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보낸 편지
늘 바쁠 때보다 한가할 때,
몸이 더 아픈 법이다.
며칠 전부터 으슬으슬 감기 기운이 돌았다.
아침마다 물 한 컵을 데워 마시면서
스스로에게 “괜찮다”를 되뇌지만
몸은 거짓말을 모른다.
조금만 느슨해져도 바로 신호를 보낸다.
농사를 지으며 배운 게 있다면
몸은 늘 솔직하고,
자연은 그보다 더 정직하다는 것.
조금만 방심해도 흙은 금세 말라가고,
햇살을 놓치면 잎이 금세 노랗게 변한다.
그러니 나도 쉼의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나는 마흔여섯에 농사를 시작했다.
그때는 몸이 힘든 줄도 몰랐다.
그저 해가 뜨면 밭으로 나가고,
해가 지면 몸이 알아서 잠들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매일이 전투였고,
매일이 생명이었다.
친구들이 갱년기로 힘들다,
잠을 못 잔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이야기할 때면
나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그 시절 내게 갱년기는
사치스러운 단어였다.
하루의 끝에는 늘 땀 냄새와 흙 냄새가 뒤섞였고,
나는 그 속에서 나를 찾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야
몸이 조금씩 한가해지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안해졌다.
밭일이 줄고, 계절이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이 시기엔
몸보다 마음이 먼저 허전하다.
“이렇게 쉬어도 되나?”
그 생각이 마음속을 맴돌곤 한다.
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내가 쉬면 밭이 멈추고,
밭이 멈추면 계절이 서운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손을 놓지 못했다.
몸이 버거워도 마음이 명령을 내렸다.
“조금만 더 하자.”
그러다 문득,
내 몸이 나보다 먼저 멈추는 걸 느꼈다.
어깨는 무겁고, 눈은 흐릿하고,
손끝은 자꾸 힘이 빠진다.
그제야 알았다.
이건 아픔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편지라는 걸.
“이제는 나도 좀 쉬고 싶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괜히 눈물이 났다.
나는 늘 땅의 시간을 따라 살았다.
봄엔 심고, 여름엔 버티고,
가을엔 거두고, 겨울엔 다시 준비했다.
그 속도에 나를 맞추느라
내 안의 시간은 늘 뒤로 미뤄져 있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 한다.
조금 늦게, 조금 느리게,
그동안 미뤄둔 쉼의 연습을 해보려 한다.
밭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햇살이 머물다 가는 자리를 바라본다.
그동안의 나는
일을 멈추면 세상이 멈출 것처럼 느꼈지만,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오늘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걸 보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아마도 지금의 나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회복되는 중인지 모른다.
쉼이라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배운다.
땅이 쉬어야 열매를 품듯,
사람도 쉬어야 마음을 품는다는 걸.
이제야 비로소
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