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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juGrapher Dec 28. 2016

S26. 겨울왕국으로

1100고지의 상고대

제주에도 겨울은 찾아온다.


사계절이 바뀌고 또다시 겨울이다. 그나마 따뜻한 남쪽 나라지만 제주의 겨울도 춥기는 마찬가지다. 겨울의 모진 바람은 덤이다. 봄이 올 때까지는 앙상한 나뭇가지와 하얀 억새만이 전부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 동백이 피고 지지만 매일 동백만을 바라보며 긴 겨울을 보낼 수가 없다. 그렇게 무료한 시기지만 눈 덮인 한라산을 오르는 것은 제주에서 겨울을 만끽하는 나름의 활력소였다. 하지만 바쁜 한주를 보내고 피곤한 주말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힘겹게 겨울 산을 오르는 것도 점점 귀찮아졌다. 여전히 설산을 오르면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겠지만 외로이 산을 오르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겨울산을 포기할 수가 없다. 앙상한 가지를 하얗게 물들인 상고대를 한번 보고 나면 또다시 보고 싶어 진다. 그래서 찾아낸 묘수가 차로 1100고지에 올라가서 상고대를 보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지난겨울에는 이른 아침 출근 전에도 찾아가곤 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서 다시 1100고지를 찾는다. 아직 제주에 제대로 된 눈이 오지는 않았지만 한라산을 짙게 감싼 구름은 한라산 머리를 하얗게 물들였다. 나의 겨울이 시작됐다.


어리목주차장에서 본 한라산 상고대
1100고지를 가는 길에 소나무숲길이 짧게 있는데, 이곳의 상고대가 백미다.

1100도로는 노견에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지만, 이곳은 차를 정차해둘 수가 있다. 그래서 가끔 여기에 차를 세워두고 도로를 따라 걸으며 사진을 찍는다. 기온이 조금만 높아도 이곳에서 상고대를 볼 수가 없는데, 지난 주말의 드라이브는 운이 좋았다.

하얀 솔잎과 디배되는 갈색의 나무기둥이 조화롭다.
소나무길

파란 하늘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상고대를 볼 수가 없었을 거다. 기온이 더 낮아져서 쌓인 눈이 나뭇잎에 결빙되거나 아직 태양빛이 내려쬐기 전인 이른 아침이 아니면 그런 호사를 누릴 수가 없다.

붉은 열매가 더욱 탐스럽게 보인다.
마치 꽃이 핀 것처럼...
흰색 페인트를 뿌려놓은 것처럼 솔잎 하나하나가 하얗게 변했다.
삼나무...

그냥 숲에 서있는 나무를 보면 편백나무와 구분하기 어려운데 (처음에는 편백나무라고 캡션을 붙였음) 잎이 활짝 펴진 게 편백나무고, 사진처럼 뭉쳐진 게 삼나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무를 베어내면 삼나무는 중간에 짙게 원이 있습니다.

해발 1050m다. 그냥 동네 중산간에서도 상고대를 마음껏 볼 수가 있었으면... 그럼 엄청 춥겠지.
미처 떨어지지 못한 나뭇잎도 흰색으로 위장한다.
계곡
이 지점에서 사진을 찍을 때... 모델이 절실했다. 잠시 정차해서 사진을 찍는 분을 급하게 찍느라 수평이니 구도니 그런 걸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1100고지 휴게소에서 본 한라산. 휴게소의 2층은 공사중이라서 올라가지 못한다.
이런 추운 곳에도 나무는 여전히 생명력이 넘친다.
생태습지에서 본 1100고지 휴게소
많은 사람들이 상고대를 즐기고 있다.
붉은 열매

비아그라를 챙기지 않아서 급하게 내려왔다와 같은 드립은 이젠 식상할 때가 됐다.


벌써 2016년의 마지막 주 그리고 12월의 끝인데 아직 제주에 제대로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 2주 전에 살짝 오긴 했지만... 지난겨울에도 그렇게 12월을 보냈는데 1월의 갑작스러운 대설로 제주도가 난리가 났었는데, 이번 겨울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또 큰 눈이 내리면 휴가를 내고 버스로 사려니숲 근처까지 가서 눈 내린 비자림로 삼나무길의 모습을 사진 찍고 또 걸어서 집까지 내려오는 걸 계획 중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아침 출근 전에 1100고지를 또 다녀왔습니다.


T: http://bahnsville.tistory.com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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