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태종과 순조 사이

헌릉(獻陵)과 인릉 (仁陵)

by JejuGrapher

지난 광복절에 영릉 (세종대왕릉, 효종대왕릉)을 다녀온 후로 조선 왕릉을 좀 더 조사했는데 헌인릉 (헌릉 + 인릉)이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누구의 능인지도 모른 채 -- 고양의 서오릉이나 남양주의 동구릉과 많이 떨어져 있어서 그냥 조선 후기의 왕릉 정도로 추측했음 -- 토요일에 그냥 길을 나섰습니다. 광주/성남에서 올라갔는데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는 차량에 막혀서 왕릉 출입로로 바로 들어갈 수가 없었고, 대신 조금 더 직진해서 유턴 및 좌회전으로 들어가야 하는 불편이 있었습니다. 우측 차선에 차가 길게 이어져서 주말에 왕릉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길이 막히고 그냥 돌아가야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주말임에도 주차장은 한산했고 입장료 1,000원입니다. (참고. 여주 영릉은 현재 무료 개방중) 인릉 입구에 들어서자 바로 홍살문과 정자각이 보입니다. 광복절에 다녀온 영릉 (효종대왕릉)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홍살문을 지나면 참도를 따라서 정자각으로 향하고, 정가각 뒤로 높은 언덕 위에 봉분이 하나 있습니다. 정자각 옆에 있는 비각의 설명을 보고 나서야 23대 순조의 능인 걸 알았습니다. 세종대왕릉은 계단을 따라서 봉분 앞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 인릉은 올라가는 길이 없습니다. 올라가 보지 못해서 실망하고 그냥 오른쪽 헌릉으로 향합니다.


아직 헌릉의 주인공이 누군지 모른 채 찾아갔는데 정자각이나 참도가 더 오래된 느낌입니다. 정자각으로 조금 걸어가다가 아무래도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찝찝함에 그냥 밖으로 나왔습니다. 오른쪽으로 헌릉 뒤를 크게 한 바퀴도는 산책로가 있어서 잠시 걸었습니다. 산책로를 돌아 나오니 헌릉과 인릉의 봉분으로 올라가는 길이 옆에 있었습니다. 영릉에서 찍지 못했던 봉분 앞으로 펼쳐진 산세를 보고 사진 찍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릉과 달리 봉분 앞으로는 들어갈 수 없고, 그냥 옆에서 보고 내려와야 합니다. 결국 왜 명당자리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관리하시는 분의 설명에 따르면 다른 왕릉은 옆으로 올라가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영릉을 제외하고 헌인릉이 그나마 봉분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왕릉입니다.


헌릉은 임금과 왕비를 따로 모신 쌍봉이고 인릉은 합장묘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그리고 봉분 앞으로 문인석과 무인석의 개수도 차이가 납니다. 헌릉은 좌우로 문인석 2개, 무인석 2개씩 총 8갠데, 인릉은 좌우에 하나씩 총 4개만 있습니다. 처음에는 봉분의 개수에 따른 차등이 아닐까라고 추측했지만, 만들어진 시기에 따른 차이인 듯합니다. 헌릉의 주인은 3대 태종입니다. 즉, 헌릉과 인릉 사이에 20대, 약 400년의 차이가 납니다. 조선 초기의 왕릉과 후기의 왕릉에서 나는 차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헌릉은 4대 세종 때 즉 조선 왕조가 가장 강할 때 만들어졌고, 인릉은 조선의 부흥기 (정조) 이후 쇠도가들이 득세하면서 쇠락하던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간소해졌는지 아니면 당시 왕의 기세에 따른 것인지... 어쨌든 문무인석의 개수에서 두 능에 차이가 있습니다. 문인석이 무인석보다 능에 가까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문무의 차별을 보여주는 걸까요 아니면 칼을 쥔 무인을 임금으로부터 떨어뜨려놓은 걸까요? 만약 문인이 칼을 들고 반역한다면...?

헌릉의 참도.. 좀 오래됐다는 느낌이 강하게 옵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들어가는 참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아래 인릉의 참도는 신도와 어도가 분리됐고, 어도 (왕이 걷는 길)는 조금 낮게 만들어졌는데, 헌릉에는 신도와 어도의 구분이 없습니다.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묘 이후로 조선 왕릉의 구조가 거의 정해졌다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디테일이 조금 바뀐 듯합니다.

인릉 정자각과 뒷마당 (?)
헌릉 정자각 (vs. 대문 사진은 인릉의 정자각)
헌릉 둘레 산책로
헌릉 뒤편의 소나무숲... 안개가 꼈거나 아침 햇살이 내릴 때 와서 사진을 찍으면 예쁠 듯...
헌릉 능침 -- 왕과 왕비를 따로 모신 쌍봉이다.
헌릉의 곡장
인릉... 봉분 앞으로 문무인석 4개만 있다.

왕릉을 안내하시는 분의 설명으론 헌릉의 문무인석은 조금 우락부락하고 무섭게 만들어졌는데, 인릉은 조금 부드럽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가 없으니 사실인지 아닌지 눈으로 확인이 어렵습니다.

인릉 봉분에서 내려다 본 정자각

앞으로 현대식 건물이 보이는데, 보안 지역입니다. 출입로에 바리케이드도 있고 차량 블랙박스도 꺼야 합니다. 재실을 찾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고 앞으로 걸어갔는데 혹시 내부를 사진 찍은 것은 아닌지 보안요원이 차를 타고 급히 다가와서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이름과 주소 등을 적어서 갑니다.

인릉의 소나무 병풍

70-200mm 렌즈를 16-35mm 광각으로 변경해서 다시 헌릉과 인릉 사진을 몇 컷 남겼습니다.

헌릉 왼쪽에서 본 비각과 정자각
헌릉
인릉

바로 위의 헌릉과 비교하면 참도가 신도와 어도로 나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정자각에서 보는 뷰
인릉

헌릉의 주인이 태종이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사진을 좀 더 많이 찍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별로 멀지도 않은데 다시 들어가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지만 귀찮아서 그냥 나왔습니다.


헌릉과 인릉 사이에 400년의 차이가 나는데, 태종과 순조는 같은 곳에 안식합니다. 둘 사이에 공통점 어쩌면 차이점이 있습니다. 태종은 건국 초의 혼란한 정국을 정리하고 조선의 절정기를 연 세종에게 왕권을 물려줬는데, 순조는 조선의 부흥기를 연 정조에게서 왕권을 물려받았지만 세도정치를 비롯한 조선의 쇠망기/혼란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두 임금의 한 곳에 묻혔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제주에 있을 때는 워터마크를 'JejuGrapher'로 해뒀는데, 육지로 나오면서 'viva la vida (인생이여 영원하라)'로 변경했습니다. 제주 사진이 아닌데 워터마크에 계속 제주를 언급하는 건 아닌 듯해서, 멕시코 화가인 프리다 칼로가 적었다는 문구를 따온 겁니다. 제주를 떠났지만 사진(인생)은 계속된다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왕릉 투어를 다니면서 무덤과 영원한 인생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