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길

by 제주미진


내가 전하는 ‘식물 이야기’에 “금방 까먹는다”라며 웃는 지인들을 보면 나도 웃게 된다.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순간이었지만 내 이야기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식물의 이름을 부르며 나의 존재도 확인하는 순간이 되었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미소 속에서 조금씩 ‘행복’이라는 만족감을 느끼고 채웠다.


내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지인의 눈빛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이야기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식물을 좋아하고 깊이 있게 공부하면서 알게 된 파라텍소노미스트_전문 생물학자가 아니어도,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생명을 이해하는 사람들_을 알게 되었다. 현장에서 생물을 기록하는 사람. 내가 꼭 가고 싶은 길이었다.


숲이나 들에서 만난 식물들이 어느 계절에 꽃을 피우고, 잎을 펼치며, 열매를 맺어가는지 현장에서 식물들을 만나 기록하고 싶었다. 자연과 함께, 자연 속에 있고 싶었다.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식물들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있다. 나무가 하는 말을 듣고 나를 알아갔던 시간의 감사함을 그들의 존재를 기록하며 표현하고 싶었다.


또 자연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느낀 행복의 파장을 누군가의 마음에도 잔잔히 공명 시키고 싶었다.


책상 앞이 아닌 현장에서 마주하고 싶었다. 조용하게 걸으며, 숲과 눈을 맞추고,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모두 알아봐 주고 싶었다. 나의 기록이 훗날 “이 세상에 이런 생명이 있었다.”라는 증거가 되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제주의 식물들을 기록하고, 서식하는지도 파악하며 숲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싶다. 글과 그림으로 숲의 결을 읽어내어 자연을 이해하는 길을 가고 싶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소외된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숲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기를 바랐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만 보이는 작은 풀들을 이름 없는 잡풀로 남겨두지 않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 되었다.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이야기할 때, 어느 순간 그 식물 너머의 나를 들여다 게 되었고, 점점 나를 읽어내고 싶어졌다. 숲의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관찰하며 그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듯, 나를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식물의 이야기를 하면서 식물 이야기와 닮은 나의 이야기를 찾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을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듯이 식물도 한 부분으로 말할 수 없었다. 나의 기억, 지금의 관계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이 식물의 잎과 줄기, 꽃과 열매에 맺혔다.


그 나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이유, 왜 그런 모양의 잎을 틔우고, 어떤 계절에 빛을 받아 열매를 채우는지를 들여다볼 때마다 나도 나에게 묻는다. 이 자리에 서 있는 무엇인지, 지금 피워야 할 꽃과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인지. 식물을 관찰하고 쓰고 그리는 시간이 나를 기록하는 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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