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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우 May 03. 2024

사랑과 미움, 그리움과 후회를 모두 내려놓기

비긴 어게인, 정류장

  때로는 살아가면서 앞으로 더 나아가기 힘든 순간이 있다. 여기 두 이야기의 인물들도 그러한 환경에 놓여있다. 영화 비긴어게인, 한로로의 노래 정류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정류장


난 모든 걸 멈춰 세울래
나의 절망과 소망까지도
또 다른 내가 찾아올 때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도록


  한로로의 정류장은 다음의 노랫말로 시작한다. 화자의 마음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이다. 마음속 정류장에서 잠시 머물러 가려고 한다. 영화 비긴어게인의 그레타도 일상적인 삶에서 잠시 벗어나 뉴욕이라는 도시에 머물게 된다. 유명한 가수 남자친구인 데이브를 따라 뉴욕에 왔지만 그의 외도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캐리어 하나와 자전거 그리고 기타만을 이끌고 친구의 집으로 도망쳐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 같은 그녀를 데리고 친구는 한 바에 데려간다. 그레타도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었기에 친구는 적극적으로 그녀를 무대에 세운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무대 뒤로 영화는 또 한 명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한 때는 트렌드를 선도하는 잘 나가는 제작자인 댄이다. 현재는 자신이 세운 레이블에서 잘리고 술에 찌들어 사는 중이다. 아내와 딸과는 별거 중이고 가족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회사에서 잘리고 지하철에 뛰어들기 전 들린 바에서 그레타의 노래를 듣게 된다. 둘의 만남으로 비로소 영화는 시작한다. 그레타의 실력을 알아본 댄은 그럴듯한 말로 그녀에게 작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마치 노숙자와 같은 차림인 그에게 신뢰를 느낄 이는 없어 보였다. 본인도 인지한 것일까 빈털터리인 사정을 설명하고 그의 이력을 들려준다. 이제 작업을 같이 할 여부는 온전히 그레타의 몫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가 댄에게 전화를 걸어 제안을 수락한 순간 그레타도 평소 흘러가던 그녀의 삶에서 뉴욕이란 정류장에 잠시 내리게 된다.


세모난 바퀴, 나사 빠진 핸들


세모난 바퀴도 나사 빠진 핸들도
깜빡이는 신호등도 결국 모두 살아있네


  세모난 바퀴와 나사 빠진 핸들로는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한다. 정류장의 화자도 마찬가지다. 그레타 역시 뒤죽박죽 된 마음이다. 남자친구의 바람으로 인한 배신감, 잘 나가는 음악가인 남자친구의 그늘에서 점점 잃어가는 그녀의 음악 등 마치 뉴욕과 같이 복잡한 마음이다. 댄 역시도 엉망진창인 상태이다. 그의 커리어는 점점 내리막을 향해가고 있어 제작사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아내의 외도는 그런 상태에서 더 큰 상처가 되었다. 이런 두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당사자들도 그렇다. 이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사소한 표현도 논쟁의 시작이 된다. 서로의 무너진 마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날 선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된다.


차갑던 여름, 울었던 가을, 멍든 겨울을 안을래요


차가웠던 여름도 울어버린 가을도
남기지 못해 멍든 겨울을 난 안을래요

  위 가사는 감정과 계절이 합쳐져 있다. 그 계절 안에는 화자가 있다. 여름에 차가웠고, 가을에 울었다. 그리고 겨울에 멍든 자신이 있었다. 이제는 지나온 그 자신들을 안아서 온전히 받아들이려 한다. 그레타와 댄은 날 선 말들로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낸 후에야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절망만 바라보다 자신들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이해한다. 두 사람이 음악을 들으며 뉴욕의 시내를 거니는 장면은 아무 관계도 아닌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안아주는 계기가 되었다. 더 나아가 어쩌면 둘 사이의 관계가 미묘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음악은 무너진 마음을 채우고 도시라는 공간에 향기를 불어넣는 것, 풍경을 원하는 분위기로 바꾸며 사소한 장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레타와 댄은 음악을 통해 차가웠고 울었으며, 멍든 자신들을 보듬게 된다.


사랑과 미움을 남겨두다

난 많은 걸 두고 떠날래
 너의 사랑과 미움까지도
 꼭 우리가 다시 만날 때
 너를 온전히 품을 수 있도록

 그리움이라는 감정 아래 묻었던
 후회들은 모두 바람결에 사라져 버리고
 부어오른 마음을 그냥 둘 수가 없어
 말없이 걷던 하얀 길 위의 날 안을래요

  정류장의 화자가 그녀를 잠시 멈추게 된 원인은 그녀의 사랑과 미움 때문이었다. 때로는 그리움이지만 곧 후회이기도 하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하는 모습이다. 그리움이라는 감정 아래 감춰있던 후회를 떠나보내자 정처 없이 방황하던 자신을 비로소 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레타에게 사랑과 미움은 남자친구인 데이브이다. 그레타가 댄과 함께 음악 작업을 하면서 뉴욕이라는 정류장 생활에 익숙해질 때 그의 연락을 받는다. 그와 다시 재회해 대화를 하면서 그녀가 사랑했고 그리워했던 모습을 본다. 한편으로는 데이브가 다시 예전의 모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미련과 어색함을 갖고 겨우 돌려보낸 그녀의 마음에 미련이 한편 자리 잡아 있다. 그러나 데이브의 초대를 받고 간 공연에서 그는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며 둘 사이의 관계도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Lost stars'는 그레타가 데이브에게 선물한 곡이며, 둘 만의 노래로 남길 바라는 곡이다. 그러나 데이브가 그 노래를 음반에 담고 공연에서 부르는 순간 더 이상 둘 만의 노래일 수 없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편의 미련인 사랑과 미움, 그리움과 후회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뉴욕이라는 공간에 남아있던 또 하나의 미련이 있다. 같이 작업을 했던 댄에게도 돌아가야 할 가정이 있음을 깨닫는다.


비긴 어게인

내 안의 모든 게 다 녹아버릴 때
보이지 않던 게 하나 둘 피어날 때
피어난 입김이 외롭지 않을 때
그럴 때 마침 일어설래요


  절망과 소망을 모두 멈춰 세운 채 정류장에서 방황하던 화자의 마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면서 꽃이 피어나고 짙은 향기가 풍기기 시작한다. 차가운 마음에서 피어나는 입김은 외롭게 올라가던 모습도 이제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멍든 겨울을 끝내는 입춘이다. 달라진 풍경에 비로소 다시 정류장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된다. 그레타가 뉴욕에 처음 왔을 때는 혼자 힘으로 설 수 없었다. 이전에는 항상 데이브와 함께였고 뉴욕에서는 댄과 친구에게 의지했다. 친구로 인해 바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고, 댄으로 인해 음악 작업을 같이 하게 되었다. 모든 결정의 시작이 그녀였던 적이 없다. 하지만 뉴욕에서 모든 미련을 정리하고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리자 비로소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악이 보였다. 진정성 있는 음악의 힘을 믿고 레이블과 계약하지 않는다. 1달러로 인터넷에 음반을 발매하기까지 이른다. 뉴욕에 있는 동안 그녀가 가장 주도적으로 내린 결정이다. 사랑과 절망에 떠밀려 정류장에서 내릴 수밖에 없던 그녀는 다시 버스를 타지 않는다. 다른 이가 운전하는 차에 타지 않는 것이다. 대신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자전거를 탄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인생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으로 나아간다.





한로로-정류장

https://youtu.be/4 SrrieLwsOI? si=QFveqHVnnhgXxU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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