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YP & MYP
새로운 학기의 초반. 한국의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의지의 한국인은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학교의 공지사항과 선생님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하이클래스라는 앱의 중요성과 유용함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학교와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8월이 훌쩍 지나가고 9월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IB 학교 교육과정은 PYP (3~12세) / MYP (11~16세) / DP (16~19세)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제주의 IB 학교는 이를 초/중/고로 나누어서 적용한 것으로 보였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를 시작한 둘째는 PYP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중학교 2학년 2학기를 시작한 첫째는 MYP의 중간 지점을 지나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둘째는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9월부터 매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전시회는 PYP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꽤 큰 이벤트였다. 5~6명의 아이들이 그룹을 이루어서 주제 선정, 자료 조사, 내용 정리, 내용 탐구, 발표 자료 준비 및 최종 발표까지 포함하는 것으로서 대학생 시절 조별 과제와 유사해 보였다.
다만, 아직 스스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진행하기에는 벅찰 수 있어, 여러 선생님과 중학생 선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마지막 발표회에는 학부모, 주변의 IB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국제학교, 타 IB 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이 초청되어 각 교실마다 마련된 학생들의 프로젝트 발표를 듣고 학생들이 준비한 다양한 액티비티도 즐길 수 있었다.
혼자서 책 읽고 문제 푸는 방식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이런 과제는 다소 벅차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스스로 고민하고 다른 이들과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의견에 반박을 하거나 다투기도 하면서 성장을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외국의 팀원들과 회의를 할 때, 늘 조용하게 들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치열하게 이런저런 의견에 대해 고민하는 내 모습과 비교하면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얼마나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잘 제시할지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전시회만 준비하는 것은 아니었다. 각 과목별 단원 평가도 및 수행 평가도 있어서 '지필 평가'와 IB 프로그램의 '전시회'를 같이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 지식의 습득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과목별 지필평가 역시 잘 준비하는 게 당연하다는 게 부모로서 내가 가진 생각이었지만, 아이로서는 두 가지 과제를 균형 있게 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조금 혼란스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첫째는 MYP 프로그램의 중간 과정에 해당하는데 2학기에 전학을 온 관계로 12월에 진행한 공동체 프로젝트 전시회에서는 그룹 프로젝트 대신 동아리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또한, 공동체 프로젝트와는 별개로 각 과목별 IB 총괄평가와 함께 학기말 지필 평가가 있었다. 이 두 가지 평가는 내신에 반영되는 것으로서 과목마다 비중의 차이는 있었으나 대략 70~80%는 IB 총괄평가 점수를, 나머지 20~30%는 학기말 지필평가 점수를 반영하여 해당 학기의 내신 성적이 결정되는 구조였다.
중학생의 IB 수업은 어떻게 진행될까? 한국에서의 첫 학기를 막 시작한 첫째 아이에게 국제학교 IB 수업과 비교해 보면 어떠냐고 했을 때, 조금 다르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물었을 때, 첫째는 수업방식의 차이에 대해 설명해 줬다. 국제학교에서는 교과서보다는 선생님이 준비한 슬라이드와 그룹 활동이 중심이었던데 반해 한국의 IB 중학교 2학년 2학기는 보다 교과서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물론, '모둠 활동'을 통해 토론과 발표를 많이 장려하는 수업 방식이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IB 교육 방식이 도입된 초기에 불과하기에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IB 교육을 위해 선생님들도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새로운 교육 방식을 본인의 전담 과목에 입혀야 하니 업무 강도가 상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IB 교육 방식에 익숙해진 선생님들은 4년 후면 새로운 학교로 다시 이동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은 교육의 노하우와 경험을 모두 내려놓고 IB 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반적인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학교 안에서 아이들은 그래도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존에 경험했던 방식과는 조금 다르지만 첫째는 새로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했고 IB 평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학교의 공동체 프로젝트는 12월에 진행되었다.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중학교 3학년의 기말고사를 11월에 앞당겨 치르는데, 아마 이를 배려해서 중학교 3학년 기말고사를 마친 시점 이후에 진행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초등학교 전시회와 마찬가지로 외부 손님들이 초대를 받았다. 학부모와 주변의 IB 초등학교 후배들 그리고 타 IB 학교의 선생님들까지 초대된 제법 큰 행사였다.
중학교 1학년은 지역과 연계된, 즉 표선 지역을 보다 발전시킬 수 있는 개선점에 대해 그리고 2학년은 봉사활동에 대한 내용을 그룹별로 전시 및 발표하였다. 그리고 3학년은 공동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본인들이 생각한 문제점에 대해 해결 방안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실제 실행한 결과물을 통해 어떠한 효과가 있었는지 발표하였는데, 상당히 다양한 문제를 주제로 다루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흥미가 가는 주제에 대해 들어보고 학생들에게 질문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전반적으로 10월에 둘째의 초등학교 전시회와 비슷한 형식이었으나, 중학생이기에 좀 더 완성도가 높은 수준을 기대한 것 대비해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점은 1,2, 3학년의 공동체 프로젝트가 어떤 연속성을 가지는지, 즉 1학년에 선택한 탐구 주제가 2,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어떤 식으로 발전하거나 혹은 파생되는지가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학생들 개인의 선호에 따라 주제는 매년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연속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또한, 아쉬웠던 점은 MYP에서 다룬 주제들이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어떻게 이어지거나 활용이 되는지 궁금해 선생님께 질문하였으나 이에 대해 선생님은 '고등학교에서 어떻게 이 부분이 연계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답변을 주셔서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IB교육과정이 PYP, MYP, DP로 이어지는 커리큘럼인데 중학교와 고등학교 간의 교육 과정의 연계성 혹은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한국 교육에서 아쉬운 점 중의 하나는 아이들이 본인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국제적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고민을 해볼 만한 시간적인 여유와 지원이 매우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런 공동체 프로젝트의 의미와 취지가 매우 긍정적이고 이를 잘 발전시켜서 고등학교의 DP 과정에서는 본인의 프로젝트 혹은 에세이 주제로도 발전시킬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나의 생각과는 좀 거리가 멀어 보였고, 그래서인지 학생들의 동기부여도 충분치 않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PYP 전시회를 마친 둘째는 한 달여간 모둠 친구들과 준비하고 발표한 전시회를 돌아보며 본인의 느낀 점을 서툴지만 한국어로 이렇게 정리했다.
"전시회라는 큰 도전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친구들과 어색했고, 본인의 한국어도 아직 서툰 면이 있었지만 자주 토의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소통이 점차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 같이 공동 작업으로 파워포인트를 작업하고 완성하는 게 어려웠다. 처음에는 한 두 명만 참여했으나 어려운 점을 친구들에게 얘기하고 다 같이 참여해 줄 것을 부탁한 이후로 모든 친구들이 작업에 참여해서 시간 내에 작업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인의 의견을 친구들에게 잘 얘기하지 못했는데,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 있게 의견을 내고 그러면서 친구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맞든 틀리든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얘기하고, 어렵거나 부탁할 일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이를 전달할 수 있고, 본인의 약점을 드러내며 다른 이들과 가까워지는 것. IB 학습자상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IB 교육과정을 통해 형식적인 것을 넘어서 실질적으로 아이들이 이런 학습자상에 가까운 경험과 실천을 하고 배울 수 있도록 현재의 도입 초기 시행착오를 잘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