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오고 나서야 제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복잡하게 얽혀있는 수많은 일들. 그 속에서 저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생각이 많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어렵고 벅찬 삶을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예전의 삶과 다른 모습으로 살던 제가 어느 날 글을 써왔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학원강사를 하던 때, 수많은 글을 읽고 분석하고, 아이들의 답안지를 고쳐주었던 그 시절. 저는 제가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문득 몸에 베이게 글을 읽고 썼던 15년의 시간들이 생각났습니다.
논설문을 봐주고, 동시를 읽어주고, 자기소개서를 설계하고 수정 보완해 주었던 시간들이 가득했지요. 그런 글들이 제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습니다.
늘 생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수많은 문장과 감정을 이야기하곤 했지만, 글로 꺼내 옮겨보지는 못했습니다. 두려움이 컸던 것 같습니다.
제주 자연을 공부하고 식물을 가까이하면서 몸으로 익힌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을 찾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중 만나게 된 것은 자연관찰일기였습니다. 자연에서 배운 내용을 글을 적으면서 그림도 그리는 것이지요.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글로는 제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적고, 그림으로는 글이 전하지 못하는 여백을 채우며 이전엔 몰랐던 생명체들의 이름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한 자리에 머무르며 깊이 뿌리내리는 나무, 생명유지를 위해 물을 빨아들이고 성장하는 나무를 닮고 싶었습니다.
제주의 바람과 햇살 속에서 때로는 퍼붓는 빗 속에서 글로 마음을 풀고 그림으로 감정을 남기는 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삶의 중요한 쉼이 되었습니다.
허리를 숙여 작은 꽃을 바라보고 20미터 높은 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글로만 담기 어려운 순간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시작했고,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면서 저의 하루와 저의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만난 제주와 식물들의 글과 그림으로 제주 자연과 식물들이 건네는 작은 쉼표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하루의 바쁘고 분주한 마음에 쉼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나무에게 배운 마음, 꽃이 들려주는 말, 제주가 건네는 위로를 따라 글로 쓰고 그림으로 남긴 저의 시간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