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도 없는 일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수가없다' 제목에 붙여

by 제주미진

일본과 한국을 반반 걸치고 살면서 아빠가 매일 밤 술을 마시며 울어서 슬프다고 이야기하던 초1 서은. 아스퍼거스 증후군인 오빠 만을 먼저 챙기는 부모님께 반항하고 싶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중2 지예.


정체성의 혼란으로 전전긍긍 전학 다니다 결국 그만두고 나와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국어에서 하나만 틀렸다고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던 승현이.


남동생과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가 원망스럽지만, 남동생과 아빠를 지켜야 한다고 했던 초6 은희. ‘선생님이 제 첫사랑이에요. 꼭 연락할게요.’ 하며 이메일을 보내왔던 중1 예나. 대학 가면 누나에게 더 잘하겠다던 남동생, 대학을 가고 싶었던 남동생 후배 청이.


나와 함께 국어공부를 했거나 글을 썼던 아이들이 밤새도록 꿈속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

‘선생님 다시 수업 시작하는 거냐고.’


2~30대에 국어 관련 학원만 15년 근무했다.

초등, 중등, 고등. 읽고 쓰고 말하기 독서 논술 속독까지.


그랬던 내가 강의를 다시 한다. 그 강의 앞에서 나는 밤새 잠을 설쳤다. 신열에 들뜬 사람 같았다.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이 꿈같았다. 종종 SNS로 나의 안부를 물어오는 성인이 된 아이들. 여전히 잘 지낸다며 나를 만나 고맙다고 하는 아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 인사했다.


함께 공부하던 시간 속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고 솔직하게 글을 써서 한글도 더 잘 쓰게 되었고, 사회적 통념도 극복했으며, 대학에 진학하여 유치원 선생이, 태권도 사범이, 로봇 개발자가 된 아이들.


아이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나누고 ‘잘 마무리했네..’ 하는 순간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4시 50분.


'잠을 설쳤네.'라는 생각과 잠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의 글쓰기와 어른의 글쓰기가 다른 지점을 처음 확인하는 날이어서 긴장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었다.


아이들의 삶에 어떤 지표가 될지 모르는 시간 동안 부단히도 섬세하게 글쓰기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내가 알려줘도 본인이 하지 않겠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더 고민되었던 것 같다.


어른들과의 글쓰기만남을 통해 어떤 모양으로 나올 것인지는 나도 신도 모르는 일이다. 오직 자신만이 아는 일이다. '어쩔수가없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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