 이야기가 생각나며 첫날부터 풀이 죽은 내 모습을, 금이 간 거울이 비추고 있었다.

8B6D1C67-7E57-48D3-B7EC-FFF31678F4B7_1_105_c.jpeg 정말.. 이 가격이 맞나요...? (글의 내용과 관련 없음)

두 번째, 그날따라 제주에는 비가 왔었고, 집주인께 전화를 드려 혼자 비밀번호를 들어가 본 집들이 많았다. 눅눅한 공기를 맡으며 원룸의 문을 열고, 그날따라 어두웠는지 나도 모르게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내 눈에 보이는 바선생님 한 쌍은, 살짝 금이 갔던 원룸의 로망을 와장창 박살내기에 충분했다.


'제주 라이프에 오피스텔은 없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로망대로 살아야지' 지키고자 했던 첫 번째 다짐은, 어쩔 수 없는 타협을 이룰 수밖에 없었고 결국 나는, 12층의 아침해가 드는 동향으로 큰 창이 나있는 풀 옵션 오피스텔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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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제주살이는 풀옵션 오피스텔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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