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세, 나를 꺼내는 중입니다 》
마흔여섯이 되던 해였다.
나는 여전히 약을 먹고 있었다.
다행히 약을 먹으면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비활동성이 된다는 말을 들었고,
관리하면 괜찮다는 설명도 들었다.
한 번은 약을 끊어본 적이 있다.
혹시 이제 괜찮아진 건 아닐까,
나도 약 없이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치는 다시 올라갔다.
조용히 있던 병이 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이 병을 이기겠다고 버티는 대신
함께 가는 쪽을 선택해야겠다는 걸.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럴 거면 그냥 편안하게 가죠.
평생 약 먹는 걸로요.”
그건 패배가 아니었다.
타협이었다.
내 삶을 병과 줄다리기하지 않기로 한 선택이었다.
약을 먹으며
수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병과 합의하고 나자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처음 활동성으로 바뀌었을 때는
모두가 걱정해 주었다.
검사 받았냐고,
결과는 어떠냐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걱정은 일상이 되었다.
병원에서 피를 뽑고 초음파를 받고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열흘은
늘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괜찮을까.
혹시 또 올라가진 않았을까.
그 열흘은
나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다들 신경 써줬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묻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병을 안고 있었는데
세상은 이미 적응해버린 것 같았다.
괜히 섭섭했다.
어쩌면 나는
병을 통해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보호가 줄어들자
나는 텅 빈 기분이 들었다.
그 무렵 남편은 귀농을 결심했다.
사업의 실패도 있었고,
삶에 대한 회의도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의 나는
남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 길을 먼저 정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늘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 같았다.
몸은 약했고,
마음은 지쳐 있었고,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 쪽에서 말을 꺼냈다.
“딱 3년만, 나한테 시간을 줘.
1년에 50만 원만,
내 손으로 벌어보고 싶어.”
그건 돈이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아픈 사람이라는 이름으로만
설명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쉰일곱이 되어
이 이야기를 꺼내는 나 역시
완전한 기억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중간중간 흐릿해진 장면도 있고,
감정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날도 있다.
그래도 지금 아니면
영영 꺼내지 못할 것 같아서
나는 하나씩,
조심스럽게
나를 꺼내보기로 했다.
이 글은 정리된 과거가 아니라
꺼내는 중인 나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