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처가가 1시간 거리인 줄 알았더니, 산넘고 바다건너 가야 한다. 사기결혼 당했다.”라고 농담을 올린 남편에게 명절마다 시댁에 가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명절에 제주에 가자고 한 적이 없었다. 비용도 만만치 않고 시간도 많이 걸려 힘들게 오가는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 아이들 방학을 이용해서 오가는 일도 남편이 일하는 데 지장이 생기지 않게 아이들만 데리고 내가 오갔다. 나의 부모이니 내가 효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결혼 후 고향으로 내려간 장인 장모 이야기를 ‘사기결혼’이라 가볍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내 정성을 쏟고 싶지 않았다. 명절에 오가지 않아도 교회출석으로 주말마다 1박2일을 꼬박 10년을 다니며 시부모님의 기대를 채워줬으니 각자의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좋겠다 말하였다.
시댁에 가지 않던 첫 추석날 아침. 아이들은 편하게 누워 세상모르는 늦잠을 자고 있었다. 부지런히 장을 봐 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재료들을 잔뜩 사다가 씻고 자르고 꿰었다. 밑간을 하고 밀가루에 살짝 묻혀 달걀물에 담갔다. 동그랑땡, 산적, 깻잎전 그리고 동태전. 친정이 가까이 있을 때는 올케들에게 보낼 음식을 했고, 시댁에서는 시누이가족을 위해 음식을 했는데. 손님 대접용으로 만든 전이 아닌 나와 나의 아이들만을 위해 순수하게 만들어낸 전. 두 아이와 둘러 앉아 노릇한 고소함을 입안 가득 넣었다. 맛있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느낌까지 같이 먹었다. 배 부르게 먹고 아이들과 책도 보고 즐기고 즐기고 또 즐겨도 시간이 남았다. 이런 여유로움이라니. 여유로운 동태전의 첫 맛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나는 ‘동태전’ 덕후의 길에 들어 섰다. 언제나 술안주 1위는 동태전이었고, 전을 맛볼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동태전을 맞보았다. 물렁한 느낌, 퍼석한 느낌, 후추가 많이 들어간, 부추가 올려진 등등 다양한 동태전이 좋았다. 물론 혼자서도 가끔 해먹는다.
제주에 온 후 동태전이 먹고 싶었다. 찾으려 해도 전집이 별로 없었다. 있기는 하지만 육지에 있는 전집에 비해 현저히 적다. 인제사거리 어디쯤을 걷다 만난 전집에 있는 동태전은 기름지다. 녹두전이 주메뉴인 집이라 기름 가득한 녹두전 옆에서 함께 부쳐서 그런듯하다. 화북 지인과 종종가는 전집의 동태전은 빵같다. 튀김옷을 입혀 만드는 스타일이다. 동태살이 느껴지지 않는다. 노형에 있는 국수&전에는 모듬전이 있다. 명절전을 주문받아 판매하는 곳이기도 하다. 몇몇 단품전들이 있지만, 동태전은 단품이 없다. 모듬전을 시켜서 먹으면 나눠먹어야 하기 때문에 몇 점 없는 동태전이 가위로 삭뚝 잘린다. 한 입에 넣기엔 작아져버린 동태전. 눈치를 보며 먹어야한다. 좋아한다고 독식할 수 없지 않은가.
눈치보고 먹던 동태전을 단품으로 하는 곳을 찾아야 한다. 전전긍긍하다가 인터넷에 동태전을 검색해 두어개의 리뷰가 있는 한식집을 찾았다. "참좋다" 이름마저도 너무 좋은 동태전이 검색되는 참좋은 술집을 찾았다. 전화를 해서 장사하는 시간을 확인하고 개장시간에 맞춰 방문했다. 자리잡고 앉아서 잠시 둘러보니 5~6년전 딱 한번 들렸던 곳임이 생각이 났다. 그때는 코다리찜을 찾아서 왔었다. 오늘도 명태관련 음식을 찾아 오게 되니 명태관련 전문점이라 생각하실 테지만, 지도에는 한식으로 등록이 되어 있는 동네 실내술집이다.
주문한 동태전이 나왔다. 내가 알던 비주얼의 동태전이 아니다. 하나의 포로 이루어진 동태전이 아니라 동태살과 야채들이 어우러진 전이였다. 아.. 너무 맛있다. 아삭아삭 씹히는 야채들 사이에 보들 보들한 동태전. 동태살을 손으로 일일이 손질한 듯 가시 하나 없다. 너무 맛있다. 총 8개가 나왔는데, 혼자 다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여러 번의 방문 중에 두 어번은 혼자 한접시 8개를 모두 먹어버리기도 했다. 처음부터 나 혼자 한접시를 먹을 것이니 필요하면 주문 더 하라고 하면서 시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참좋다 동태전과의 첫만남을 가진 후, 다시 방문을 하려고 전화를 하였다. 인터넷 정보에는 개점시간이 따로 없었고, 두 개 있던 블로그 리뷰에 개점시간이 대략 5~6시이기에 미리 전화를 해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전화를 했고 사장님이 밝은 목소리로 그날의 개장시간을 확인하여 주셔서 전화를 끊었는데, 어라? 사장님이 내 목소리를 알아들으셨다는 느낌이 들었다. 딱 한 번 방문하고 두 번째 전화를 한 나를 어찌 아시는 걸까? 세 번 네 번 방문횟수를 거듭해 가던 어느 날엔 사장님이 문 밖에 까지 나와서 인사를 하신다. 찾아줘서 고맙다고... 나를 알아보시고 내가 전화하면 내 전화 목소리도 알아들어 주신다. 방문 횟수가 늘어날 때 마다 뭘 자꾸 주셔서 동태전 외 다른 안주를 시킬 수가 없다. 동태전이 참좋은 ‘참좋다’ 사장님의 전화기에 나는 무슨 이름으로 저장이 되어 있을까?
현재 최고 애정하는 동태전은 ‘제주슈퍼1963’(이하 제슈)이라는 술집의 동태전이다. 처음 시켜 먹었을 때부터 반했다. 촉촉한 동태살이 달큰하게 느껴진다. 적당한 소금간만 있다. 후추를 잘못하면 동태전이 아니라 후추전이 되는데 적당한 소금간이 매력적이다. 제슈에 들를 때마다 동태전 크기가 커진다. 다섯번째쯤 방문했을 때 일이다. 동태전 가운데 올려지는 고추양파간장 종지가 따로 나왔다. 종지자리에 올려진 동태전 두 조각. 서빙하던 당나귀사장님 이야기가 주방에 계신 나타샤사장의 특별한 사랑이라고 한다. 나타샤사장이 내주는 동태전이 나에게만 특별하다고 한다. 다른 테이블 나갈 때와 너무 다르니 절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곤란해 진다고. 술이 얼큰하여 주방 근처에 서성이며 나타샤사장님께 “저 편애받는 건가요?” 물었더니, “네~ 저는 저희에게 좋은 손님들만 좋아합니다.”하시며 눈웃음을 짓는다.
자꾸 생각나는 제슈의 동태전, 동태전을 먹으러 다시 들렸다. 동태전이 나왔다. 동태전 사이에 간장 종지가 올려 나왔다. 두 분이 의견이 분분했을 것이다. 음식의 양을 가지고 그러다가 문제가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 하였나 싶다. 순식간에 지나간 생각과 함께 내 눈에 들어 온 나탸샤 사장님의 편애. 동태전 두 조각이 겹으로 올려져 있다. 뜨끈한 동태전을 얼른 한 입 넣고 오물거려본다. 보들보들하고 달큰하다. 동태향 가득한 촉촉함이 뱃 속으로 넘어가 찬바람 부는 마음의 숭숭한 구멍을 채운다.
여유로운 동태전이, 참좋은 동태전이, 편애 가득한 동태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