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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로를 가다

그날 밤 우연히 마주친 비자림로

by 제주앓이

그날 밤 나는 성산으로 향했다. 예상보다 공항 도착 시간이 늦어져 아무 생각 없이 내비게이션이 이끄는 대로 번영로를 달렸다. 길 위의 자동차들은 과속단속카메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리 바쁜지 마치 고속도로를 질주하듯 쌩쌩 달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상태가 좋지 않은 경차를 빌렸던 나는 힘에 부치는 엔진 소리를 들으며 연신 뒤차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다. 슬슬 짜증이 나려 할 때쯤 다행히 내비게이션은 번영로에서 빠져나가 작은 길로 나를 인도했다.


낮이었다면 금세 알아보았을 그 길을 나는 저 멀리 공사 중 입간판을 확인하고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그 길은 바로 요즘 큰 이슈가 되었던 비자로였다. 잠시 중단되었다는 벌목 작업이라고는 했지만 이미 길을 확장하기에 충분한 공간의 나무가 베어져 있었다. 조금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정차할 곳도 마땅치 않고 어둠이 내리 깔린 시간이라 더 자세히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실 그동안 제주시에서 성산으로 이동할 때는 늘 해안도로를 이용했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는 했지만 예쁜 바다를 보며 여행자의 기분을 느끼기에는 그 편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보니 제주시에서 성산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인 번영로와 비자로는 사실 밤에 다니기에 상당히 위험한 구간이었다. 번영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은 물론이거니와 왕복 이차선에 불과한 비자로에서도 차량들은 시속 80km의 속도를 유지했고 심지어 더 빨리 가고 싶어 안달이 난 나머지 길에 들어선 순간부터 거침없이 쌍라이트를 켜가며 비키라 위헙하던 운전자도 있었다. 마땅히 비켜줄 곳도 없고 하여 나는 앞 차와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이동했지만 성산 읍내에 가까워져 도로가 다시 왕복 4차선으로 바뀌자 그 운전자는 위협적으로 나를 추월해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성산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고역이었다.


하지만 도로가 확장된다고 해서 그런 안전의 문제는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과속과 운전습관에 대한 규제 없이 단순히 도로를 넓히는 것은 비자로 또한 제2의 번영로를 만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넓은 도로에서 사람들은 또다시 과속과 난폭운전을 자행할 것이다. 차라리 도로를 확장하는 비용으로 과속단속카메라를 더 설치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얼마 전 다녀온 일본의 오키나와. 렌터카를 이용하지 않으면 여행에 많은 불편함이 있는 곳이었지만 과속에 대한 엄격한 규제 덕분에 섬 어디를 가든 항상 조심하며 안전운전을 했던 기억이 있다. 렌터카 천국 제주에서 진정 도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방법은 도로 확장이 아닌 제주에서 안전운전의 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근본적인 규제방법을 만들어 실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미래지향적이라 생각되었지만 이미 베어져 버린 나무는 다시 심을 수 없는 노릇일 테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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