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juGrapher Sep 05. 2022

달고나 55. 영작

Writing in English

I'm back.


학교를 나온 후로 거의 15년 만에 논문이란 걸 적었다. 주저자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빨간펜 질을 하니 묘한 희열을 느낀다. 엉터리 영작을 교수님께 보내면 전체가 시뻘겋게 돼서 돌아온 기억이 새록새록한데, 이번에는 그 반대였다. 그냥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구현, 실험해보고 논문을 작성하는 게 한편으론 내게 더 맞는 분야인 것 같다. 학계에는 남지 않겠다는 생각과 인터넷 비즈니스에 깊이 관여해야겠다는 생각이 지난 15년의 시간이었는데, 약간은 과거를 부정하는 모양새다.


난 거의 모든 종류의 언어에 약하다. 수학이 좋아서 이과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국어를 못 해서 이과로 간 거다. 영어는 여전히 난제다. 이직 후로 몇 차례 해외연과 화상회의에 참석하지만 난 늘 회의실 모퉁이에 그저 놓인 망부석일 뿐이다. 도저히 못 알아듣겠고 입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이번에 새삼 느꼈지만 이젠 영어로 작문하는 것도 완전히 퇴화한 것 같다. 막상 읽는 것도 신통찮다. 국어와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도 약하다. 컴퓨터 언어인 프로그래밍도 젬병이다. 개발자란 타이틀을 달았지만 내가 여태껏 제대로 짠 코드가 1,000줄도 넘기지 않을 것 같다. 자연의 언어인 수학도 못한다. 어떻게든 대강 이해를 하는 척 하지만 생소한 수식은 늘 암초다. 한편으론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터득한 것 같기도 하다. … 어쨌든 15년 만에 다시 논문을 작성하면서 영어는 내 언어가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평소 꾸준히 영작을 하지 않는 사람이 영어로 논문을 적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학교에 있을 때는 그게 내 일이었기 때문에 꾸역꾸역 장수는 채웠지만 매번 쉽게 쓰인 적은 없었다. 열심히 했지만 논문 초안을 처음 읽을 때 전혀 읽히지 않았다. 내 독해력의 퇴보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문장의 문법이 맞고 틀림이 아니다. 난해한 철학책을 한 문장씩 꾸역꾸역 읽어나가지만 몇 문장 후에 내가 뭘 읽었는지를 기억 못 하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는 그런 거였다. 논문 주제와 구조를 정할 때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읽는 것도 불가능했을 테고 뭔 내용이 들어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을 거다. 그 친구의 노력은 인정하지만 결과물은 많이 미흡했다.


그 친구가 영어를 못해서 또는 문법이 틀려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아니다. 그냥 글이 읽히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의 결론은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국어가 문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글의 전개, 즉 논리가 빈약했다. 글이란 그저 단어의 묶음이나 문장의 묶음이 아니다. 단어와 단어 간에 그리고 문장과 문장 간에, 더 나아가서 문단과 문단 간에 옳은 연결이 있어야 글이 된다. 이런 연결과 흐름이 논리다. 삼단논법이니 정반합이니 뭐 그런 게 다 시작과 과정과 결론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 논리다. 논문의 초고를 읽었을 때 — 어쩌면 내용의 부실함이 더 컸을 수도 있지만 — 안 읽힌다고 느꼈던 것은 연결의 부재 때문이었다. 우리가 영어 작문을 못하는 이유는 한글로도 제대로 작문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결론에 이르렀다. 듣기와 말하기는 조기 유학으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영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우선 한글로 제대로 된 글을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주제를 적을 것인가? 어떤 구성과 흐름으로 글을 적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글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작년에도 ‘데이터 과학자의 글쓰기’란 걸 적었었다.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영작인데, 생각 자체가 부재하거나 이걸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하니 영작이 될 수가 없다. 일상에서 이걸 연습하는 게 글쓰기다. 매일이든 매주든 정기적으로 특정 주제를 정해서 자료도 조사하고 나름 논리를 정해서 시작부터 끝까지 나열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논문이나 보고서를 작성할 일이 없는 사람들은 글쓰기 연습이 필요 없는 게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연습이야 말로 서비스의 개념을 정의해서 구현하는 것이고, 프로그램을 구상해서 구현하는 것의 훈련이다. AI 기술이 문장을 영어로 번역을 해주겠지만 생각의 흐름과 논리를 만들어주진 않는다. 자연스러운 생각을 연습해야 한다. 표현되지 않은 생각은 완결된 생각이 아니다.


문법에 맞는 영어 문장은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학교에 있던 20년 전에도 영어 논문을 교정해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생각을 잘 정리, 나열해서 교정 서비스에 맡기면 관사 사용이나 시제 등의 문법을 고쳐서 그리고 어색한 표현은 좋은 표현으로 바꿔서 되돌려 받는다. 그런데 원문이 틀렸거나 논리가 맞지 않았다면 아무리 교정돼서 문법에 맞는 문장들이 되돌아왔어도 논문으로서의 가치는 없다. 그들이 문법이나 표현은 교정해주지만 애초에 틀린 생각을 고쳐주지 않는다. 그냥 문법에 맞는 틀린 생각일 뿐이다. 때론 고민 끝에 애초 의도와 다른 문장으로 교정될 위험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짧은 (능동형) 문장들을 논리에 맞게 나열해서 전달하면 교정을 통해 글다운 글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생각을 표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지금 글을 적는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적고 있는지, 논리는 맞는지 모르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막 적고 있다. 몇 년 후에 아니 단지 며칠 후에 이 글을 다시 읽으며 부끄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것도 더 발전하기 위한 연습이고 과정이기 때문에 계속 적는 거다.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간혹 만난다. 그럴 때면 이해할 때까지 반복해서 읽거나 관련 자료를 찾아본다. 그러면 어느 순간 그 개념이 익숙해진다. 마치 이해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런데 막상 그 개념을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면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냥 익숙해진 것을 이해한 것이라 착각했기 때문이다. 이해는 지식의 내재화, 즉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단순히 앵무새처럼 암기한 것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제대로 이해한 거다. 어떤 개념을 글로 잘 표현할 수 있다면 제대로 이해한 셈이다. 그래서 글쓰기가 중요하다. 요점이 영작에서 다소 벗어났지만 처음 이 글을 적으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제목이 ‘영작’이 아니라 ‘글쓰기 II’ 정도였고 그것에 맞는 소재가 이해와 익숙해짐이어서 그냥 끼워 넣었다.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을 우리말로 설명하기도 어려운데, 그걸 더 어색한 영어로 표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는데, 논문 초고가 안 읽혔던 다른 이유는 영문 표현이 다소 어색했던 점도 한몫했다고 본다. 어떤 문장들은 유독 이상했다. 진짜 내가 틀렸을 수도 있는데, 원래 국문에는 없고 영어나 일본어 문장에만 있는 표현을 한글로 번역한 것을 다시 영어로 옮겨 적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번역된 표현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 표현이 원래 한국어 표현인 양 굳어진 것들이 있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할 때는 그런 틀린 — 원래 없는 — 표현 방식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그걸 이제 영어로 바꿔 적는 과정을 거친 것 같다. 한글을 영어로 바꾼 것이 아니라 한글도 아닌 것을 영어로 바꾸다 보니 표현이 이상해진 것 같다. 영어 문장이 매끄럽지 않은 이유는 원래 한글 문장도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간혹 생각을 먼저 한글로 적고 다시 영어로 옮겨적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우리가 틀린 표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녔을까? 한글로 논리적으로 매끄럽게 표현할 수 있으면 영어로도 잘 적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냥 ‘있다’라고 적기가…) 그리고 강조가 아니면 반복하지 말고 반복은 절대적으로 피하는 편이 좋다.


어릴 때 모르는 한자를 보면 큰 옥편을 찾아보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이미 불쏘시개가 됐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두꺼운 한국어 사전과 영어 사전을 구입했던 기억도 있다. 당시에 꽤 비샀지만 구입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요즘엔 그런 옥편이나 사전을 구하기 어렵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다 나오기 때문이다. 글을 적는다는 것은 사전과 친해지는 과정이다. 하나의 표현을 적기 위해서 어떤 단어가 가장 적합할지 수없이 찾아보고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아내는 것이 영작 기술을 조금은 향상해줄 거다. 이번에 어떤 한 명사를 적을 때마다 이게 countable인지 uncountable인지를 수십 번 검색했다. 그 단어가 가산인지 불가산인지는 벌써 까먹고 다음에도 다시 검색해보겠지만, 그런 번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은 더 나은 문장이 만들어지는 거다. 매번 강조하지만 스스로 천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더 노력하고 또 한편으론 (번잡하고 귀찮음을) 더 즐겨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교정 서비스는 잘 활용하자. 하지만 생각과 논리는 교정 서비스를 통해서 획득할 수 없다.


사흘 심심 금일 무운 명징 직조… 모르면 찾아보자. 아니 알아도 확실히 하자. 사전은 적이 아니다.


(논리를 강조했지만 글에 논리가 없음은 미안.)

매거진의 이전글 달고나 54. 정의가 곧 정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