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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y 31. 2023

5월의 마지막날 유심재 우영팟..

유심재의 5월은 봄향기로 가득하다.

마을에 들어서는 길 웬 맹꽁이(?) 소리가 진동을 한다.

"무슨 일이지? 어제 내린 비로 맹꽁이들이 몰려왔나? "


유심재가 있는 곳이 농촌 마을의 한가운데다. 주위에 농가들도 있고, 빌라도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농촌 마을의 풍경이다. 그런데 내가 이곳을 30년 넘게 드나들면서도 오늘같이 맹꽁이 소리가 들리는 건 처음이다.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어제 하루종일 내린 봄비의 영향인지 정원과 우영팟의 푸르름은 절정이다.

정원 사랑초에서는 하얀 나비들의 연애질이 한창이다. 방안 창가에서 밖을 보고 있자니 봄 향기가 가득하다.

봄날 유심재를 찾는 것은 일종의 숙제다. 평소에는 1주일에 두어 번 유심재를 찾으면 된다. 그러나 봄날이면 2일에 한번, 1주일에 3-4번은 유심재를 찾아야 한다. 우영팟에 심어 놓은 작물관리를 하기 위해서다.


5월쯤이면 작물들은 한창 성장을 하는 시기다.

고추나 가지, 토마토는 자고 나면 쑥쑥 자라는 시기라 때에 맞추어서 지주대를 세우고 결박을 해주어야 한다.

제주는 바람이 많은데 유심재 우영팟은 바람을 품고 있는 형태라  바람이 부는 날, 작물들이 의지 할 곳이 없으면 금새 바람에 가지를 맡겨버린다. 며칠 간세(제주어: 게으름)를 하고 늦은 방문을 할 때면 자연은 어김없이 간세의 대가를 나에게 준다. 가지나 줄기들이 꺾이고 찢어지던지 터널에 막혀서 자라지를 못한다. 그래서 봄날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유심재를 찾아야 한다. 더욱이 요즘 같이 비가 잦은 날은 하루도 게을리할 수가 없다.


우영팟 최대의 강자는 덩굴식물인 가시오이와 애호박이다. 덩굴로 온 우영팟을 휘젓고 다니는 통에 우영팟은 금세 이들의 잎으로 뒤덮인다. 덩굴작물은 자라면서 줄기가 차지하는 면적이 워낙 넘기 때문에 우영팟에서 재배하기에는 적당하지가 않다고 한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기 때문에 거의 매일 관리를 하고 애호박이나 기시오이를 따주어야 한다. 매일 손이 가는 작물이다. 매년 모종을 심을 때면 어디에다 심는 게 좋을까 하고 고민을 하게 하는 작물이다.    


" 항상 우리가 볼 수 있는 집에 있어야 올 때마다 관리를 해주고 따서 갈 수 있지 않을까? , 매일 밭에 가기에는 어려울 듯한데.." 아내의 생각이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작물을 재배하고 관리는 내가 한다. 밭에서 재배를 하면 쉬운 말로 그냥 방치를 해서 내버리면 된다. 그러나 우영팟에 재배를 하면 지주대를 세우고 유인을 하고 이것저것 할게 많아진다.   


요새 퇴직한 남자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있다. "집에서 아내말을 잘 들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떡은 말고 일단 밥이라도 먹어야 하기에 나도 아내의 제언대로 우영팟에 가시오이와 애호박을 각 6주씩 심었다. 참 무정하게도 잘 자란다. 멀칭에 터널까지 해서 성장환경을 만들어 준 때문인지 줄기가 엄청 자랐다. 때 이른 들도 피우더니만 이제는 열매도 여럿 눈에 띄게 달렸다.


" 며칠만 있으면 가시오이나 애호박 맛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혼자 공사다망한 아내를 두고 혼자 유심재로 향하면서 아내에게 말을 했다.

" 벌써, 그렇게 됐어요? "


우영팟 가시오이는 자라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기 가장 좋은 작물이다. 지주대와 유인줄을 따라서 덩굴들이 죽죽 올라가는 가시오이를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이제 보목리에 가서 자리돔만 사 오면 한여름 낮 시원한 자리물회를 먹을 수 있다. 여름날 제피와 가시오이가 듬뿍 들어간 자리물회 한 그릇은 더위를 잊게 해주는  맛이다.  


우영팟옆 장독대를 뚫고 영역을 넓혀가는 작물은 애호박이다. 좀 늦게 터널을 제거했는데 그사이 엄청나게 웃자람을 했다. 줄기와 잎들이 무성하다. 허리를 숙이고 호박잎들을 제키자 제법 모양을 갖춘 애호박들이 자라고 있다. 두어 번 비가 내려준다면 올해 호박전을 시식할 수도 있을 듯하다. 애호박은 처음 재배할 때 충분히 자랄 때를 기다리면서 따지를 않았다. 너무 어린 때 수확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저거 금세 커버리는데.. 그때는 애호박이 아니라서 못 먹어요.." 애호박을 볼 때마다 아내는 따기를 권유한다.

" 아니 너무 어리잖아. 다음에 와서 따자" 나의 주장이다.


그런 날은 꼭 다음 방문이 미뤄진다. 뒤늦게 방문 한날, 애호박은 여지없이 성숙한 호박이 되어있는다.


" 봐봐, 저게 어떻게 애호박이야?  씨가 생겨버려서 못 먹지.."   

" 그래, 알았어. 다음에는 일찍 따자. "   

우리 집 애호박의 주요 용도는 애호박 전과 된장찌개다. 특히 첫째가 애호박 전을 아주 좋아한다. 여름철 휴가가 기다려지는 대목이다.


방울토마토와 가지의 성장은 매우 느리다. 가지는 이제야 터널을 뚫고 나온다. 올해 모종 심기는 다른 해보다 좀 일찍 했다. 여유도 있었고 미리 우영팟을 정리도 했기에 가능하면 제때 심어보자는 의욕으로 다른 해보다 빠른 작물은 거의 한 달을 앞당겼다.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어린 모종을 노지에 심으니 자라는 게 더딘 것 같은 생각이다.


" 이래서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거구나 " 새삼 때와 시기의 중요함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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