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까지 닮았네
육짓년 소리가 가장 듣기 싫었다던 엄마의 푸념이 생생합니다. 그런 엄마가 저를 향해 ‘제줏년, 독한 년, 너희 사촌 언니들하고 똑같다’는 독설을 날리며 큰아들, 작은아들은 본인을 닮았다 합니다. 제가 아버지를 닮아서 미움을 받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 두피에 앉은 피딱지
유치원 사진 속의 저는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삭발한 모습이었습니다. 다들 모자를 벗고 찍으니 너도 벗고 사진을 찍으라던 선생님의 말을 듣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두피에 진물이 줄줄 흐르는 종기가 많이 났던 저는 대전 한센병원에서 2년간 치료를 받으며 머리를 빡빡 깎고 지냈습니다.
사진을 보던 친정엄마는 “너는 어째 두상도 네 아빠랑 똑같다” 합니다.
#2 발등마저도
"딱!"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습니다. 발톱을 깎고 있는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엄마가 발등을 때립니다.
"발등마저도 지아빠 닮았네."
아버지를 닮은 발등을 한 대 얻어맞고는 김동인의 단편소설 「발가락이 닮았다」가 생각이 났습니다. 다행입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부정한 일은 저지르진 않았나 봅니다.
#3 흙투성이 양복 재킷
대학 오리엔테이션, 밤새 술을 먹고 아침에 일어나 함께 밥을 먹으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선배들에게 “혹시 해장술도 있나요?”라는 제 말을 듣고는 선배 중 한 명이 화장실로 뛰어갑니다. 술을 못 견디는 선배님이었다고 합니다. 밤새 저로 인해 술을 많이 마셨는데 ‘술’ 소리에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너하고는 절대 술을 안 먹어!" 합니다. OT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해장술을 마셨습니다.
점심에 시작된 술은 저녁을 지나 새벽을 향해 달렸습니다. 지금도 그때 못지않게 술 섭취량이 많습니다. 나이가 있어 밤을 새우진 못하지만, 함께 술자리를 한 비슷한 연배의 술벗들보다 타격이 크지 않습니다. 다음 날, 저의 이른 아침 단톡방 인사에 혀를 내두릅니다.
배가 고플 때 시원하게 마시는 급술도 좋습니다. 배고프지 않은 상황에서 먹는 술은 더 안전하고 긴 시간 마실 수 있습니다. 안전하고 길게 술을 마신 날은 안주도 만만치 않게 잘 챙겨 먹습니다. 늘어 나는 뱃살과 턱살 걱정에 맥주와 막걸리는 이제 헤어져야 하나, 사랑하니까 놓아주어야 하나 생각 중입니다.
술을 거나하게 먹고 나면 집으로 출발할 때부터 기억이 없습니다. 다음날 아침 허둥지둥 놀라 일어나 가방, 핸드폰, 안경, 차 키 그리고 나까지 제자리에 있음에 안도의 숨을 몰아쉽니다. 뒤집어 벗은 양말과 널브러진 옷가지 사이에 끼워져 있는 나뭇잎, 나뭇가지들을 봅니다. 식물이 좋아서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하고, 뜯어서 냄새를 맡기도 만져보기도 하는데, 집에 오는 길이 너무 길어 어딘가에 잠시 서서 나무를 바라보다 뜯어왔나 봅니다.
흙투성이 아버지의 양복을 털던 그 아침이 생각이 납니다. 양복에 묻은 나뭇잎, 나뭇가지들을 떼어내며 어디서 구른 걸까? 생각도 해봅니다. 집으로 오던 길이 너무 길어 지쳤을까요? 아니면 아버지도 식물을 좋아했었을까요?
술을 거나 하게 취해도 정년 퇴직하는 날까지 지각 한 번 하지 않고 출근하던 아버지였습니다.
퇴직 후 제주로 귀향하신 아버지를 도우러 귤밭으로 갑니다. 새벽바람이 너무 차가워 막걸리를 한잔 합니다. 일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으니 점심은 갓 구운 삼겹살과 막걸리입니다. 오후 내내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저리도록 일을 합니다. 일을 마치고 해거름이 되어 집에 도착하면 김치찌개와 막걸리로 뒤풀이를 합니다.
아버지랑은 두상도 발등도 거기에 위장도 닮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