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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 30년이 지나도 크게 바뀌지 않은

아이들을 위한 자유롭고 활동적인 교복이 필요하지 않을까

by 제주IB아빠

8월 중순 중학교 개학을 앞두고 교복을 맞추기 위해 제주시에 있는 교복 판매점을 찾았다.

표선에서 제주시까지는 차로 대략 1시간이 걸리는 제법 먼 여정이다. 학교는 서귀포에 있는데, 왜 교복 판매점은 제주시에만 있는 건지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오래간만에 시내 구경이나 하자며 온 가족이 다 같이 움직였다.


문득 예전 학교 다닐 때, 나의 교복은 어떠했는지 기억을 조금 되돌려보았다. 여름에는 얇은 바지에 반팔 셔츠. 겨울에는 두툼한 회색 바지에 남색 쟈켓, 회색 조끼, 하얀 셔츠 그리고 남색 넥타이. 금색으로 크게 박힌 학교 로고와 명찰. 30년 전 그 시절 교복과 요즘 교복은 많이 다르겠지라는 기대를 하며 예전 아빠와 엄마가 입었던 교복은 정말 별로였다고 아이들과 얘기하며 그렇게 제주시에 도착했다.


하지만 교복을 보자마자 큰 아들은 물론 나조차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편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디자인이 이쁘지도 않은 그런 교복. 그나마 체육복에 비하면 교복은 좀 나은 편. 체육복은 정말 색감이...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내년이면 똑같은 교복과 체육복을 입어야 하는 둘째 아들은 벌써부터 교복 입기 싫다는 투정을 내뱉기 시작했다.


일단 제주도의 더운 날씨와 아이들의 활동성 및 그로 인한 왕성한 땀 배출 등을 감안하자면, 교복의 옷감 재질이나 디자인에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하의는 반바지라는 점. 30년 전 학교를 다니던 시절, 얇지만 긴 바지 때문에 여름에는 덥고 땀이 차서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침에 말끔하게 입고 등교하더라도 하교해서 집에 올 즘에는 셔츠는 벗어 가방에 넣고 반발 티셔츠 차림으로 다녔었다. 아예 긴 바지가 불편해서 반바지로 갈아입고 하교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여름 체육복이 어땠는지는 어렴풋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 교복만큼이나 입기 싫었고 별다른 특징이 없는 옷이었던 게 틀림없다.


여름 교복을 보니 겨울 교복은 어떨지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요란한 체크무늬 바탕의 진한 초록색 바탕의 상/하의를 보고 큰 아들은 다시 한번 실망. 나 역시 이게 정말 아이들이 학교 다니면서 입어야 하는 옷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누가 교복을 이렇게 결정하는 거지? 아이들과 학부모의 의견은 반영이 된 건가? 저걸 입고 편하게 수업을 듣고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리고 가격은 왜 이렇게 터무니없이 비싼 거지? 한 번은 무료로 제공한다고 하지만 정말 저 가격에 이런 옷을 사서 입어야 한다고? 이건 세금 낭비 아닌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갖가지 의문과 질문 그리고 실망감을 억누르고 일단 교복과 체육복을 구매하고 매장을 나섰다. 점심을 먹는 내내 나의 30년 전 불편했던 교복과 21세기 현재의 교복을 비교해 보며 참담함을 느꼈다.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데, 아직도 이 수준이라니. 그와 동시에 국제학교에서 아들이 입었던 스쿨 유니폼이 떠올랐다. 정말 철저하게도 아이들의 활동적인 면을 고려해서 실용적으로 디자인된 옷들이 다양한 종류로 구비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그 다양한 종류 중에서 본인이 선호하는 옷을 골라서 입고 다니면 그만이었다. 아이들은 주로 기능성 소재로 제작된 반바지와 반팔티를 입었고, 날씨가 좀 쌀쌀해지면 그 위에 후드 집업이나 후드티를 입는 식이었다. 워낙 옷이 편하고 디자인도 이쁜 편이라 주말에도 혹은 어디를 놀러 가더라도 학교 옷을 입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스쿨 유니폼은 학교에 지정된 날짜에 방문해서 여러 종류의 옷을 확인하고 본인 몸에 맞는 치수를 잰 후 그 자리에서 혹은 제품 재고가 없을 경우 온라인으로 구매해서 집으로 배송받을 수 있었다. 가뜩이나 교복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런 옷을 한 시간이나 차를 타고 이동해서 구입하러 와야 한다니. 도대체 학교의 행정시스템은 디지털화될 수 없는 것인지 스스로 터져 나오는 불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날씨가 좀 더 쌀쌀해진 후에 동복을 입게 된 큰 아들은 단 한 번도 교복 상의 쟈켓을 입지 않았다. 교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는 것에 대해 몇 번 주의를 주었으나 학교에서도 교복을 다 갖춰 입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이해가 되었다 - 대부분의 아이들이 쟈켓을 입고 싶지 않아 하는구나.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등교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교복 하의에 상의는 각종 패딩과 점퍼 차림으로 안에 쟈켓은 입지 않은 채 셔츠 등을 입고 있었다.


이후 둘째 아들이 중학교 배정을 받고 똑같이 제주시에 위치한 교복 매장을 방문해서 겨울 교복 및 체육복의 치수를 재었다. 첫째와 달리 신입생으로 중학교에 입학하는 둘째는 교복과 체육복을 학교에서 수령하게 될 거라는 안내를 매장에서 받았다. 여름에 잠시 눌러놓았던 불만이 다시 올라왔다.

"아니 학교에서 받을 거면, 어차피 이 동네에 사는 애들이 다 이 중학교로 진학하는 건데. 하루나 이틀 정도 날짜 잡아서 업체가 학교로 와서 치수 재고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왜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이동해야 하는 거지? 업체에서 학교로 출장을 나오는 게 훨씬 합리적인 거 같은데?"


아직 대부분의 한국 학교들이 과거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이 크게 고려되지 못한 채, 효율적으로 행정을 처리하기 위해 과거에 해온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세상과 산업이 바뀌고 있고, 보다 창의적인 인재의 중요성을 너 나 할 것 없이 떠드는 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들에게 왜 과거에 어른들이 입던 그런 딱딱한 복장을 제안하는 건지. 그리고 그런 복장을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면 변화를 줄 수는 없는 건지.


(여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한창 멋에 눈을 뜰 시기의 중학생들은 교복 이외의 옷을 자유롭게 입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반장/부반장 혹은 학생회장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하나 같이 '교복 위에 후드티를 입고 등교할 수 있도록 하겠다' 혹은 '체육복을 입고 등교할 수 있게 하겠다' 등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열심히 그들의 니즈에 맞는 선거 공약을 제시하고 있었다. 결국 어른들이 바꾸지 못하는 현실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길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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