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그리운 것은 서울의 대중교통들.
12층, 침대 옆, 동향으로 크게 나있는 창은 오전 일곱시 삼십분이면 따사로운 아침 햇살로 아침잠을 깨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해도 자취를 하던 나는, 눈을 뜨니 제주도민이 되어있었다. 달라진 것은, 내가 일어난 침대, 서울에서 볼 수 없었던 건물에 가로막하지 않은 넓게 트인 시야, 창사이로 들어오는 맑은 공기. 한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쉬운 사실은, 차가 없다는 것.
서울의 삶 속에서 차는 꽤 후순위의 가치 중 하나였다. 지금처럼 차박과 캠핑이 트렌드가 된 시대도 아니었을 뿐더러 코로나가 우리의 삶으로 찾아올지도 몰랐기 때문에, 또한 도로위 꽉꽉 차있는 차들의 처지나 퇴근길 270번 버스에 낑겨있는 처지나 다를게 없다고 생각했다. 서울 전역을 천원 언저리의 금액으로 돌아다닐 수 있음은 사실 서울시민으로써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물론, 제주에서도 시내를 돌아다니기에 차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제주시청에 있는 엽기떡볶이를 먹으러 갈 수 있고, 시내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친구를 만날수도 있다. 다만 제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여행객들과 다른 동선을 타기 위해서 차는 꼭 필요했다.
서울로 돌아갈 수도 있기에 중고차를 살 수는 없었고, 많은 렌트카 업체들에 한 달 장기렌트가 가능한지 문의했다. 쉽게 차를 구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최장 일주일만 렌트가 가능하다는 답변들이 들려왔다. 그 말인 즉슨, 일주일간 차를 렌트하고 반납하고, 다시 다른 차를 렌트하는 비효율적인 프로세스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비즈니스고, 여행객을 위해 렌트하는 사업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렌트카 업체들을 지나쳐 3페이지 정도쯤 찾을 수 있는 한 업체에서 구형 아반떼를 50만원에 렌트할 수 있었다. 약 15만 키로가 넘은 연로한 친구였지만 내 몸을 의탁해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단 사실에 마냥 기뻤다.
모든 준비는 갖춰졌다. 진정한 제주에서의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 한 달씩 갱신되는 나만의 집 그리고 한달짜리 차. 남은건 첫 여행지를 정하는 일이 남았을 뿐.
카카오맵을 키고 제주 지도를 확인했다. 제주를 방문한 과거의 기록들이 빼곡히 남겨져 있었다. 오조리로 가보기로 했다. 성산과 조천 사이 어중간한 그 어딘가. 이박 삼일로 방문한 제주 일정이었으면 유명한 관광지들의 그늘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을 그 곳.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오조리로 방향을 잡았다. 어느 누구의 개입도 없이 내가 선택한 그 곳. 빛을 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