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이혼 서류를 품고 산 여자의 늦된 봄

by 제주맘스팜


“엄마랑 아빠 사는 거 보면서 나더러 결혼하고 싶냐고 물어보고 싶어?

난 엄마 아빠 보면 결혼할 생각이 뚝 떨어져.”

아들이 툭 던진 말 한마디가 심장 한복판에 꽂혔다


부인할 수 없었다.

그게 우리 부부의 적나라한 성적표였으니까.

아이의 눈에 비친 우리 30년은 전쟁터였거나,

혹은 말 한마디 섞지 않는 적막한 빙하 위였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

나 역시 처음부터 그를 뜨겁게 사랑해서 선택한 결혼은 아니었다.


‘사람’이 좋아서라기보다

시절의 등 떠밀림에 숙제하듯 해치운 선택이었다.

살면서 이혼 서류를 품고

가정법원 문턱을 서성인 게 서너 번.


지긋지긋한 미움에 도장을 찍네 마네 하며

맞붙어 싸우던 날들의

비릿한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남아 있다.


지금 우리는 30분거리를 두고 따로 산다.

신랑은 본가 근처에서 살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

서로 다른 집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온 지

어느덧 11년째다.


한 지붕 아래 엉켜 살 때는

서로의 숨소리조차 소음이었는데

이렇게 거리를 두고 나니 비로소 고요가 찾아왔다.


그런데 30년이 지나 57세가 된 지금,

내 마음의 황무지에 연한 초록빛 싹 하나가 올라온다.


원망이 다 녹았느냐고? 천만에.

대단한 사랑이 다시 시작됐느냐고? 그것도 아니다.


그저,

‘저 인간도 저 나름대로는 이 팍팍한 생을 버텨내느라 저토록 옹이가 박혔겠구나.’

하는 눅눅한 연민 같은 것이다.


나도 내 마음을 장담 못 한다.

내일이라도 저 사람이 예전의 그 진저리 나는 모습을 보이면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뒷걸음질 치며

마음의 문을 걸어 잠글 것이다.


이 싹이 나무가 될지

다시 시들어버릴지 나는 여전히 모른다.

아니,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모르는 채로 흔들리며 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들아,

엄마는 이 늦된 싹이 소중하다.

인생이란 게 참 질겨서,

서른 번의 겨울을 나고도

이렇게 새순이 돋기도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으니까.


완벽한 화해 같은 건 없다.

그저 각자의 섬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의 계절을 존중해 주는 것.

그 흔들리는 평화가 지금의 나에게는 최선이다.


서른 해의 지루한 겨울을 건너온 뒤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나의 서글프고도 당당한 봄이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부부란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무너뜨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지켜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

작가의 이전글여든여덟의 봄, 쉰일곱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