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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juGrapher May 24. 2018

시간은 그저 흐르지 않았다.

소래습지 생태공원

제주를 떠나온 후로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다. 제주의 마지막 1년을 보내던 작년에도 의도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꼴로 출사 회수를 제한했지만 그래도 매주 꾸준히 사진을 찍고 글을 적었었다. 육지로 오면서 그동안 찾아가 보고 싶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많은 곳을 방문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지만은 않다. 찾아가 보고 싶었던 곳을 메모해두지도 않았었는데 막상 육지로 오니 어디부터 찾아가 봐야 할지 감이 아직 없다. 바로 생각나는 장소들도 여럿 있지만 계절적으로 맞지 않거나 미리 계획을 잡아야 할 만큼 먼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사진 사이트에 올라오는 장소 중에서 운전으로 한 시간 내에 갈 수 있는 곳들을 추려서 가능한 가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렇게 찾은 곳이 소래습지다. 미명에 땅 안개가 자욱한 평지에 있는 풍차는 이국적이고 몽환적이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찾아가 보고 싶었지만 처음 가는 곳이라 그냥 늦은 오후에 사전답사 겸 찾아가 봤다.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나름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 그 첫 방문이 5월 첫날 메이데이였다. (표지 사진) 그리고 3주가 흐른 어느 맑은 주말에 한번 더 찾았다.


지난 주말에 늦게 일어났는데 창밖으로 하늘이 아주 푸르고 공기도 맑았다. 이런 날에 집에만 있는 것이 몹씨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적응 중이라 딱히 떠오르는 장소가 없어서 그냥 다시 소래습지를 찾았다. 날씨가 좋아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찾아올 엄두가 없어서, 그리고 어쩌면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다시 찾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른 새벽에 이곳을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냥 카메라만 들고 20분 차 타고 나가면 되던 제주와는 많이 달랐다.

전날 내린 비로 나름 반영사진이 완성됐다.

그럼에도 늦은 오후의 햇살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강아지풀을 닮은 풀이 석양빛에 쌓인 그 순간이 참 따뜻하다. 첫 방문에는 표지 사진처럼 누른 겨울 들판이었는데, 3주 만에 세상이 파릇파릇한 여름 들판이 됐다. 아주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니었지만 자연이 색을 바꿔가는 걸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석양 빛에 물든 풀밭

그렇게 실망을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 만약 더 늦은 시간이면 어떤 모습일까? 가 궁금해졌다. 제주에서 새별오름 나홀로나무를 늦은 저녁에 찾아갔을 때의 그런 우연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갖고 많은 풀벌레들의 습격을 버티며 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낮에는 멀리 보이는 아파트 병풍이 참 볼품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나 둘 불빛이 켜지면서 내가 지금 도시에 왔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페이스북에는 약간 색보정을 한 사진을 올렸는데 (사진 사이트에 올라온 과한 보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업무용 노트북에는 편집툴이 없어서 원본을 그대로 올린다. 남들이 찍는 땅 안개 낀 일출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남들이 공유하지 않은 다른 모습을 공유하게 된 것은 기쁜 일이다. 아, 그리고 요즘 안성의 목장 사진도 자주 올라오던데 한번 사전답사부터 다녀와야 할 듯하다.

viva da vida.. 인생이여 영원하다. 제주를 떠난 후의 내 삶도 조금은 다르지만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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