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성종과 중종

선릉 (宣陵)과 정릉 (靖陵)

by JejuGrapher

9월 4일에 코엑스에서 카카오 콘퍼런스가 있었습니다. 합병 후 처음 연 콘퍼런스에서 광고 랭킹 알고리즘을 소개하는 발표하게 됐습니다. 콘퍼런스가 좀 일찍 끝나서 돌아오는 길에 선정릉에 들렀습니다. 미리 카메라를 챙겨가지 않아서 나중에 다시 올까도 생각했지만 주말에 차를 끌고 서울 시내에 들어올 일이 없을 듯해서 그냥 짧게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모두 아이폰으로 찍은 것입니다.


요즘은 스타트업이라 부르지만 벤처라고 부르던 2000년대 초반에 대학 동기 중에 병력특례로 입사한 회사가 선릉역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선릉이라는 지명을 처음 들었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그래서 선릉역에도 몇 번 갔습니다. 그렇지만 선릉이 왕릉 이름에서 따왔다는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습니다.


선정릉은 참 재미있는 곳입니다. 제목에 '연'라고 붙인 이유가 그래서입니다. 선릉은 조선 9대 성종의 무덤이고 정릉은 11대 중종의 무덤입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생각은 그러면 10대 임금은 어디에?입니다. 왕릉 내부의 역사관을 둘러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성종과 중종 사이에 연산군이 끼어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성종과 중종은 몰라도 연산군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겁니다. 성종과 중종을 연결하는 연(산군)입니다. 왕릉을 조성했던 조선시대에 선릉 일대는 그냥 허허벌판이거나 수풀이 우거진 숲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나무보다 더 높게 쏟은 빌딩 숲으로 변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곳이기도 하고, 도시와 숲이 연결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여러 의미에서 연결되는 곳이기에 처음부터 '연'이라는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이전에 방문했던 영릉, 헌릉, 인릉과 구조상 큰 차이는 없습니다. 어차피 조선 개국부터 왕릉의 구조가 정해졌으니...


티켓 (1,000원)을 끊고 들어가서 우선 오른쪽 산책길을 따라서 정릉으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빌딩 숲 사이의 공간이 어색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숲과 빌딩 숲이 의외로 조화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릉의 정자각
정릉의 참도와 정자각
참도를 따라 정자각으로 조금 더 들어간 모습
정자각에서 바라본 정면... 빌딩숲으로 바뀌었는데 임금님이 좀 답답해할 듯ㅎㅎ
정릉 봉분.

봉분 위로 올라갈 수 없어서 다소 아쉽습니다. 하지만 도심 속이 왕릉은 도시인들에게 좋은 안식 공간을 제공합니다. 다양한 루트의 산책로가 있어서 좋습니다. 다소 아쉬운 점이라면 노인분들도 많이 보였고 외국인들도 많았지만 (평일 낮이긴 하지만) 젊은 청년들의 모습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조금 전 코엑스에서는 사람들로 미어터졌는데 조금 떨어진 숲에서 젊은이를 보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는 점은... 왕릉을 나와서 퇴근하는 인파 속에서 조금 전에 가졌던 이질감이란...

소나무숲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아서 가장 아쉬운 장면입니다. 왕릉이나 정자각 등은 이전에 다른 왕릉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주변의 조경, 특히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 숲은 왕릉마다 모두 다릅니다. 특히 밝은 갈색빛이 도는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폰카로 제대로 담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정현왕후(성종)의 묘

지난 글에서 헌인릉이 그나마 봉분 가까이 갈 수 있는 왕릉이라고 했는데, 선릉도 봉분 옆으로 올라가서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도심에 있어서 많은 이들이 방문할 것을 대비해서 조금 더 가까이서 보게 만들어둔 모양입니다. 선릉의 특이점이라면 임금의 무덤과 왕비의 무덤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왕릉은 합장을 하거나 바로 옆에 같이 모셔놨는데, 성종과 정현왕후의 묘는 다소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어쩌면 연산군이 계모의 무덤을 굳이 선왕의 옆에 두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선릉의 정자각 뒷면

선릉은 앞서 봤던 왕릉과 구조가 조금 다릅니다. 다른 왕릉을 가면 홍살문 뒤로 정자각이 있고, 정가각 뒤로 언덕 그리고 그 언덕 위에 봉분이 세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선릉은 정자각 뒤로 그냥 돌길이 길게 있고, 언덕과 봉분은 우측으로 약 45도 되는 뒤편에 있습니다.

선릉을 지키는 무인석
성종의 봉분
성종의 봉분에셔 내려다본 정자각과 빌딩숲
선릉의 참도와 정자각

역사관에서 읽은 것인데, 성종이 타계하고 선릉을 만들면서 연산군이 처음으로 생모의 이야기를 알았다고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가 됐던 그 사화의 시작이 선릉 조성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영화 등에서는 어릴 때부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자랐던 걸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연산군에게 순진한 면이 있습니다. 아무라 모든 사람이 속였더라도 성인이 될 때까지 생모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는 점이 조금 의아합니다. 무덤을 만들면서 선왕의 연대기를 정리해서 최종적으로 왕에게 검토 (결재)를 받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때 처음으로 생모가 폐비 윤씨였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이후로 무오사화를 비롯해서 조선의 혼란기를 맞이했다는...

선정릉의 재실

카메라를 챙겨서 가지 않은 것이 몹시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스마트폰으로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점이 과고의 왕릉과 대비해서 신기하면서 좋기도 합니다.


그리고 과연 '왕릉'이 문화재인가?라는 의문이 계속 듭니다. 물론 과거에 만든 것이지 문화재 (사적)으로서의 가치는 있습니다. 하지만 왕릉과 부속건물들이 당시에 살던 사람들의 시대상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명문 양반들도 이와 비슷하게 무덤을 만들 수 없는데, 군주의 대다수는 제대로 된 봉분마저 없었을 것입니다. 간혹 가야나 신라, 백제의 무덤을 발굴한 기사를 봅니다. 다양한 부속물들이 출토됐다고 소개하지만, 과연 그 부속물들이 실제 서민들이 사용했던 것들일까요? 왕이나 승리자의 모습만 역사에서 기억하지만 실제 역사를 이룬 것은 보이지 않고 아무도 기억조차 못하는 수많은 민초였을텐데 말이죠. 우리는 왕릉을 통해서 그들의 삶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 씁쓸했습니다.


그럼에도 지친 도시/현대인들에게 쉼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참 좋습니다. 왕릉이 없었다면 비록 좁은 공간이었지만 모든 나무가 베어지고 빌딩 숲으로 바뀌었을 텐데 말이죠. 왕릉이 있어서 작은 숲이라도 보존될 수 있었다는 점이 위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