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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에도 설레었던 8월 - (1)

24년 2H, 중국에서 한국으로

by 제주IB아빠

중국은 가깝고도 참 먼 나라이다. 비행기로 2시간이면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등 주요 도시를 갈 수 있지만, 언어, 문화, 정치 등 여러 면에서 매우 다른 색채를 드러내는 곳이기도 하다. 그중에는 한국과 달라서 좋은 점도 있었고 반대로 한국과 달라서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도 있었다.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 가족은 중국의 문화, 음식, 사람들, 사회적 제도 등의 긍정적인 점을 발견하는 동시에 이질적인 요소로 인해 불편함을 많이 느끼고 불평도 하곤 했었다.

예를 들어, 내가 경험한 중국 심천의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참 관대한 편이었다. 아이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들 예를 들어, 실내에서 뛰어다니거나,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든다거나 하는 아이들이 있어도 어른들은 그저 웃어주거나 간혹 보안요원들이 주의를 주는 정도였고 아침시간 빽빽한 버스 안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어른들을 다그치던 버스 안내요원 아주머니들의 앙칼진 목소리는 사뭇 미소를 짓게 만들곤 했었다.

물론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의 행동에 너무 관대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교육이 부족한 경우 역시 있었고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으나 익숙해진 후로는 그려려니하며 조금은 무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우리가 외국인이기에 심천 사회와 이웃들과의 접점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지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기여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상호작용이라는 것이 있을 텐데, 생김새는 비슷하나 외국인인 우리 가족에게는 그런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집, 학교, 회사 그리고 몇몇 친구들 이외에는 좀처럼 넓혀지지 않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고립감을 점점 느끼는 것.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국 생활의 큰 어려움 중 하나였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중국에서의 탈출을 계획하던 우리 부부가 한국으로의 귀국을 결심하게 된 건 역시 교육 문제였다.


중국 역시 최근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내가 느끼기에 심천 지역은 학생수 대비 오히려 학교가 부족한 모습이었다. 전자제품의 제조업 기지 중심 역할을 하다 보니 중국의 각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 모여드는 이들로 인해 그 어느 지역보다 평균 연령이 낮고 인구 또한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사립학교 혹은 국제학교를 선택해야 하는데, 시진핑 주석의 강화된 사상교육 여파가 사립학교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에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국제학교 외에 다른 교육적 대안이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국제학교의 학비가 무척 높은 수준이라는 것. 회사의 지원이 없다면 일반적인 급여생활자로서는 감당이 어려운 수준이다. 당시 중학교에 들어간 큰 아이를 심천에서 나름 유명한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었던 나는 2년 후면 마찬가지로 중학생이 되는 둘째까지 같은 학교에 입학시키야 하나를 두고 고민 중이었다. 회사의 지원이 없다면 그야말로 소득의 대부분을 교육비에 쓰게 되는, 즉 노후 준비나 그 외의 저축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 뻔해 보였다.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는 2년 후부터 교육비 지원이 사라질 것이라는 통보를 보내왔고(늘 그렇듯 회사는 어떤 상황에도 협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심천에서 혹은 중국 내 다른 도시에서 보낼 수 있는 국제학교를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인사팀에서 해당 지침을 설명하고자 잡은 콜에서 나는 정말 오랜만에 대차게 목소리를 높여보았으나 이미 정해진 지침에서 변화가 없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나는 분풀이를 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마침 글로벌 본사의 지침을 나에게 전달하려던 중국 인사팀은 좋은 타깃이었다.


"아무래도 케빈(첫째 아들) 고등학생 되기 전에 들어가야겠지? 올해 말에는 들어가야 중학교에서 적응도 좀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야 고등학교 올라가는 것도 좀 수월할 것 같은데?"

"재스퍼(둘째 아들)는? 내년이면 바로 중학교 1학년으로 가야 하는데 너무 갑작스럽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여러모로 심천에서 시간을 더 보내는 게 아이들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아직 한국 집 전세계약도 안 끝났는데. 그리고 그 동네 주변에는 남자애들 갈만한 학교가 마땅치 않아."

와이프 말이 맞았다. 예전에 우리가 살던 집 근처에는 초등학교만 있을 뿐, 중/고등학교는 좀 거리가 먼 곳에 있었다.


그때 얼마 전 와이프가 공유해 준 영상들이 생각났다.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같은 방송이었는데, 대한민국의 입시 제도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심층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그 방송을 통해 한국에도 IB 공립학교가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서울보다 자연과 가까운 제주도가 더 아이들에게도 우리에게도 나은 선택이 될 거란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제주도 표선 어때? 케빈은 IB 과정이 본인한테 잘 맞는 것 같고. 재스퍼도 학교에서 프로젝트 베이스로 많이 수업을 하고 있으니. 그리고 당신도 나도 수능 보고 대학교 들어갔지만 사실 수능 준비하느라 많이 지치기도 했었고. 또 난 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지 목적의식이 없이, 그냥 낭비한 대학교 1~2학년 시간들이 너무 아쉽다고 얘기했었잖아? 사실 진짜 공부는 대학교 가서 시작인데. 쟤네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데."

"근데 아직 한국 IB 과정은 초기이고 충분히 정착이 안된 것 같아 보이는데. 여기 심천 국제학교들은 그래도 오랜 기간 가르쳐 본 경험이 있으니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미흡한 면도 많을 거야."

"그렇지... 근데 졸업한 애들 나와서 이야기하는 거보니 아이들은 만족해하는 거 같던데, 물론 입시결과와는 좀 별개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야 물론 좋겠지만."

"지난 입시 결과라든지 졸업생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것 같아. 당신은 정말 표선으로 가고 싶은 거지? 그럼 당신 회사는 어떻게 하려고?"

"나는 지금도 대부분 재택으로 근무 중이잖아. 오히려 내가 한국 사람이니 한국에서 다른 프로젝트들도 할 수 있을 거고 또 필요할 때 서울에 다녀오면 충분할 것 같아. 중국도 필요할 때 출장으로 다녀오면 되고. 근데 당신은 퇴직해도 괜찮겠어?"

"난 할 만큼 한 것 같아. 여기서 현재 포지션 다음에 대한 비전도 잘 안 보이고. 솔직히 계속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나고 그렇게 나 자신의 능력을 꺼내서 쓰고 있는데, 채워지는 건 없어. 나에게도 채움의 시간과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 여기에 있으면 점점 세상이 변하는 속도대비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맞다. 언어의 장벽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화적인 경험과 사회적인 소속감 등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아이들은 이제 점점 사회에 발을 내딛고 경험을 해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의 사회적 경계는 아직 많이 확장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의 한국행은 아이들이 마냥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동경과 중국에 대한 불편함'이라는 프레임에도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 분명했다.


"쟤네 분명 나중에 중국생활에 대해 그리워하고 감사할 날도 올 거야."

"맞아. 그래도 재스퍼는 할머니 자주 볼 수 있다고 좋아하겠네!"

그렇게 우리는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나누고 각자 조금씩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한국에 오고 몇 달이 지난 뒤 와이프가 나에게 오래전 본인이 써두었던 메모를 보내주었다.

그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24년 2H. 새로운 챕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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