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조만간 보자"는 그 거짓말이 따뜻한 이유
언제부터 친구가 없었는지 이제 기억도 안 납니다.
외롭냐고요? 전혀요.
누군가의 기분을 살피느라
에너지를 다 쓰고 돌아와,
밤새 내 말을 되새김질하며
괴로워하던 시간들로부터 저는 이제 해방되었거든요.
젊을 땐 친구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참 집착도 했어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기분 좋게 밥 사고,
선물도 잘 뿌렸습니다.
그렇게 하면 내 곁에 사람들이
영원히 남는 줄 알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쓴 밥값만 모았어도,
제주에 번듯한 작업장 하나는 진작에 차렸을 겁니다.
제주 흙 속에 처박혀 사느라
화려했던 연락처들이 하나둘 지워질 때,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나중에 부모님 상 났을 때,
내 아이 결혼식 때 와줄 손님이 몇 명이나 될까.
쉰일곱에 이런 숫자나 세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제 모습이 참 지질하더군요.
나만 왕따 된 것 같고,
세상에 내 편 하나 없는 섬에 혼자 있는것 같았어요
그런데 시아버지 보내고,
친정아버지까지 다 보내보니 알겠더라고요.
조문객 숫자가 내 슬픔의 깊이를 증명해주지 않습니다.
눈치 보며 유지하던 껍데기 인맥들 없어도,
삶의 큰 매듭들은 결국 어떻게든 다 지어집니다.
그 수많은 얼굴 중 내 슬픔을 진짜로 들여다봐 주는 이는 몇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서늘하게, 동시에 홀가분하게 다가왔습니다.
이제 저는 백 명의 '아는 사람' 대신,
철마다 한 번 전화해도 어제 본 것 같은 서너 명의 '내 사람들'만 남겼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보고 싶다, 조만간 꼭 보자" 서로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잘 압니다.
당장 달려가고 싶어도 각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오늘도 우리는 '다음에'라는 기약 없는 약속만 남긴다는 걸요.
누구는 그게 빈말이라 할지 모르지만,
저는 그 투박한 진심 한 마디에
다시 며칠을 버틸 힘을 얻습니다.
몸은 못 가도 "나 여기 잘 살아있어"라는 확인,
그리고 "너도 거기서 잘 버티고 있지?"라는
무언의 응원.
자주 못 봐 서운해하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잘 살아내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자존심 때문에 붙들고 있던 쓰레기들을
다 걷어내고 나면, 비로소 진짜 내가 보입니다.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없어서 더 편합니다.
곁에 진심으로 웃어줄 서너 명만 있다면,
우리 인생은 이미 충분히 성공한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