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취약성, 트위스터스
사람들에게 자연은 호기심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다. 영화 '트위스터스'의 주인공 케이트에게도 그러하다. 어린 시절부터 토네이도에 관심이 있던 그녀는 친구들과 팀을 꾸려 토네이도를 추적하며, 과학 기술을 통해 이를 소멸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불완전한 지식과 기술로 인해 친구들 대부분을 잃게 되면서, 토네이도는 그녀에게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복합적 존재가 되었다.
한편 타일러는 토네이도를 추적해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 수익을 얻는다. 그의 모습은 케이트에게 오만해 보였지만, 재난 현장에서 마주한 진실은 그녀의 편견을 깨뜨린다. 타일러가 콘텐츠로 얻은 수익은 이재민 지원에 쓰이고 있었던 반면, 케이트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연구 투자자는 자연재해 피해자들의 부동산을 싸게 매입해 이익을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발견은 케이트의 목표를 바꾼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토네이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경로를 예측하고, 더 나아가 토네이도 소멸에도 다시 도전하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이 '재난의 불평등'이었다. 재난으로 이익을 얻는 이들과 피해를 보는 이들이 달랐고 재난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오히려 수익을 얻는다는 현실이 이 영화를 주목하게 했다. 이는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와도 비슷한 맥락이다. 산업혁명 이후 선진국에서 배출한 탄소가 지구온난화를 야기했지만, 정작 그 피해를 가장 크게 입는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적게 기여한 개발도상국 사람들이다. 이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질수록 극한 현상은 더욱 빈번해지고 피해규모도 커진다. 이러한 피해는 당연히 경제 수준과 직결되어 있어, 기후변화의 불평등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영화에서는 개인의 능력으로 재난 문제를 해결해나가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트위스터스는 영화이지만, 자연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후변화는 극한현상을 증가시켜 이러한 취약성을 더욱 높일 것이다. IPCC 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취약성(vulnerability)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나 경향을 의미하며, 피해에 대한 민감성과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의 부족을 포함한다.
기후변화 취약성은 회복력(resilience), 위험(risk), 노출(exposure), 민감도(sensitivity), 대처능력(coping capacity)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어떤 사회, 인구, 장소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기후변화 취약성의 정도가 달라진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까지 포함하는 복합적 개념이다.
취약성은 크게 내부요인과 외부요인으로 구분된다. 내부 요인에는 인종, 성별, 연령, 장애, 종교, 건강 등이 포함되고, 외부 요인에는 사회경제적 계층, 주거 형태, 자산, 교육, 사회적 네트워크 접근성, 문화적 지식, 정치적 권력 등이 있다. 영화 트위스터스에서 특히 드러나는 것은 외부 요인에 따른 취약성이다.
중요한 것은 취약성의 기준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환경과 사회경제의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며, 일정 임계값을 넘어가는 순간 급격한 변화가 예상된다. 기후변화는 지구환경 및 사회시스템을 이러한 임계값에 가깝게 만들어 상당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취약성이 사회에 주는 영향은 사회구성원이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식량, 건강, 안전 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나타난다.
기후변화는 직간접적으로 식량에 영향을 준다. 직접적으로는 생산량 감소와 작물 수확 실패를, 간접적으로는 공급 감소로 인한 물가 상승을 야기한다. 트위스터스처럼 토네이도로 자가용과 식료품점이 파괴되면 식량 자급이 더욱 어려워지고 구호물품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저위도 건조 지역의 소규모 가구들은 특히 취약하다. 스리랑카, 에티오피아, 인도 등에서 나타나는 현상처럼, 이들은 도시와의 거리가 멀어 수익의 다각화가 어렵고 농업에 크게 의존한다. 가뭄은 이들에게 매우 큰 지장을 주는 자연재해다.
식량 문제의 영향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난다. 유아기의 영양실조는 성인이 되어서도 생산성 저하, 소득 감소, 학습 어려움을 야기한다. 여성의 경우 빈곤으로 인한 청소년기 조기 결혼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가족 구성원 수를 줄여 남은 식구들의 식량 배분을 늘리려는 절박한 선택이다.
도시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도시 빈곤층이 식량물가 상승에 가장 취약하며, 아프리카 도시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가격 상승이 도시 빈곤율을 1/3 정도 높이기도 한다. (Parry, 2007)의 연구에 따르면, 4도씨 상승 시나리오에서 전 세계 곡물 가격은 2080년까지 160%나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현실적 대응은 이들의 영양 수준에 악영향을 주는데 저품질의 주식이나 보다 작은 양의 식사 혹은 저빈도의 식사를 통해 이에 대응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극한기후현상은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극한현상은 많은 피해를 주고 회복 속도가 더디기에 가난한 이들은 삶에서 빈곤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결국에는 가구의 생산을 담당하는 가축과 같은 자산을 팔기에 이른다. (Shepherd et al., 2013) 연구에서는 하루에 4달러 이상의 수익이면 빈곤을 피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부유층은 환경으로 인한 피해를 입어도 수년 동안 재산의 회복이 일정 부분 가능한 반면, 빈곤층은 지속적으로 피해가 회복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또 이런 사회경제적 요인은 머무는 공간의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낮은 사회적 지위의 사람들은 비교적 열에 취약한 환경에 놓여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경제적 영향을 넘어 분쟁, 불안정, 사회 붕괴의 증가와 같은 사회적 취약성도 제공한다. 정상 범주를 벗어난 기온은 폭력 범죄와 상관성이 있으며, 개인 및 집단의 공격적 행동을 촉발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존재한다. 특히 이러한 갈등은 자원 문제와 결합될 때 더욱 심각해진다.
물과 같은 천연자원을 공유하던 나라들 간의 협력 관계가 기후변화로 인한 자원 부족으로 갈등 상황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자연재해 발생 후에는 한정적인 자원을 둘러싸고 갈등이 빈발하는데, 재난 상황의 혼란이 폭력에 대한 처벌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식수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긴장 상태가 지속되며, 구호물품 분배가 편향되거나 그렇게 여겨질 경우 불만이 커진다.
기후변화는 현재도 수많은 이주민을 양산하고 있고 어떤 나라에서는 이미 주요한 사회문제이다. 기후 이주민들로 인해 장기 거주자가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받거나 받는다고 생각하면 갈등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주민들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도 있다. 반복되는 가뭄으로 인한 농촌 생계수단 악화, 급작스러운 재난에 의한 강제 이동,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영구 거주 불가능 상황 등이 사람들을 이주하게 만든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이주는 이주민들에게 새로운 취약성을 만들어낸다. 현지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노동 시장과 안전한 인프라에 접근할 수 없는 경우, 이주민은 출신지보다 목적지에서 더 취약해질 수 있다.
비용, 환경, 나이도 이주민의 취약성을 높이는 요인들이다. 빈곤층이 기후변화에 취약하고 이주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 이주에는 비용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비공식 경로를 통한 이주가 늘어나고, 더 큰 취약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재해 이후의 재건은 또 다른 이주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재건 과정에서 경제적 기회가 증가하다 보니 귀환 이주를 촉진시키고 외부인의 유입이 증가할 수 있다. 이로 인한 갈등도 있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미래의 기후 재해의 노출되는 인원의 증가를 야기하기도 한다.
나이는 이주 패턴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점진적인 환경 변화나 재해 발생 시 부양가족이 없는 젊은 층은 노년층과 청소년, 어린이들에 비해 이동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동에 제한이 있는 연령층은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적 스트레스 아래에서 생활해야 하고, 이주에 적극적인 연령층은 이주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며 살아야 한다.
성별 역시 이주 패턴에 차이를 만든다. 콜롬비아 사례 연구에 따르면, 가뭄과 같은 재난에서는 남성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 여성들이 집에서 재산을 지키기 위해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만, 홍수처럼 집과 재산이 모두 파괴되는 경우에는 여성들도 도시로 이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사람들의 비자발적인 이주를 만들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회문제를 일으킨다. 이는 이주민과 장기 거주자 모두에게 취약성으로 작용할 것이다.
기후변화는 관측 가능한 건강 분야의 모든 영역에서 부정적 영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건강 분야 취약성은 지역적, 사회적, 제도적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연령별로는 U자 형태의 취약성을 보인다. 15세 이하와 65세 이상 연령층이 극한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기온 상승 시 사망률도 더 높아진다. 성별의 취약성은 생물학적 차이도 있지만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남녀 간 격차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여성은 폭염, 한파, 허리케인 등 많은 극한기후 환경에서 취약하다고 나타난다.
언어와 교육 같은 인문사회적 요소도 건강 영향의 차이를 만든다. 언어 장벽은 극한 현상 발생 시 경보나 응급상황에서의 상황 인지와 대처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낮은 교육 수준은 국가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환경에서 기후변화 노출 후 건강 악화와 관련이 있다.
거주 지역에 따른 차이도 중요하다. 도시는 인구 밀도가 높고 도시열섬 현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온에 노출되어 취약성이 증가한다. 반면 농촌은 상대적으로 인구 밀도는 낮지만 고령층과 농업 종사자가 많고, 냉방 시설이나 의료 서비스가 부족해 동일한 온도에서도 더 큰 피해를 입기 쉽다.
사회적 요인들도 취약성을 좌우한다. 1인 가구는 폭염이나 홍수 같은 재난 상황에서 대처가 어렵고, 한부모 가구 또한 지원 체계의 한계로 취약성이 높다. 주거 형태 역시 중요한 요인이 된다. 주택의 인구 밀도, 건축 자재, 보안 수준은 모두 기후변화 재난에 대한 대응력과 직결된다. 건강보건 서비스와 인프라의 접근성도 중요한 변수이며 재난 상황에서의 회복력과 대응 역량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기존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낮을 경우 더욱 큰 위험에 노출된다. 사회적 연결망 또한 개인과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좌우한다. 사회적 지지와 공동체적 연대가 강한 경우,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속에서도 개인들은 더 잘 보호되고 회복력도 강화된다. 반대로 사회적 고립이나 독거와 같은 상황은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기후변화의 건강 영향을 직접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취약성을 높인다. 정보 접근성과 인식 수준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기후 위협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적응 능력이 높고, 재난 발생 시에도 대응과 회복에서 더 유리하다. 마지막으로 거버넌스는 취약성과 적응 역량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사회적 지표다. 제도적 역량이 충분한 국가는 기후 관련 재난 발생 시 사망률을 낮추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반면, 역량이 부족한 국가는 위기 대응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못한다.
기후변화는 신체적 위험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 직접적으로는 정서적, 문화적으로 소중한 환경의 파괴나 강제 이주에서 오는 영향이 있고, 간접적으로는 신체 건강이나 사회경제적 피해로부터 오는 영향이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피해자들에게 장기적인 정신 피해를 줄 수 있음이 확인된 바가 있다. 트위스터스의 케이트도 신체 건강의 위험보다 정신적 피해를 더 크게 입었다. 그녀가 이재민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도움을 주려 했던 것도, 재난 당시보다 그 이후에 더욱 고통받았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재난의 공포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은 케이트와 토네이도 이재민들이 공유하는 정신적 아픔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취약성은 결국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빈곤층, 1인 가구 등에게 더욱 크게 작용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이 필요하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부터 지원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들이 받치고 있는 사회의 한 부분부터 무너지기 시작해 결국 전체 사회로 취약성이 확산될 것이다.
기후변화 적응 전략이 복지 정책처럼 기후변화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생활을 지원하는 데 맞춰져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트위스터스에서 토네이도 팀을 이끌며 콘텐츠를 만들어 수익을 얻던 타일러는 이를 일찍이 깨달았던 것 같다. 재난 상황에서 누군가는 이익을 취하는 반면 피해자들은 지속적으로 피해를 복구해야 하는 현실에서, 콘텐츠 수익으로 제공하는 식량이 누군가에게는 일시적이지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트위스터스는 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방식으로 피해를 입으며, 결국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영화다. 케이트는 아픔을 겪고 이를 이겨내며 성장하여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에 이른다. 이는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보편적 경험이 될 것이다. 개인의 성장과 회복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장 취약한 이들을 먼저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도전 앞에서 모든 구성원이 함께 회복력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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