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넘은 서점 /김문규
아름다운 더럭초등학교와 연화못이 바라보이는 곳. 주택 한쪽에 서점이 있다. 자세히 살펴봐야 눈에 띄는 이 겸손한 서점은 아침 8시부터 낮 12시까지만 문을 연다. 작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는 움직임이 감지되는, 봄을 닮은 공간이다.
하가리에는 언제 왔고, 책방은 언제부터 열었나요?
제주시에 살다가 조용한 곳, 아이들 교육 환경이 좋은 곳을 찾아 하가리에 정착했습니다. 하가리 하면 유명한 더럭초등학교와 연화못 앞에 살기 시작한 게 벌써 5년이 됐네요. 그사이 더럭초등학교에 입학한 작은 아이도 4학년이 됐습니다. 이 집은 지을 때부터 작은 책방을 생각해 3.3평짜리 공간을 따로 확보한 건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루다가 2020년 열게 됐습니다.
시내에서 다른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일종의 투잡인데, 책방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시나요?
책방은 너무 하고 싶은데 밥 벌어먹는 일은 따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 계속 고민했어요. 일반 서점처럼 낮에 계속 열어야 한다고만 생각하다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찾아보자는 쪽으로 발상을 전환했죠. 그래서 정한 것이 오전에만 문을 여는 책방입니다. 아마 그런 책방은 없을 텐데 그래도 한 번 해보자고 용기를 낸 거죠. 오전에만 여는 대신 일찍 엽니다. 오전 8시부터 여니까요. 아침 8시에 누가 오나 싶기도 했는데 오시더라고요. 요 며칠 전에도 관광객 한 분이 8시 땡하니까 오셨어요. 첫 비행기로 오자마자 여기부터 들렀다고 하더라고요.
하나의 큰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따른 소주제 별로 책들을 큐레이션한 게 특징적이네요?
제 독특한 독서습관에서 나온 거예요. 하나의 주제를 정하면 거기에서 파생되는 다른 주제들로 나아가는 방식이죠. 예를 들어 시간을 주제로 잡고 읽기 시작하면 인생과 시간을 엮어서 생각하고, 내 인생의 2막은 어떻게 보낼 것인가, 어떻게 시간을 관리할 것인가, 뭐 이런 고민을 연결하다 보면 장르와 상관없이 이런 책 저런 책 막 읽게 돼요. 주제가 넘어가는 거죠. 책방을 구상할 때부터 이런 컨셉으로 하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어요. 책방 이름도 여러 후보들이 있었어요. 궁금한 책방, 김씨 책방, 두근두근 책방…. 그러다가 ‘주제넘어 볼까요’라는 컨셉을 확정하면서 주제넘은 서점이라는 이름도 나온 거지요.
그간의 주제들은 어떤 것들이었나요?
‘변신’,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쫌 움직여 볼까?’ 라는 주제가 세 번째네요. 하나의 주제를 큐레이션하는 기간을 정해놓고 있지는 않아요. 제가 준비되는 순간부터 혼자서 해야 되기 때문에 혼자서 살펴보고 준비하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책을 정하기는 쉬운데 주제 정하는 게 힘들어요. 그래서 일단 책을 많이 봅니다. 하루에 한 권에서 두 권은 보니까. 일년에 5백권 보거든요. 그림책을 빼고서도. 꾸준히 책을 보기 때문에 주제만 정해지면 그 주제와 관련된 것들을 고르는 것은 금방 되죠. 지금까지는 모두 제가 다 읽은 책들로 구성했어요.
이번 주제는 ‘쫌 움직여볼까’인데 어떻게 정한 건가요?
시간이 좀 걸렸어요. 주제가 많아 여름부터 고민했습니다. 여러 가지. 원래는 주제를 ‘형용사’로 하려고 했었어요. ‘설레이는’, ‘찬란한’처럼요. 이런 식이 소주제로 구성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요즘 좀 답답하기도 하고 코로나 블루도 있어서 함께 말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거, 그런데 거창하지는 않고 꼬물꼬물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는 의미로 주제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대주제를 정하고 소주제를 다시 정하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이번 대주제가 ‘쫌 움직여 볼까’니까 그에 맞는 소주제를 잡아보는 거죠. ‘아는 척 좀 해 볼까’, ‘있는 척 좀 해 볼까’, ‘정신 좀 차려 볼까’ 이런 소주제도 있고, ‘정신줄 좀 놓아 볼까’ 이렇게 상반된 소주제도 있습니다. 이렇게 파생되다 보니 이번 소주제가 43개나 되더라고요. 소주제에 따라서 책을 두서너 권씩 끼워서 진열합니다. 진열된 후에도 소주제나 책들은 바뀔 수도 있고요. 그렇게 계속 신경 쓰다 보면 책 진열이 매끄러워져요.
이 서점이 어떻게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나요?
저는 책방을 통해 딴짓을 해보려고요. 딴짓은 즐거움을 주니까요. 제게 딴짓이란 책을 매개로 여는 인생 2막이에요. 책방을 열고 나서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마라톤도 완주했어요. 지금도 매일 새벽이면 책방 앞에서 달리기를 합니다. 책은 정적이지만 사실 책을 읽는 목적은 움직이는 거거든요. 자극받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든지 몸을 움직이든지. 움직여야죠. 책방 앞에서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인스타에 꾸준히 올려놓으니 이를 보고 움직이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어요. 무릉리 분이신데 그 분도 거기서 뛰어요.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뛰기 시작한 건데 어디선가 만나겠죠. 이렇게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장소로 하가리의 주제넘은 서점이 인식되길 바랍니다.
*주제넘은 서점은 하가리의 사람책으로 두 사람을 추천했다. 하가리 출신으로 서울과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옛집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 임현정씨, 은퇴한 후에도 더럭초등학교의 영원한 선생님으로 남아있는 이완국씨가 그들이다.
발행처 ㈜제주착한여행 / 인터뷰·정리 권영옥 / 사진 지은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