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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그리고 체험 수업

MYP

by 제주IB아빠

3월. 기나긴 방학이 지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첫째는 3학년, 둘째는 1학년. 당분간 서로 투닥투닥 거리며 등하교를 같이 할 모습을 생각해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학교 생활을 이미 한 학기 경험해 본 형님이 있으니, 둘째는 좀 더 수월하게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았다.


개학식과 입학식이 같이 열리는 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자리에 학부모들을 초대하였다. 아내와 나는 작은 꽃다발을 들고 지난 12월 이후 두 번째로 학교 강당을 찾았다. 잠시 기다리니 3학년과 2학년 학생들이 먼저 강당에 입장하였고, 1학년 신입생들이 마지막으로 빈자리를 채웠다.


우리는 IB 학교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신입생 규모에서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다. 1학년은 무려 9개 학급으로 편성되었다. 각 반마다 25명 내외의 학생 수를 감안하면 전체 신입생 규모는 200명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2, 3학년의 학급 규모가 대략 5개에서 6개 반 정도인데, 1학년 신입생은 그 두 배 정도 수준이라니. 내년 신입생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가 된다면 전반적인 학교의 시설 및 인프라의 확충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다.


신입생 둘째의 담임 선생님과 교실이 궁금했다. 강당 앞에 붙여져 있던 반 배정 정보를 참고해서 아내와 같이 교실로 가보았다. 신입생 수가 갑작스레 증가하다 보니 원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던 공간을 교실로 바꾸어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작년 학기 말, 당시 2학년 2학기를 마친 첫째 아들 담임 선생님과 성적 및 고등학교 진로 관련 면담을 진행했던 곳이었기에 우리 부부는 바로 알아챌 수가 있었다. 학교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공간의 재배치와 준비를 진행하느라 바쁜 방학을 보내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학생 수의 증가. 그리고 이를 수용하기 위한 학교와 선생님들의 노력. 그럼에도 걱정이 앞서는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 역시 작년 하반기 제주로 이주하며 학생 수 증가에 일조하였으니 이런 혼란스러운 부분을 그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당연한 것일까.


이미 늘어난 학생들로 인해 작년부터 교실 추가 증축을 진행하고 있는 표선초. 늘어난 학생 수로 인해 혼란이 예상되는 표선중. 고등학교 입시 과열로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른 표선고. 이 모든 일들을 생각하니 가슴도 머릿속도 답답한 느낌으로 가득했다. '좀 더 알아보고 신중하게 선택을 했어야 했나'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20250330_114020.jpg 주말이면 가슴과 머릿속의 고민들을 자연에 날려 보낼 수 있어 좋다. 한라산과 그 주변의 풍경 좋았던 족은노꼬메오름에서.

그러던 중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져온 가정통신문에서 학부모 대상으로 워크숍을 기획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받는 수업 방식을 학부모들이 일부 체험해 보는 시간으로 피상적으로 짐작만 하던 IB 교육 방식에 대해 짧지만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되어 바로 신청을 하였다.


IB 워크샾.jpg 표선중학교 학부모 탐구수업체험 프로그램

총 2시간의 워크숍 중, 첫 한 시간은 IB MYP 수업 방식과 평가에 대한 설명 그리고 나머지 한 시간은 학부모들이 직접 선생님과 수업을 하는 방식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가장 기대가 된 시간은 바로 두 번째 시간.


나와 아내는 처음 뵌 다른 학부모들과 같은 조를 이루어 않아 선생님의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조원들끼리 생각을 나누고 정리된 의견을 커다란 종이에 적는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의견을 우리 조의 의견으로 채택하면 좋을지. 다 같은 학부모들이라 그런지 의견의 충돌이나 다툼 없이 자연스럽게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지만 실제 학생들 사이에서는 일치된 의견을 만들기까지 꽤나 복잡한 과정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원들과 같이 의견을 나누며 선생님이 주신 과제 혹은 질문에 대해 주된 의견을 선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가지치기를 해나가며 다양한 내용들을 이야기하고 적어가는 사이에 비어있던 흰 종이가 나름 부끄럽지 않을 수준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각 조별로 만든 결과물을 다른 조원들과 함께 리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시간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다른 팀의 내용물을 보면서 내가 좀 더 공감하거나 혹은 생각지 못했던 의견과 아이디어 등에 스티커로 피드백을 남기는 활동을 마지막으로 수업 체험을 끝마쳤다.


강의를 듣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여 조원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하나의 의견을 채택하고 그리고 그 의견을 중심으로 내용을 확장시키고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리뷰하기까지. 학생의 입장이 되어 수업을 체험해 보니 45분이라는 시간의 밀도가 정말 높게 느껴졌고,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는 걸 느끼게 되었다. 수동적으로 의자에 앉아서 일방적인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받아 적는 전통적인 방식의 수업과 달리 학생이 주가 되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수업의 내용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매우 인상 깊었다.


언뜻 개인적인 경험이 떠올랐다. 한국의 회사에서 내가 경험한 회의는 이랬다. 발표하는 자료는 완벽에 가까워야 하며, 깔끔한 발표를 위한 스크립트 작성 및 사전 리허설은 필수였다. 또한, 그 누구의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준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해서 대체로 경직된 회의가 주를 이루었다. 그런 회의에서는 주로 높은 지위에 있으신 분들이 질문을 하고 의견을 말씀하실 뿐 대다수의 실무 직원들은 회의록을 쓰거나 윗분들 의견을 잘 경청하고 다른 부서원들에게 잘 전달하는 게 미덕으로 여겨졌었다.


반면 내가 지난 7년간 경험한 외국계 기업에서는 회의를 통해 자료, 의견, 사업의 방향 등을 보다 발전시키고 향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문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비판적인 피드백을 전달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오히려 본인의 생각을 어필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회의에 임하는 모습에서 한국과는 다른 문화에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 역시 처음과 비교하면 많이 목소리를 내는 편이지만 여전히 한계를 느끼고 있었고 이런 모습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시아계 직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체험 수업을 마치며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좀 더 가벼웠다. 물론 수업과 선생님에 따라 편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 IB 수업 방식이 지향하는 방향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고, 올바른 방향을 향해 천천히 더 나아질 거라고 믿고 싶어졌다.


학생들도 많이 입학하고 이런저런 혼란스러움과 준비가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IB 교육 방식은 올바른 방향을 향해 있는 게 분명하다. 학생 주도의 수업이 앞으로도 잘 이루어지고 차분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아이들과 학교 및 선생님을 응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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