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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n 12. 2023

엄마 반찬, 엄마 손맛 배송작전

" 밑반찬 만들어서 보내줄까? "

" 아니요, 집에서 직접 밥을 해서 먹질 안하니까 반찬이 필요 없어요, 애쓰게 만들어서 보내준 거 안 먹어서 버리게 되는데 괜히 맘한테 미안하잖아요.."

서울에 살고 있는 딸들과 엄마의 대화였다.


딸들은 서울에서 대학생 때부터 자취 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둘 다 대학생이고 자취초보라 아내는 애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이 컸다. 김치하고 몇 가지 기본 반찬을 해서 보내주었다. 집에서 햇반이라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요기를 할 수 있는 기본 반찬이었다.


근데 일이 벌어졌다.

딸의 자취생활이 걱정이 돼서 서울에 올라갔던 아내가 내려오더니 투덜 투덜이다. 잔뜩 화가 난 터다.  


" 이젠 반찬 만들어서 보내지 말아야 할 것 같애.."

" 애쓰게 만들어서 택배비 주면서 보냈는데 집에서 밥을 안 먹으니까 보낸 반찬들이 모두 냉장고 속에서 썩고 있어요. 내내 치우다 왔습니다.."

본인이 만들어서 보낸 음식이 썩었다는 것, 도대체 뭐를 어떻게 먹고 다니는지에 대한 걱정으로 영 심기가 불편한 것 같았다.   


원래 엄마밥, 집밥에 입맛이 길들여진 아이들이다. 엄마 음식이 최고라고 늘 엄지를 치켜세우던 아이들이다. 하도 엄마밥 타령을 하길래 반찬이라도 있으면 되리라 생각하고 고민 고민을 하다가 직접 만들어서 보낸 터다.


이젠 둘 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자신들이 살고 싶다는 동네에 집을 구해서 자취를 하고 있다. 바쁜 직장생활에 다 출퇴근 거리까지 있는 편이어서 식사는 거의 밖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휴일 가끔씩 집에 있을 때나 배달음식을 시켜서 먹는다. 집에 주방은 사용할 일이 없다.


" 요새는 집에서 음식을 하면서 생기는 냄새가 집에 베이는 것을 싫어해요 "


나는 어릴 적 서울에서 잠시 생활을 했던 때가 있었다. 숙소 주위에 식당을 정해서 하루 3끼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식당밥이라 맛있고 먹을 만했는데 같은 식당에서 한 달을 먹으니 질렸다. 음식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기본 반찬이나 간, 조미료들이 같으니 음식의 기본맛이 늘 같은 거다. 그래서 나중에는 식당을 옮기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요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음식점들은 대부분 체인이다. 체인의 음식은 만드는 과정이 표준화, 매뉴얼화되어 있다. 늘 같아야 한다. 즉 언제 어디서 먹더라도 같은 맛이라는 얘기다. 맛의 전국통일, 먹는 사람들의 입맛이 전국 통일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뜩 든다.



" 집에서 먹을 밑반찬을 만들어서 보내줄까 "

" 응. 보내주면 좋치이.. 엄마가 힘들어서 그렇지"

" 그래 알았다. 많이 기대는 하지 마.. 장조림이랑 몇 가지 해서 보낼 줄게 "

얼마 전 내려왔던 큰애하고 아내가 주고받은 말이다.

예상외의 답변에 우리 부부는 서로 얼굴을 보며 놀랐다.


그 말이 오고 간지 꽤나 흘렀다.

아내는 보내준다고 답은 해놓고 실천이 안 돼서 매일매일 밀린 숙제가 되었다.

뭐를 해서 보낼지, 어떻게 해서 보낼지.. 한몇 주를 고민한 것 같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무엇을 보낼지가 아니라 어떻게 보낼지 방법이 문제였다.

식료품이라 제주에서 서울로 신선도를 유지한 채 당일날 받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냉동을 해서 아이스박스 포장으로 보낸다 해도 여름철이라 변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예전에는 우체국에서 당일특송이 있어서 아침에 보내면 저녁에 받을 수 있었다. 아주 좋은 서비스였다. 그러나 코로나를 겪으면서 슬며시 없어져 버렸다. 쿠팡도 아니니 당일배송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고민 고민이다. 이번은 일단 만들어 놓고 보낼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요새는 편의점에서나 마트의 간편 포장음식이 워낙 다양하게 잘 나오기 때문에 굳이 집에서 반찬을 만들어서 보낼 필요가 없다. 돈만 가지고 가면 없는 게 없다.  

그러나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반찬이 그립다 하니 어쩌겠는가. 일단 애들이 집에 왔을 때 식탁 위에서 젓가락이 몇 번 오갔던 반찬을 기억해 내기로 했다. 그리고 당장 안 먹더라도 변하지 않을 것, 소포장이 가능할 것, 적은 분량으로 가능한 한 여러 번 먹을 수 있는 것, 택배를 보내는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 선정기준이다. 일단 3~4가지를 보내기로 하고 메뉴를 정했다.


유심재 다녀오는 길, 하나로 마트에 들렀다. 필요한 재료들을 샀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는 고기를 손질하고 양념을 하고 이것저것 바쁘다. 뭔가를 투닥투닥거리면서 지지고 볶으고 난리다.


" 여보 와서 간이 맞나 맛보세요 " 호출이다.

오랜만에 애들한테 엄마의 실력을 뽐내는 거라 다소 설레고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지금 보낼 것도 아닌데 다 만들어 놓으면 어떨 거냐는 질문에 어차피 며칠 냉동을 시켜야 하니 괜찮다고 한다.  뭐 세프의 결정인데 어쩌랴..


" 여보, 와서 이것 좀 도와줘 "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메인 반찬 하나를 만든다고 하던데, 어느새 다 만들었는지 포장을 도와달라고 부른다.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분량만큼 나누어서 크린백에 소포장을 했다. 그리고 배송하는데 이상이 없도록, 먹을 때도 한 팩씩 꺼내서 먹을 수 있도록 개별 냉동을 시키려는 모양이다. 이럴 때 조수역할은 잘해야 한다.


이젠 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빨리 가는 택배도 좋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제때 수령할 수 있느냐가 더욱 큰 문제였다. 아이들이 출근한 시간에 도착한 택배가 장시간 아파트 입구에 방치되면 변질과 부패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찬을 받기 위해서 휴가를 받을 수도 없다.


" 토요일 배달되는 택배가 있으면 좋겠는데 "

" 맞아. 우리가 금요일 붙이면 애들이 집에 있을 토요일에 받을 수 있으면 딱인데.."

우리 부부는 일을 끝내고 저녁 식탁에서 고민거리를 공유했다. 담주에는 보내야 하는데..


" 제주 택배 서울 토요일 배달 " 

인터넷 검색창에 생각나는 키워드를 몇 개 입력했다. 결과 몇 개를 스크롤하면서 체크를 했다.


" 우체국택배는 토요일에도 배달한다는데, 단 배달하는 우체국의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 있으니 문의하고 하래 "

역시 인터넷은 세상을 사는 방법까지도 가르쳐준다.

그런데 오늘이 토요일 오후다. 전화로 문의할 수가 없다.

" 일단 방법은 알았으니 월요일 문의해 보고 결정하자. 그런데 받는 데가 강남인데 토요일 배달 당근 하겠지? " 

우리 부부는 한 가지 큰 고민거리를 해결했다.



" 택배는 토요일에도 배달한다고 하네요 " 

월요일 출근한 딸이 우체국에 문의한 결과를 알려왔다. 해결책이 나왔다. 그럼 금요일 보내면 토요일 받을 수 있어서 아주 굿이다. 이번주 금요일에 보내야 하니 반찬은 만들어 놓고 2주일 만에 보내는 거다. 냉동은 아주 잘 돼있는 듯하다.




" 뭐를 보내지?" 아내가 오랜만에 애들한테 보내는 선물보따리라 고민이 많다.

" 아이스박스에 들어갈 공간이 있으면 이것저것 다 채워서 보내줘, 깜짝 선물도..."

예전에 보낼 때는 박스 공간이 빈다고 과자까지 넣어서 보낸 엄마다.   

" 요번에 경품으로 받은 라면 포트하고 계란 프라이하는 팬도 보내주고.."


익일택배는 전날 오전까지 접수를 해야 한다.  

아이스박스와 보낼 물품을 모두 식탁에 올려놓고 아내는 한참 고민 중이다.

" 이걸 어떻게 담아야 모두 들어가지? ' 한참 설계 중이다. 가로 세로로 이리저리 넣었다가 뺏다를 반복한다.

" 오우 완성. 다 들어갔다. " 잠시 후 아내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맘에 들게 포장이 된 모양이다. 빠지는 거 없이 모두 아이스박스에 넣었다고 한다. 깜짝 선물로 어제 유심재에서 마수걸이로 따온 가시오이와 애호박도 하나씩 넣었다. 애호박 전은 큰애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공무원들에게서 확답을 듣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우체국 창구에서 접수를 하면서 말을 건넸다.


" 이거 익일 택배니까 내일 들어가죠?"

" 글쎄요, 토요일에도 배달은 하는데 우리가 장담은 못합니다" 공무원의 전형적인 딥변이다.

" 배달하는 우체국에 문의했더니 가능하다고 하던대요..?"

" 그럼 하겠죠 "

" 이거 반찬이라 내일 안 들어가면 안 됩니다. 확실하게 배달되게 해 주세요"

" 그럼, 박스에다 내일 배달 꼭 해달라고 메모해 놓을까요 "

아내의 몇 번씩 강조하는 내일 배달약속요구에 창구 직원이 못 이기는 듯 묘안을 꺼낸다.

빨간 매직으로 몇 자 적는다.

 


토요일 아침이다. 오늘 배달이 제대로 될런지가 걱정이다.

송장조회를 했더니 애들이 사는 동네 우체국에 물건이 도착했고 배달준비 중이라고 떴다. 아침 8시 1분이다.

제대로 들어갈 듯싶다. 좋은 세상이다.


" 택배를 배송했다고, 완료했다고 문자가 왔는데..."  아내가 택배 배송완료문자를 받았다. 그러나 잠시 기다려도 애들의 신호가 없다.

" 아직도 자는 모양인데 전화를 해보지, 식료품이라서..."

몇 번 울려서 받은 큰애의 목소리는 잠결이었다.

" 택배 도착했다고 문자 왔는데, 현관에 보렴 "


전화를 끊고는 한참이어도 아무 연락도 없다. 기쁨의 신호, 깜놀의 환성이 와야 하는데 깜깜이다.

" 얘들이 받아 놓고는 또 자나 " 

' 기다려 보자, 택배 물건 정리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좀 기다리면 연락이 오겠지.."

부모에게서 자식은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  



"사랑해" 한참 후 가족 단톡 알림음이 울렸다.

웬걸, 기숙사에 있어야 할 막내가 사진을 올렸다.  

엄마가 보낸 식재료와 반찬을 가지고 어느새 아침 준비한 모양이다. 엄마를 놀려주려고...


막내는 엄마의 반찬이 간다고 하니까

어젯밤에 아무 연락도 없이 누나네 집으로 갔던 모양이다. 엄마의 반찬을 삼 남매가 같이 받겠노라고..

그래서 엄마의 사랑을 삼 남매가 같이 노나 먹는다고 한다.


이번 작전은 대성공이다. 엄마 반찬, 엄마 손맛 배송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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