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효종을 만나다

여주 영릉 (英陵 & 寧陵)

by JejuGrapher

모두가 부러워할 제주에서 10년 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역으로 제주 밖 세상이 주는 부러움도 많았다. 특히 서울 사람들이 부러웠던 것은 왕궁, 종묘사직, 그리고 왕릉이 주변에 있어서 마음만 먹으로 쉽게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야간 개장한 왕궁 사진을 볼 때나 새벽 미명에 안개 낀 왕릉의 솔밭 사진을 볼 때면 그런 부러움이 더 컸다. 막상 제주를 떠나 경기도에 자리를 잡은 후에야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왕궁이나 왕릉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굳이 지하철을 타고 무거운 장비를 챙겨서 찾아갈 만큼의 의지는 없었다. 직접 운전해서 찾아가고 싶지만 교통 정체와 주차난이 무서워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제주를 떠난 후로 운전할 때면 마치 외국에 있는 듯이 많이 낯설다. 아무 데나 주차하면 큰일 날 것 같고 어느 순간 경찰차가 쫓아올 것 같고... 그래서 확실한 곳이 아니면 쉽게 운전할 마음이 안 생긴다.


어쨌든 이사 후 필요한 물건들도 거의 마련하고 나니 시간의 여유와 생각의 여유가 생겼다. 다시 사진 찍으러 다녀야 하는데 아직은 어디를 가야 할지 감이 없다. 출퇴근하며 이용하는 경강선에 세종대왕릉역이 있다. 여주로 가면 조선시대 왕릉, 그것도 세종대왕의 릉을 볼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여주라면 광주에서 멀지도 않고 교통 및 주차난이 없을 거라 판단했다. 마침 광복절에 바로 찾아갔다.


40분 정도 운전해서 세종대왕릉 주차장에 도착했다. 부푼 마음도 잠시, 작년 11월부터 왕릉을 새로 정비하고 있어서 출입불가다. 대신 옆으로 효종대왕릉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은 방문해서야 앎)으로 삥 둘러가면 봉분은 볼 수 있다고 한다. 더운 날씨에 오래 걷기 싫어서 그냥 효종대왕릉으로 운전했다. 세종대왕릉의 주차장은 넓은데, 효종대왕릉의 주차장은 겨우 10여 대만 세울 만큼 좁다. 한 나라의 임금도 유명세에 따라서 죽은 후에도 대접을 달리 받는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재미있는 것은 한자는 다르지만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의 이름이 모두 영릉(英陵, 寧陵)이다. 우선 가까운 효종대왕릉 (寧陵)부터 찾았다.

입구를 지나면 제사를 준비하고 드리는 재실이 있다.
제실의 지붕... 기왓집은 참 아름답다.
제실의 내부

제실에서 나와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홍살문이 나오고, 참도의 끝에 정자각이 나오고 (고무래 정 丁의 형태로 지어졌다고 정자각이라 부르는 듯하다), 그 뒤 언덕 위로 봉분이 있다.

홍살문과 정자각, 그리고 뒤로 보이는 효종대왕릉 봉분
인선왕후를 지키는 문석인
봉분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정자각
효종대왕릉 봉분과 장명등. 왜 장명등은 봉분 정면에 세우는 걸까?

왕릉 구조와 이유는 다음 참조. http://cafe.daum.net/lifestory4050/RlUC/31

효종대왕릉과 인선왕후능이 좀 떨어져서 나란히 있다..
정자각과 인선왕후능

효종대왕릉을 나와서 왼쪽으로 임금의 숲길을 통해서 세종대왕릉으로 향한다. 약 700m 정도 숲길을 걸어가면 된다.

세종대왕릉 입구
계단을 통해서 언덕 위로 가면 봉분이 있다.
세종대왕릉 봉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임금이지만 무덤이 크게 특별나지는 않다. 특이한 점은 봉분이 하나뿐이다. 효종대왕과 인선왕후는 능이 따로 있었는데, 분명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능이라고 했는데 봉분이 하나뿐이다. 다른 곳에 있던 세종대왕릉을 이장하면서 한 봉분에 합장한 듯하다. 보통 왕과 왕후가 죽는 시기가 다르니 띠로 묘를 만들어야겠지만, 이장하면서까지 굳이 따로 봉분을 만들 필요는 없다.

봉분에서 내려다 본 정자각.. 한참 공사중이다.

봉분에서 내려다보는 전경 사진을 찍지 않았다. 렌즈를 교환하기 귀찮아서 그냥 70-200으로만 찍었더니... 전체를 볼 수 없으니 왜 이곳이 명당자리인지 감이 안 온다. 공사가 끝나면 다시 찾아가 보는 걸로...

영릉을 지키는 무석인과 문석인..

왕의 묘 앞에만 무석인을 세울 수 있다고 한다. 오직 병권은 왕에게만 있고, 일반인이 무석인을 세우면 역모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냥 예쁜 사진이나 찍자는 생각으로 왕릉 나들이를 갔는데, 잡지식이 +0.0001 정도만큼 증가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대부분의 왕릉이 서울 시내가 아닌 외각지에 있다. 서오릉을 포함해서 일산 쪽에도 여럿 있지만, 광주에서 그나마 가까운 남양주 쪽에 가장 많이 있다. 날씨가 조금 더 시원해지면 날 잡아서 다녀와야겠다.


이곳이 정말 국운을 100년 더 연장해줄 천하의 명당자리일까?


왕릉을 둘러보면서 참 씁쓸했다. 한 나라의 권력 최정점에 있었던 임금의 무덤이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최고 권력자였지만 살아서도 모든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했는데 죽어서도 안식 못하고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금이란 존경과 위엄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명당자리에 누인 부적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되어 왜구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전설은 그냥 만들어졌다.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죽어서도 그냥 이용되는 것 같다. 왜구를 막는 상징물. 조상이나 임금의 권위가 아니라 그저 액땜을 위한 부적과 같은 존재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