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픽 아나돌, 푸투라 서울 전시 후기
북촌에 개관한 푸투라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푸투라 서울은 개관을 맞이해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의 개인전을 선택했습니다. 레픽 아나돌(1985년, 튀르키예)은 데이터와 기계 지능의 미학을 개척한 선구자이자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미디어 아티스트입니다. 그는 LA 소재의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 디렉터이자 캘리포니아 대학교(UCLA) 디자인 미디어 아트 학과에서 강의도 맡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팀, 레픽 아나돌 스튜디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자연에 특화된 오픈 소스 생성형 AI모델인 [대규모 자연모델]을 기반으로 완성한 작품을 선보입니다. 대규모 자연 모델은 그와 그의 스튜디오 팀원들이 지난 십여 년간 수집해 온 대량의 자연 데이터와 스미소니언 박물관, 런던 자연사 박물관 등의 학문 기관들이 소장하고 있는 데이터와 함께 아마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전 서계 우림에서 수집한 사진과 소리 등의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 모델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레픽 아나돌과 그의 스튜디오가 축적한 자연 이미지와 함께 이를 인공지능이 새롭게 구현한 모습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인간과 기계의 교차점에서 창의성을 모색하는데 주력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무구한 시간의 연결성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자연의 이미지가 혼합되어 뒤섞이는 그의 영상을 보며 수천 년간 이어져온 자연의 축적된 이미지는 과거의 흔적과 함께 현재의 시간을 혼합하여 미래로 확장시킵니다. 축적된 이미지와 시간의 흐름이 인공지능의 손을 거쳐 새로운 차원에서 연결되는 이 과정을 통해 인간과 자연, 기계의 경계는 흐려지고 시간의 연결성은 더욱 선명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시공간은 명상적 공간으로 구성되어 각 섹션에서 작품과의 깊이 있는 교감을 유도하려는 시도가 돋보였습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인 빛과 소리, 자연의 요소를 활용하여 관람객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미술 작품이 단순히 시각적인 대상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정서적 경험을 이끌어내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선에 대한 안내가 없고 공간이 협소하고 관람객이 많았다는 점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명상적 분위기 속에서 예술을 감상하려면 어느 정도의 여유와 고요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좁은 공간은 실제 명상의 깊이를 경험하기에 방해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작품에 집중하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자 했지만 이내 주변의 소음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그 순간을 방해했습니다. 또한 이번 전시를 안내하는 팩트 시트(Fact Sheet)와 프레스 킷(press kit)의 부재와 인공지능이 실제 자연 향기를 재현해 낸 향기가 있다고 소개했지만 향이 강하지 않아 느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간의 동선을 재구성하고 관람 인원을 제한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관람객 간의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공간도 확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배려는 관람객이 예술과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나아가 더 깊이 있는 미적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명상적 공간을 통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다면 관람객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예술과의 깊은 대화를 나누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Futura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