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이하고 봄을 보내다.
계획대로였으면 올해 벚꽃놀이는 경주나 김해, 김천 등 고향 인근의 유명 벚꽃 명소에서 즐겼어야 했다. 아파트 판매가 늦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26년 봄을 수도권에서 보냈다. 회사 다닐 때는 주말에 밖에 나가는 것이 귀찮았다. 단지 I성향 때문만은 아니다. 어디를 가든 1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고 조금만 알려져도 사람들로 넘쳐난다. 혼자 다니며 풍경 위주로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그런 분주함은 별로다. 회사를 느슨하게 다녀서 주말에 재충전했어야 하지는 않았다. 2018년도에 경기도로 올라왔는데, 제대로 된 벚꽃놀이를 한 적이 없다.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판교의 한의원에 가면서 테크노밸리 주변과 집 근처 공원의 벚꽃을 즐긴 것이 다였다. 어차피 고향으로의 이주는 물 건너갔으니 회사 다닐 때는 하지 못했던 서울에서의 벚꽃놀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수도권의 벚꽃 명소에 관한 정보가 없으니 가장 잘 알려진 잠실 석촌호수와 여의도를 일단 가보기로 정하고 벚꽃이 피길 기다렸다.
3월 30일 오후에 동네병원을 방문하려고 집을 나섰다. 아직 남도에도 벚꽃 소식을 못 들었기에 별생각 없이 집을 나섰는데 아파트 단지에 벚나무 한 그루에만 하얀 눈이 내렸다. 이미 시작했구나.
주말이면 상춘객들이 몰릴 듯해서 주중에 서울에 다녀오기로 했다. 몇 시에 방문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전날 저녁에는 그냥 적당히 늦은 오후에 석촌호수에 가서 낮에 한 바퀴 둘러보고 저녁 야경까지 즐기고 오자는 계획을 세웠다. 삼각대를 카메라 가방에 어떻게 파지 할지 한참 매달렸다. 하지만 당일 (목요일)이 돼서 그냥 낮에만 갔다 오기로 변경했다. 10여 년 전에 잠실 근처에 간 기억은 있는데 그냥 갔을 뿐 다른 기억이 없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잠실역을 경유해서 석촌호수로 갔다. 주중인데 사람들이 장난 아니다. 어찌어찌 사람들 사이에 휩쓸려 동호룰 한 바퀴 돌고 다시 서호를 마저 돌았다.
늦기 전에 집에 돌아와서 인스타그램을 봤는데 석촌호수에서 찍은 사진들이 여럿 보였다. 분명 내가 갔던 곳인데 내가 본 것과는 다른 사진들이 보였다. 서호의 뚝 위쪽에서 찍은 건데 뒤로 벚꽃과 성모양의 롯데월드가 함께 담긴 (인물) 사진이다. 나도 같은 장소에 머물면서 사진을 여럿 찍었는데 왜 저 뷰를 놓쳤을까? 호수와 벚꽃을 제대로 즐기기보다는 숙제하듯이 호수를 다녀온 것 같다. 아쉬움은 남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시 방문할 가능성이 없다. 그냥 사람들의 사진을 즐길 뿐이다. 수령이 오래된 큰 벚나무들이 많은 것이 장점이지만, 그래서 인물 사진을 찍기에는 별로 아름답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중간중간의 계단을 이용하면 좋다. 그리고 뚝 위에 몇몇 포토스폿이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축제 전날인 주중에도 인파가 많아서 여유롭지 못한 건 어쩔 수 없다.
동네.
원래는 주말을 보내고 여의도를 가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말에 비소식도 있고 여의도는 잠실보다 집에서 더 멀고 또 사람들이 많을 것 같고, 잘은 모르지만 벚꽃 군락의 특별함은 없을 것 같았다. 직접 가보지 않았기에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 비 오기 전에 양재천을 가보기로 급하게 생각을 바꾸고 카메라를 챙겼다. 지난 4년 동안 양재천 인근에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그럼에도 한 번도 양재천의 벚꽃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차를 타고 퇴근할 때마다 양재천의 다리 위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보면서 잠시 정차하고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잠시 정차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 그런 아쉬움을 가졌던 장소였기에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양재천도 사람이 많을 거라는 걸 알지만 봄과 꽃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혼자 다녀서 불가능한 인물 사진을 도촬처럼 찍을 수도 있다.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그냥 개인 욕심이다. 허락되지 않은 인물 사진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유튜브에 있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처럼 관광지에 가서 사람들 사진을 찍어주고 전송해 주는 것도 재미있을 텐데, 내가 그걸 하기에는 너무 내성적이다.) 뚝 위로 걸으면 벚꽃을 배경으로 인물 사진을 찍기에 좋다. 그래서 연인끼리라면 석촌호수보단 양재천을 더 추천한다. 물론 장소마다 특별함은 다르겠지만...
양재천으로 가는 버스에서 옛 기억이 떠올랐다. 4년 전 어느 봄날에 늦은 오후에 퇴근하는데 내곡교회 뒤로 벚꽃이 활짝 핀 것을 봤다. '이건 사진으로 남겨야 돼'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100m 정도 앞에 헌릉로를 가로지르는 육교가 있'었'다. 적당히 근처에 주차를 하고 육교 위에서 사진을 찍으면 괜찮을 거라고 계획하고 1년을 기다렸다. 그런데 겨우내 중앙버스차로 공사를 하더니 벚꽃 피기 직전인 3월 어느 날 육교를 철거한 것을 봤다. OTL. 1년의 기다림이 무의로 돌아갔다. 퇴근할 때마다 내곡교회를 보면서 매번 아쉬움이 남았는데, 원래 육교에서 사진을 찍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도로변에서 찍으면 비슷한 사진은 남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양재천에서 무턱대로 내곡교회 인근까지 걸어와서 조금 아쉬운 사진을 남긴다.
판교.
전쟁 여파로 기름값이 올라서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주저된다. 나들이 한 번에 기름값이 얼마나 들어가겠냐만은 사실상 은퇴한 지금 남의 돈으로 살 때처럼 소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동이 망설여진다. 인스타에 올라온 성남의 수정공원은 집에서 버스로 가기에 적당해 보였고 또 탄천을 따라 판교까지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20번 버스를 타고 모란역으로 가서 수정공원으로 향했지만 공원 위치가 살짝 아쉬워서 그냥 바로 탄천으로 방향을 돌렸다. 판교의 벚꽃은 광주보다 조금 빨랐다. 주말의 비 때문인지 지난밤의 바람 때문인지 이미 반정도는 낙화한 뒤였다. 어쨌든 탄천을 따라 판교까지 걸었다. 옛 동료에게 점심을 사달라고 톡을 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하고ㅠㅠ 이제 나의 영양가/영향가가 다 떨어졌나 보다.
광주.
2년 만에 돌아온 자동차점검 때문에 이른 점심 후에 오랜만에 시동을 걸었다. 기름값이 아깝더라도 일단 나왔으니 근처로 가보기로 했다. 가을에만 두 번 방문했던 경안천습지생태공원 옆으로 벚꽃이 만개해서 잠시 들렀다. 길이는 짧지만 벚꽃을 즐기기엔 제격이다. 팔당물안개공원 옆의 남종면 귀여리에도 잠시 들렀는데 이런 시골에도 상춘객으로 넘쳐나고 아직 살짝 아쉽게 폈다.
2026년의 벚꽃나들이는 이걸로 끝이다. 다른 일이 없으면 내년에는 남녘에서 봄을 보낼 거다. 경주, 진해, 김천 (연화지)에도 가고 싶지만, 인스타에 올라온 거창 (임불리, 병곡리 등)은 꼭 가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