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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리서치의 팀과 팀장의 KPI는 상위 저널/학회에 제출된 논문 편수와 특허 발명 건수가 포함한다. 개인 KPI과는 명시적으로 무관하지만 어차피 최종 평가자인 팀장의 KPI 달성(에의 기여) 여부가 팀장이 개인을 평가하는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논문 작성과 발명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 8월 말과 9월 초에는 논문을 채우려 애썼는데, 지금은 부족한 특허를 채우기 위해서 고민 중이다. 예전에는 소프트웨어나 알고리즘에 관한 독창성이 특허로 이어지느냐에 관한 논란이 있었지만, 요즘은 당연히 특허로 인정받을 뿐 아니라 최근 들어 AI 기술을 접목한 특허가 꽤 많이 늘고 있다. 당장의 목표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기 또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취업 (창업)하기일 수도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내가 고안한 아이디어가 지적재산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나는 지식을 배타적으로 선을 긋는 것보다 공개적으로 더 널리 전파, 사용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허를 처음 고민했던 것은 거의 20년 전인 대학교 4학년 때로, 졸업 필수 과목을 통과하기 위해서 특허 (또는 실용신안) 1건을 제출했어야 했다. 이후 대학원과 다음 시절에는 특허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재작년에 오랜만에 1.5 건의 특허를 제출했다. 1건은 내가 주도적으로 작성했고 다른 건은 내 생각이 발화가 된 건 맞지만 그것에서 파생된 아이디어를 동료가 작성하는데 도움을 준 거라 0.5 건으로 표시했다. 불과 며칠 전에 0.5 특허가 등록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주도한 특허는 어찌 됐는지..ㅎㅎ) 그리고 지금은 팀에 부족한 특허 한 건 때문에 고민하고 있고, 지난주에 브레인스토밍을 통해서 나름 괜찮은 아이템들이 나와서 특허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또는 향후 프로젝트나 논문으로 연결지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지금 특허를 고민하면서 문득 20년 전의 생각이 떠올랐다.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 제안을 했을 법한 아이디어지만, 당시 조원들과 협의하면서 ‘투명 냉장고’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냉장고에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하려면 매번 문을 열어서 확인해야 하고 그러면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냉장고 문이 투명하다면 문을 굳이 열지 않고도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물론 냉장고에 뭐가 들었나를 확인하러 문을 열어보는 것 자체가 일종의 재미이기도 하다.)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는 했지만, 우리가 그걸 시제품으로 만들 수 있느냐?라는 현실적 제약뿐만 아니라, 투명하게 만들면 오히려 냉장 효율이 떨어지고 또 안의 내용물이 다 보여서 외관상으로도 좋지 않으리라는 반론으로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기능을 가진 냉장고들이 판매되고 있다. 작은 홈바를 만들어서 냉기 손실 없이 자주 사용하는 작은 물품만을 보관한다거나 내부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안을 볼 수 있다거나 재료가 들어가고 나갈 때를 체크해서 모니터에 보여줄 수도 있다. 최근 LG에서 선 보인 LED를 이용한 색이 변하는 냉장고가 있듯이, 전류가 통할 때만 불투명해지는 유리를 사용해서 앞서 말한 외관 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20년 전에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사이엔가 가능한 것이 됐다.
그냥 공상과학 소설처럼 아무거나 특허로 등록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20년 전의 일화를 통해 지금 당장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지레짐작으로 단정한 후 좋은 아이디어를 사장시키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한 자유에서 오는 창의성도 있지만 제약에서 오는 창의성도 있다. 그런데 미래의 사업 측면에서는 지나친 현실적 제약으로부턴 자유로울 필요가 있음을 새삼 느낀다.
개인 성향은 연구자에 좀 더 가깝기 때문에 떠오른 좋은 생각을 논문으로 발표하거나 코드로 만들어서 오픈소스로 배포하거나 이도 아니면 그냥 이렇게 가벼운 글로 적어서 모두에게 공개해서 나보다 더 기술적으로 적합한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모두 같은 혜택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론 좋은 생각, 특허로 좀 편하게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없진 않다. 현실적으론 큰돈을 못 벌 것 같으니 아이디어는 공개되고 공유되어야 한다는 대의를 내세우는 편이다. 카카오를 다닐 때는 간혹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이슈로 회사 앞에서 데모를 하는 걸 봤는데, 이직 후에 한동안 회사 앞 도로 옆에 특허분쟁에 관한 많은 현수막이 걸린 걸 보면서 내가 다른 세상에 왔구나라는 걸 느꼈다. 지금 근무하는 맞은편에 IP를 담당하는 센터가 있어서 특허를 뺏긴 (또는 빼겼다고 생각하는) 이의 분노를 볼 수 있었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논하지는 않겠다. (과거였으면 무조건 대기업이 잘못했네라고 했겠지만 ㅎㅎ 그 반대편으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무조건 선이라는 생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모두의 밥그릇은 중요하다. 서론에서도 적었지만 요즘은 소프트웨어, 특히 AI 기술/알고리즘 관련 특허가 많이 등록되는 추세다. 데이터나 알고리즘을 공부하면서 한편으론 이를 어떻게 활용해서 더 현실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함께 고민하며 성장했으면 하는 바랍니다. 특허의 요건 (신규성, 진보성 등) 등도 미리 공부해두고 업계의 다른 회사에선 어떤 특허가 나오는지도 논문을 읽듯이 꾸준히 조사해보는 것도 의미 있다. 매우 중요한 포인트 하나는 돈이 되는 특허는 따로 있다.
큰 화사에 속하면 담당 부서와 변리사 사무실에서 관련 특허도 검색해주고 문서도 대부분 작성해주지만 평소에 아이디어가 특허가 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연습해야지 정직 필요할 때 (직무 관련으로) 이건 특허를 출원해야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아이디어도 결국 연습이 필요하다.
그냥 20년 전의 일이 생각나서 막상 글을 적기 시작했는데 이번 글은 여러모로 많이 빈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