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사라진 존재,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 낡은 책 속 오래된 문장, 지나간 목소리가 우리를 살아가게 만듭니다.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 곁에 두어도 아무 소득 없이 보이는 것들, 버려진 것 같은 무용함이 마지막 순간에 우리를 살립니다.
삶에 겨울이 와 모든 것이 메말라버릴 때, 무용해 보이는 것들이 얼어붙은 시간을 녹여내곤 합니다. 레오 리오니의 동화 속 작은 생쥐 프레드릭이 그렇습니다. 다른 들쥐 가족들이 부지런히 곡식과 견과를 모을 때, 햇살과 색깔, 단어를 모읍니다.
프레드릭은 매일 먹을 먹이를 모으지도 않고 겨울을 견디는 준비에 참여하지 않아, 읽는 내내 저도 조마조마합니다. 저래도 될까 싶습니다.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이라는 느낌은 불편함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가장 추운 겨울,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프레드릭이 한 일은 빛을 발휘합니다.
그가 모아둔 햇살과 단어가 들쥐 네 마리에게 따뜻함과 희망을 선물합니다. 그 순간 들쥐들이 받은 선물은 책을 읽는 저에게도 전해집니다. 쓸모없어 보이던 것들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 필사를 하는 일, 그림을 그리고 나뭇잎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일들은 돈을 벌어다 주지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 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이 오히려 제 삶의 따스함이 되어 주었습니다.
돈 되지 않는 일, 굳이 쓸모없는 일을 붙잡고 사는 저에게 프레드릭은 제가 살고 있는 시간의 따스함을 알려주었습니다.
삶이 막막하고 마음이 얼어붙을 때, 저를 지켜준 것은 돈 되지 않는 일들이었습니다. 필사로 만난 문장 한 줄이 위로가 되었고, 오래 머문 한 페이지가 길 잃은 저에게 빛이 되어 주었습니다.
세상이 항상 쓸모와 효율을 묻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쓸모와 효율로만 살 수 없는 존재라 생각합니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과 눈이 닿는 곳-나무의 초록, 바다의 파랑 그리고 마음이 점점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도 프레드릭의 햇살과 색, 이야기에 위로받은 네 마리 들쥐가 말합니다.
"프레드릭, 너는 시인이야!"
그 말에 프레드릭은 얼굴을 붉히며 인사를 한 다음, 수줍게 말합니다.
"나도 알아."
그 순간, 쓸모없어 보였던 일을 함께 하는 이들이 인정해 주는 순간, 들쥐들의 인정이 저를 향한 확신처럼 다가왔습니다. 『프레드릭』은 '쓸모없음 속의 쓸모'를 끝까지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주는 책이었습니다.
오늘도 저는 제 안의 프레드릭이 단어를 모으고 글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하찮아 보일지라도, 언젠가 이 글들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이 되어 겨울을 맞은 이들의 마음을 녹여주기를 바랍니다.
나를 향해 확신의 말을 하는 순간이 오길 응원하며 책을 읽고 단어를 모으고 한 문장 한 문장 조심스럽게 써내려 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