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흐린 날에는 곶자왈숲으로 갑니다

by 제주미진



학교에 제출한 논문을 반려받아 나오는 길, 수정할 것들이 많아 막막하기만 합니다. 거의 다 된 줄 알았는데 다시 수정해야 해서 맥이 탁 풀립니다. 답답증이 일어 몸도 마음도 무거우니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습니다. 차 시동을 살며시 켜고 잠시 숨을 고릅니다.


왕복 6차선 넓은 남조로를 두고 학교 후문을 통해 한라산으로 가깝게 올라갑니다. 1100 도로를 품고 있는 숲 사이로 푸른 나무들이 즐비합니다. 제주의 나무들은 항상 푸른 상록수들이 많아 봄·여름·가을·겨울 모두 초록 숲입니다. 물론 계절마다 모두 다른 초록이지요.


교래곶자왈에 도착하여 신발을 갈아 신습니다. 제주 곶자왈의 ‘곶자왈’은 제주말입니다. 제주어 사전에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헝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이라 정의하고 있지요. 용암이 흐르다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 형태로 널려진 지대에 형성된 숲이어서 요철도 많고 미끄러지기 쉽답니다. 당연히 걷기에 안전한 복장을 해야 하지요. 오랜만에 꺼낸 등산화에는 얼룩덜룩한 곰팡이 무늬가 생겼어요. 눅눅해진 제 마음 같았습니다. 5년 만에 다시 들어선 곶자왈, 마음이 울렁입니다.


곶자왈 입구에서부터 저를 반기는 한라투구꽃이며 온갖 고사리들. 오랜만에 본 식물들과 눈을 마주치며 하나하나 인사를 건네니 매표소까지 들어가는데도 한참입니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변한 모습도 있고, 그대로인 모습도 있네. 모두 좋아 보여~"

매표소를 지나 곶자왈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딥니다. 제주의 곶자왈은 우거진 숲이라 그 깊이가 주는 웅장함이 있습니다. 오랜만이기도 하고 혼자 들어서려 하니 웅장함에 압도되어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천천히 천천히. 고요함 속에 속도를 맞춥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새소리,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뒤엉켜 고요함에 변주를 얹습니다. 이렇게 집중하는 듯싶었는데 웅성거림이 뒤에서부터 따라옵니다. 웅성거림이 커집니다. 고요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초록 숲에 알록달록 빨강 노랑 하양의 사람 꽃이 올라옵니다. 단체 관광객들이 지나갈 수 있게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숲을 느끼러 온 건지 좋은 공기를 마시며 폐 청소를 하고 싶으신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하고 싶으신지…. 수다가 끝없이 이어지기를 5분여, 관광객들이 신기했습니다. 아, 관광객들도 제가 신기했겠지요.


사람 꽃이 모두 지나가고 다시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발밑에 조용히 자리 잡은 버섯들도 들여다보고 돌을 덮은 이끼들도 살짝 만져봅니다. 교래곶자왈 숲이 깊어지면서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주름고사리 골고사리도 눈에 담아봅니다. 새로움이 눈에 담기니 머리에 담겨있던 무거움이 하나둘 사라집니다.


나의 의지대로 한 걸음씩 내딛자 걱정이 가벼워집니다. 발가락에 힘을 주어 숲 속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갑니다. 연두부터 진한 초록을 가득 담아 사진도 찍고 찬찬히 올라가는데 다시 끝없는 수다 소리가 물밀듯이 내려옵니다. 위에서 수다 소리를 퍼붓는 듯! 잠시 비켜서서 한참 동안 기다리는데 내려가시던 분 중 한 분이 제게 "길 없어요. 길 없어서 저희 되돌아가는 길이예요" 합니다.


곁에 선 분이 "에이, 그러지 마. 알아서 하겠지!" 합니다. 살짝 미소를 머금고 마음으로만 생각합니다. ‘네~네~ 알아서 합니다.’ 성인이 되고 나이를 먹는 일이 감사한 것은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음과 알아서 해도 됨을 마주하는 순간들입니다. 주변의 조언이나 주변의 참견 앞에 맥없이 무너졌던 어린 날의 상처도 곶자왈에 두고 오는 순간입니다. 멀어지는 수다 소리를 추진력 삼아 5년 전 걸었던 길을 차근히 오릅니다. 깊은 곶자왈은 함몰지와 돌출지가 불규칙하게 이어지는데 관광객들은 길이 없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골짜기 같은 함몰지를 살며시 넘어 들어갑니다. 홀로 걷는 동안 논문에 대한 걱정과 어린 날의 상처까지 곶자왈에 두고 나옵니다. 마음의 짐을 고요함으로 받아주는 곶자왈에게 조금은 변해 있고 조금은 그대로인 곶자왈이 거기에 있어 다행이라고 다시 오겠노라 인사를 남깁니다.


교래곶자왈에서 나와 등산화를 살살 털고 최대한 느린 동작으로 운동화를 갈아 신습니다. 손 끝에 묻은 풀 냄새와 축축한 공기들이 조금 더 머물라고 느리게 움직여 봅니다. 숲을 걷는 동안 제가 품은 생각들을 가만히 되뇌어 봅니다. 일단, 논문은 수정하면 됩니다. 아주 지루한 작업이겠지만 끝이 나겠지요. 숲까지 간 것은 논문의 무게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나이 50을 향해 가는 제 삶에 관한 고민이 찰랑찰랑 차올랐는데 논문 한 방울이 가득 찬 고민을 넘치게 하였습니다.


지칠 때, 마음이 가라앉을 때, 삶에 불편한 지점이 올라올 때마다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해 숲으로 갔습니다. 산에 오르는 것과 달리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산보다 숲을 선택했습니다. 곶자왈숲길에 크고 작은 돌들이 발밑에서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주었습니다. 가끔은 굴곡진 함몰지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어지럼증도 가슴 통증도 없이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숲길을 걸으며 살면서 배제되었던 나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가만히 집중합니다. 새소리 바람 소리 숲이 움직이는 소리를 느끼면서, 존재 이유에 머물러 나아가지 못했던 제 마음이 살아갈 이유로 나아갑니다. 살아 움직이는 소리가 내 안에 머무는 것이 좋아 숲을 찾았습니다.

걸으면서 느껴지는 제 숨소리에 화음을 넣어주는 휘파람새 소리, 세상의 시름이 섞인 땀을 닦아주는 한결같은 바람들, 숲길을 걸으면 세상이 기준이나 요구를 잠시나마 멈추게 해주는 힘이 느껴집니다.


이주하고 2~3년간은 숲에 갈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일상에 정착해 가며 여러 가지 일을 하니 이제는 자주 찾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가끔 숲이나 나무, 꽃을 알려주는 강좌가 있을 때면 상황이 허락하는 한 참석하여 숲으로 갑니다. 가끔 색다른 식물을 보기 위해 오름을 오를 때면 가장 뒷줄에 쳐져 한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뗍니다. 숨이 가빠오고, 어지럼증이 시작되기 전에 발을 멈추고 발끝을 내려다봅니다. 스스로 땅을 지탱하고 있는 식물들을 보며 나도 스스로 서 있음을 기억하고 다독여봅니다.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야.’


뒤처짐이 강사에게 눈에 띄면 채근을 받습니다. 빨리 오라고. 최선을 다해 빨리 움직이지만, 일행의 선두까지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제 속도대로 제일 끝에 서서 두리번두리번 식물들을 살핍니다. 저와 마주친 나무들이 제게 손을 흔듭니다. 힘내라고.


숲은 저에게 인생의 다양함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열쇠였습니다. 그리고 상처도 아픔도 잊게 해주는 숲이었습니다. 의지할 사람 없던 저의 마음을 받아준 숲이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숲이 저를 위로했고, 저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으며, 어린 날 해보지 못했던 일들도 할 수 있게 저를 확장해 주었습니다.


다시 등산화를 챙겨봅니다. 등산화에 핀 곰팡이는 여전합니다. 얼룩덜룩하지요. 신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숲에서의 시간이 제 마음의 얼룩을 조금은 옅어지게 합니다. 그럼에도 제 마음의 얼룩덜룩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사라지지 않겠지요. 사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살아갈 힘을 얻는 숲, 고요히 제 마음을 달래주는 숲. 마음이 흐린 날엔 곶자왈숲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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