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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n 01. 2023

이쁜 비가 내리는 날, 우영팟표 비빔밥 한 그릇

오늘은 유심재에 이쁜 비가 내린다.

나란히 나란히 비가 내린다.

흔들림이 하나도 없다.

동영상을 찍으니 빗줄기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가느다란 하얀 명주실이다.

전혀 바람이 없다.



오늘은 유심재에서 하루 종일 농활을 하기로 했다. 최근 연이어 내린 비로 유심재의  불청객인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따뜻한 기후의 영향인지 제주에서 잡초는 시도 때도 없이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는다. 봄비가 한 번쯤 내려주면 잡초들은 몇 년간 못 봤던 손주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커버린 것 같이 자란다. 봄비가 내릴 때쯤 제초제를 하거나 잡초를 뽑는 일은 주요 일과가 된다.   


농협자재센터에서 필요한 물품을 샀다. 자재센터는 집 근처라 유심재로 가는 길에 편하게 들릴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필요한 물품들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가격도 저렴한 것 같지도 않다. 항상 이럴 때면 생각나는 명제다.  "농협의 주인은 누구인가? 농협은 무엇으로 사는가? "


유심재에서 배고픔은 대부분 부추가 뜸북 들어간 라면 특식으로 해결한다. 가끔씩은 요즘 SNS 바람을 타고 유명해진 동네 짜장면집에서 음식을 가져다 먹기도 한다. 이 중국집에서는 어느 날부터인가 배달을 안 해준다. 그래서 주문을 하고 가지러 다녀와야 한다. 열심히 일을 하다가 흙 은 손으로 먹을 것을 준비해야 하는 귀차니즘으로 건너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오늘은 갑자기 우영팟의 여러가지 채소를 썰어놓은 비빔밥이 생각났다.

" 오늘은 우영팟에 채소를 썰어놓고 간단하게 비빔밥이나 먹어볼까? " 먼저 인심 쓰듯 가볍게 제안을 했다.

" 비빔밥이 간단하다고요? 남자들은 비빔밥이나 국수를 간단히 먹자고 얘기하지만 들어가는 게 꽤 많습니다. 손이 많이 가요.." 헉 그런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다. 그 모두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다. 괜히 인심을 쓰는 척하다가 한방을 맞았다.


유심재 가는 길 겸사겸사 마트에 들렀다.

내가 비빔밥을 먹자고 얘기를 했는데 뒤받아 쳐놓고는 아내는 미안한 모양이다. 마트 부식코너로 직행을 했다. 비빔밥용 채소를 모아서 파는 게 있었다.

"아, 이런 것도 파는구나.." 콩나물, 고사리, 시금치(?), 도라지 4가지 채소가 들어있는 건강 비빔밥용 채소 세트가 눈에 들어온다. 1팩에 8,500원으로 1인분인 듯하다.

고추장도 있어야 한다. 양념고추장, 비빔밥 고추장, 메뉴에 따라 즉석 고추장들이 쭉 늘어서 있다. 이 놈도 하나 픽업하고 구입을 했다.

참 세상은 갈수록 좋아진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몇 가지 부식거리를 사고 나오니 비가 쏟아진다.



비는 갈수록 거세진다. 봄장마의 긴 꼬리인가? 요즘은 비가 너무 자주 온다.

" 가서 비빔밥 만들어 먹고 푹 쉬다 와야 할 것 같은데.. " 아내와 얘기를 하며 빗속을 달렸다.

유심재 잔디밭은 이미 물을 품고 있었다. 우영팟에 있는 작물들도 흠뻑 비세례를 받았다. 우산을 쓰고 우영팟을 훅 둘러봤다. 바람이 없으니 모두가 이쁘다. 가시오이 덩굴을 둘러봤다. 엊그제 왔을 때 제법 자란 가시오이가 보였기 때문이다. 비빔밥의 쏘시계로 쓸 생각이었다.

" 비빔밥에 가시오이를 썰어 놓아도 되는가? 비빔국수에는 항상 들어가던데... "

" 그래도 되지 않을까? 근데 그렇게 큰 오이가 있어요?"

" 응 딱 먹을만한 크기 가시오이가 하나 있어, 부드러울 것 같아 "

" 그런데 오늘 우영팟 일하기는 다 틀렸다. 비빔밥이나 해 먹고 비가 오는 유심재나 감상하자 "


우산을 들고 가시오이, 상추도 종류별로, 아삭이.. 등등 밭에 널려있는 채소들을 내 맘대로 각각 10개 잎씩만 땄다. " 이런 채소가 들어간 비빔밥의 맛을 어떨까" 사뭇 궁금해지기도 한다.


부엌에서 가장 큰 양푼이를 찾아냈다. 자주 사용하는 주방이 아니라 숨바꼭질이다.

양푼이에다가 " 밥, 채소, 계란 프라이, 고추장, 우영팟에서 내가 키운 건강채소 1 도마"

를 차례대로 담아 넣었다. 그리고 화룡점정 참기름 한수푼, 이젠 비비기만 하면 된다. 비빕재료가 많다 보니 쉽지가 않다. 양푼 한 그릇 가득이다. 오늘도 맛있는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쁘게 잘 저었다.   


우영팟이 보이는 창가에서 빗소리를 반주삼아 비빔밥으로 이른 점심 한 그릇을 했다.

" 아차 사진을 못 찍었네 " 진실의 건강 비빔밥 사진을 못 남겼다.


폭우가 쏟아진다. " 후드득후드득 " 옆집 지붕을 요란하게 때린다.

" 오늘 집에 가기는 다 틀렸는데.."


비가 오는 유심재를 동영상에 담았다. 혼자보기에는 너무 아깝다.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내 마음을 담아서 멀리 보냈다.

오늘따라 유심재의 우영팟은 울긋불긋 총천연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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