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깍두기
이십 대 초반에 법인 사무실을 다닌 적이 있습니다. 화려한 불빛이 가득한 강남사거리의 법인 사무실. 멋진 음식점도 다녀보았습니다. 화려한 강남을 벗어나 강릉으로 법인 워크숍을 간 적이 있습니다. 족구하는데 여직원들이 모두 꽁무니를 뺍니다. 팀은 두 개로 나뉘어졌고, 한 팀에 한 명씩 여직원이 깍두기가 되었습니다. 깍두기가 점수를 내어 우리팀이 이겼습니다.
“미진씨, 사무실에서 볼 때랑 다르네~!”
변호사님들과 같이 뛰며 공을 좀 다룰 줄 아는 직원이었답니다. 때론 변호사님들보다 공을 더 잘 다루기도 하고요.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산에 가시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아들들은 따라나서지 않는다며 항상 저를 데리고 다녔어요. 아버지는 술을 건강하게 드시기 위해 운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교직 생활 중에 체육대회에서 아버지가 빠지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축구며 정구며 모든 종목에 출전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운동신경은 제가 받았나 봅니다. 종아리 모양까지 닮아 반바지나 치마는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5 큰아이 VS 작은아이
"엄마!!! 민정이랑 나랑 같은 옷을 입는데도 느낌이 달라!!!"
"어~ 너는 엄마 닮아서 상하체 1:1, 다리 짧고 굵고~ 할아버지 닮았어"
"아아아악!!!!!"
"엄마닮아서 그런 거라... 이거지?? 이거 어떻해!!!“
”뭐 어떻게 해. 그냥 그런가보다. 엄마 닮았나 보다 해야지.“
"음... 엄마니까 내가 봐준다. 엄마 말고 다른 사람 닮은 거면 싫었을 꺼야-, 하.. 그래도 민정이 부럽다. 다리 긴 것 좀 봐. 어떻게 허리가 저기에 있지...“
돌하르방 닮은 신체 구조. 네모난 얼굴에 상하체 1:1의 비율. 네 그렇습니다. 전형적인 북방계인 듯 합니다.
#6 버스 안에서
제주 이주를 신중히 결정하려고 고민하던 때에 제주에 와 집을 알아보던 때 일입니다. 태흥3리 사무소 앞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고 있는데 어떤 어른이 나를 보며 제주말로 뭐라고 뭐라고 합니다.
"원치네.. 거기.. 셋치비..&*%^#&#%$^.. 똘래미지? @#(%$(ㅆ^)%^)^(# 서울서 왔다고 하던데.. 나 알아 지크냐?"
"죄송합니다.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삼촌, 정말 죄송합니다. 네 맞습니다. 그 집 막내아들의 하나밖에 없는 딸입니다.
삼춘, 저는 삼춘을 모릅니다. 삼춘은 제게서 제 아버지 얼굴을 봤나 봅니다.
#7 사진
그렇게 이상하게 생긴 것 같지는 않은데, 덩어리가 좀 큰 사람일 뿐인데 사진만 찍으면 얼굴이 너부데데하게 나옵니다. 대학원 동기들이 사진을 찍으면 입체에서 평면으로 나온다며 ’렌즈의 왜곡’일 뿐이라며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제주에서 사는 날들이 길어지니 알았습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지 않고, 원판 불변의 법칙은 불변의 법칙입니다. 원래 제 얼굴이 크고 네모난 북방계 얼굴임을요. 제주토박이들을 보면 볼수록 네모난 얼굴의 제주사람 모습이 제 얼굴에도 드러난다는 것을요.
“삼춘!! 그때 저 제대로 알아봐신게마씨~. 저도 삼촌말 알아들었수다^^”
애들 아빠와 손 동작, 입술 삐죽이는 모습, 겅중겅중 걷는 발걸음까지 닮은 딸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엄마는 꼴보기 싫은 남편 닮은, 하나뿐인 딸년이 정말 미웠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