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우는 1인분 값이 아까울 정도인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0.5인분을 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뷔페를 좋아하지 않는다. 채 1인분씩도 못 먹고 올 걸 알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서울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기숙사에 있다가, 2학년 때부터 집을 빌어서 자취를 했다.
엄마는 항상 둘째가 먹는 것을 걱정했다.
" 어디 가서 많이 먹지도 않을 거고.. 주는 양도 제대로 먹지를 못할 건데.."
혼자 살면서는 누구의 눈치를 안 보고 차라리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을, 먹을 만큼만 해 먹을 수 있어서 편할 수도 있겠다 생각을 했다. 어쩌면 먹는 부분만큼은 좀 편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스스로의 위안을 해보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가끔씩은 도시락을 싸고 다닌다. 몇 년 전인데 갑자기 도시락을 싸고 다니겠다고, 도시락을 구입했다고 메시지가 올라왔다. 엄마한테 반찬은 어떤 게 좋겠냐고 들어보기도 했다.
점심시간 동료들하고 외부에서 식사를 하는 게 편치는 않은 모양이다. 메뉴도 그렇고, 식사량도 그렇다. 더불어 둘째는 식사를 아주 천천히 하는 편이다. 가족끼리는 양해가 되는데 바쁜 직장 동료들 좀 그런 모양이다.
점심시간 간단히 사무실에서 요기나 할 요량으로 과일과 김밥류를 싸고 다니기 시작했다. 대단한 정성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면하고 화장하고, 아침을 먹고, 도시락까지 준비하는 일 보통일이 아니다. 항상 엄마가 감탄을 하는 부분이다.
" 아침시간에 잠도 많은 아이가 도시락까지 어떻게 싸는지 걱정이 된다고.."
매년 그러면서 1~2달 하다가는 중단을 하는 것을 반복한다. 사실 매일 도시락 반찬을 챙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 스트레스다. 그 어려움을 알기에 그냥 두고 볼 뿐이다.
도시락은 학창 시절의 추억이다. 특히 남자학교의 도시락은 친구들 사이에서 전쟁과 평화의 시작이고 끝이기도 하다.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도시락을 저녁밥까지 2개를 싸고 다닌 적도 있었다. 물론 학교에서 입시공부를 야간학습까지 하던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그때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을 챙기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알기에 아내는 둘째가 매일 그 일을 반복한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오던 터다.
2003년부터 모든 학교에 전면급식이 제공되면서 이제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일은 없다.
그동안 잠잠하더니 올해도 도시락 집밥이 그리운 모양이다. 어느 날 갑자기 도시락 사진이 올라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을 챙긴다고 잠깐 집에 왔던 큰애가 귀띔을 해준다.
" 도시락 반찬 뭐 만들어서 보내줄까 "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던 모양, 아내가 물어봤다.
" 해주면 좋기는 한데... " 끝을 흐린다. 미안한 게다
예전에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면서도 엄마한테 반찬 부탁은 한 기억이 없다.
부랴 부랴 고심 끝에 "엄마 반찬, 엄마 손맛 배송작전"으로 아내는 필요한 몇 가지 찬을 해서 보냈다.
이제는 아침에 도시락을 챙기고 출근 준비를 하는 게 부담스러운 듯 전날 미리 도시락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일요일 밤 내일의 도시락이라고 사진을 올렸다.
" 아이고, 자이는 별것도 아닌데 무사 챙피하게 사진찍엉 올렴시냐 " 투박을 한다.
그래도 난 둘째가 엄마의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라도 반겨주고 표시해 주는 게 고맙기만 하다.
택배를 보내면서 내가 직접 재배한 애호박 하나를 보냈다. 애호박 전은 큰애가 워낙 좋아하는 음식이다. 명절 때 집에 오면 애호박 전을 부치면서 먹던 게 생각이 나서 보냈다. 보내면서도 설마 전을 부쳐서 먹진 않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어떻게 먹으라고 얘기도 못하고 "처음 수확한 거라 구경하라고 보내는 거다"라고만 궁색한 변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