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교육과정과 그 혼란
12월 크리스마스와 2025년 새해 연휴를 보내고 나니 어느덧 학년 말이 다가왔다.
새해 1월에는 방학식과 졸업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6학년 2학기를 마친 둘째는 얼떨결에 표선초등학교 졸업생이 되었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아 들게 되었다. 한국으로의 이주,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 그리고 주변 환경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을 둘째가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한편 중학교 2학년을 마친 첫째는 이제 본격적으로 고교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중3 진학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고교 입시라니! 순간 30년 전 나의 중학교 3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신 성적과 일종의 모의고사 그리고 체력장 점수가 고등학교 진학에 필요했었던 것 같았는데, 그런 입시 과정을 우리 아이들도 겪어어 하는 상황이었다.
제주에는 전기와 후기에 지원할 수 있는 학교들이 나뉘어 있는데, 전기에는 특수목적 고등학교(제주과고포함)/일반고 특수목적과/특성화 고등학교/일반고 직업계열학과 등에 지원할 수 있고 후기에는 평준화 일반고등학교/비평준화 일반고등학교/자율형 공립학교/특수목적고(제주외고) 등에 지원할 수 있게 되어 있다.
IB 교육과정을 다루는 표선고등학교는 후기-비평균화 일반고등학교 군에 속하므로 후기의 다른 학교에는 지원할 수 없고, 지원 후 탈락하게 되면 다른 학교를 찾아서 재지원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아이들의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한다.
문제는 초등학교 및 중학교에서 IB 교육 과정 인증을 받는 학교는 계속 늘어나고, 이와 더불어 타지에서 전학을 오는 학생의 수도 점차 증가하는데 반해 IB 교육 인증을 받은 고등학교는 제주 지역 내에서 표선고가 유일하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고 생각할 때, 향후 표선중학교 졸업생의 표선고 진학 비율은 현재보다 나아질거란 보장이 없다. 오히려 더 감소할 걸로 예상된다.
1년 전만 하더라도 표선중학교 졸업 학생들 중 대략 70-80%의 학생들이 표선고등학교로 진학하였으나, 2025년 졸업생의 경우 대략 48-50%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표선고 진학이 어려운 학생들은 주변에 차량으로 대략 40분에서 1시간 거리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다른 학교를 알아봐야 한다고 하니 표선 지역에서 자고 나란 학생들과 외부에서 초-중-고교로 이어지는 IB 교육 과정을 위해 표선 지역으로 이주한 학생들의 경우 상당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IB 인증 고등학교를 확대하면 어떨까? 생각보다 쉽지 않아 보인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타 고등학교의 IB 교육 추가 인증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표선고의 정원 확대는? 이 역시 향후에는 학령인구가 급감하기 때문에 최근의 상황만 보고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모두 알다시피 한국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아니던가.
상황이 이렇다보니 PYP(초등)-MYP(중등)-DP(고등)으로 이어지는 IB 교육 과정의 연계성,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IB 교육 체계인 PYP-MYP-DP로 이어지는 교육 과정 속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탐구하며 본인이 원하는 삶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IB 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 고교 입시 제도는 PYP-MYP 이수 여부와는 관계없이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우선적으로 표선고에 입학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으니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IB 과정과의 연계 혹은 지속적인 학생들의 성장은 고려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렇다면 결국 IB 교육 과정 역시 입시 결과로 그 효용성을 증명해야만 하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표선고에 입학 지원자가 증가한 배경에는 최근의 입시 결과가 크게 작용했음을 누구나 인정하는 분위기다. 물론 입시결과와 IB 교육과정 간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결국 표선고 역시 지속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결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하는 것이 아닐지.
최근 표선중에서 진행한 고교 입시 전형 설명회에 표선교 교감 선생님을 통해 교육 과정에 대한 소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실상을 들어보니 DP 과정을 시도하는 학생의 수가 생각보다 적은 편이라 놀랐었고, 그 가운데 실제로 DP를 획득하는 학생의 수는 더 적었다. 40점 이상의 IB 고득점자는 아직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해외 대학 입시에서 IB 점수와 DP를 활용한 케이스는 아직 없었다. 또한, 수시 전형을 통해 (수능이 아닌 DP 획득을 목표로 하는 과정이기에)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여도 상당수의 학교들은 IB 점수를 아직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고, 대부분 수능 최저 점수를 요구하는 현실 등 표선고에 진학한 이후에도 남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하기에 부모가 아닌 학생들 본인의 의지가 가장 (물론 당연하지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IB 교육 과정이 한국에서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과 그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다루었던 여러 미디어들. 그리고 다양한 이유로 표선 지역에서 IB 교육 과정에 찬성한 주민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제주 표선 지역까지 이주해 온 사람들. 모두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한민국의 교육 체계와 IB 과정은 어떻게 서로 보완하며 아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