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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l 30. 2023

대화가 있어야 가족이다

" 빨리 저녁 먹고 나가야 해, 후배하고 약속이 있어서.."

유심재에서 돌아오는 길,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 네, 알았어요.." 아내의 대답이 매가리가 없다. 분위기도 이상하다. 순간 웬일일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여유가 없는 터라 내 일을 챙기기에 바빴다.


" 막걸리도 사 왔는데.." 조금 있다가 아내가 중얼중얼 말끝을 흐린다.  

" 더운데 아빠가 제초제도 하고 했으니까 막걸리나 한잔 하려고 사 왔는데 " 

아내가 얼마 전에 내려온 셋째와 마주 보면서 내가 들으라는 듯이 얘기를 한다.

이게 웬 시추에이션인가?  순간 나는 조금 당황을 했다. 예고편도 없는 일이기에 말이다.


" 뭐어.. " 내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리고 물었다.

" 아빠가 더운 날씨에 제초제를 한다고 힘들었으니 막걸리나 한잔 하자고 안주와 막걸리를 사 왔다고.."  

갑작스러운 나의 외출선언에 아내가 조금은 아쉬운 듯, 불만인 듯한 표정으로 얘기를 한다.

" 할 수 없지 뭐, 우리만 먹지 뭐 " 이걸 어째?

오늘 후배와의 만남도 중요한 자리다. 몇 차례 연기하다가 늦은 시간에라도 만나려고 약속을 잡았다.

갑자기 고민거리가 생겨 버렸다.


셋째는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방학을 해서 내려온 지가 오늘로써 1주일이 되는 날이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 제사다 뭐다 해서 그동안 셋째를 위한 주담회를 한 적이 없다.  


주담회는 애들이 고향집에 오자마자 하는 우리 가족의 고유 환영의례다. 우리 부부나 애들 모두 적당한 애주가다. 자녀들이 올 때마다 집에서 삼겹살을 굽거나, 광어회를 떠다가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말 그대로 수다방이다.

겸사겸사 아내는 오늘 그런 자리를 만든 모양이다. 셋째에게서 한 학기 동안의 학교생활 이야기, 방학을 하고 누나네 집에 산 이야기 기타 등을 직접 듣고 싶은 모양이다.   


셋째는 방학을 하고서도 한참이나 있다가 제주로 내려왔다. 거의 한 달여를 누나네 집에 있었다. 자기가 사는 편한 기숙사를 두고 좁은 누나네 자취집에서 3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고 한다.

 

누나들은 나이 터울이 있어서 그런지 셋째를 무척이나 아낀다.


" 항상 우리한테는  애기지, 보면 힘이 나는 에너지.. "

" 사무실에서 피곤하고 힘든데 집에 가서 셋째가 있으면 힘든 게 싹 가셔 "

" 퇴근하고 컴컴한 집에 들어가서 직접 불을 켜야 하는데, 불이 켜 있으니 좋아 "

이유나 변명도 여러 가지다.  


" 그럼 누나들이 모두 출근을 해버리면 밥은 어떻게 먹어? "

" 응, 누나가 집에 카드를 두고 가지. 아무거나 먹고 싶은 거 주문해서 먹으라고.."

이건 우리 부부한테도 경험해보지 못한 호사다.


아무튼 서로가 도움이 돼서 아껴주고 힘이 된다니 든든하다. 다 큰 자식들을 타지로 멀리 보낸 부모입장에서는 그보다 고마운 일이 없다. 그래서인지 셋째는 방학이 돼도 제주로 온다는 얘기가 없다가 할아버지 기일이 임박해서야 내려왔다.




식탁 위에는 한라산 노지 21도 소주, 막걸리, 연어, 한치회가 올라왔다. 좀처럼 볼 수 없는 다양한 옵션이다. 한상 가득이다.


노지(露地, 지붕 따위로 덮거나 가리지 않은 땅.) 소주라는 말은 술이 냉장고에 들어가 있지 않고 밖에 있는 것을 얘기한다. 즉 차갑지 않은 소주다. 내가 노지 21도 만을 찾아서 그런지 오늘 메뉴도 내 맞춤이었다.

그러나 안주는 연어회다. 아내와 셋째가 좋아하는 안주다. 나는 좀 물컹물컹해서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아내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한치회도 한 사라가 올라왔다.

한치는 제주에서 나는 오징어 비슷한 어류인데 식감이 부드럽다. 어류 특유의 냄새가 없기 때문에 많이 먹어도 질리지가 않고, 처음 먹는 사람들도 싫어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한치는 여름철에 주로 잡힌다. 여름철 밤 바닷가를 일렬로 수놓는 불빛들이 한치를 낚고 있는 한치배들이다.  

예전에 많이 잡힐 때는 거의 매일 먹었다.  퇴근길 수산물가게에 들러서 1kg을 사면 우리 가족이 한 끼 풍성한 저녁상을 즐길 수 있었다. 당시 kg에 20,000원대였는데 지금은 사오만원을 넘어간다고 한다. 물가도 오르긴 했지만 어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수온 상승으로 많이 잡히지가 않는다고 한다.



셋째는 한 학기 동안 서울생활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들을 풀어놨다. 학교 얘기며, 친구들 얘기, 기숙사 얘기 등등이다. 장래와 군대에 대한 고민도 풀어놨다. 대화 속에서 요즘 변해가는 세상의 모습, 젊은이들의 생각도 부분 부분 읽을 수 있다.

"요새는 그렇게 해? " 대화도중에 우리 부부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부모님들은 가족들이 먹고사는 것을 챙기기에 바빴다. 부모님이 집에서 자녀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있더라도 자녀들과 대화를 할 필요성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맞는 친구를 찾아서 밖을 헤매었던 것 같다. 여기서 마음 맞는 친구라는 것은 주로 나와 대화가 통하는 친구다. 서로가 고민을 얘기하고, 들어줄 상대방, 그래도 비밀이 보장되는 든든한 사람이다. 가슴에 담아둔 고민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카타르시스가 됐던 경험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람은 대화만으로도 크나큰 정서적 안정과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가족끼리는 대화가 없어지고 있다.


자녀들은 자랄수록 부모와의 교감을 멀리하고 거부하면서 소통이 뜸해지게 된다.  

성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시기를 지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공통적인 화젯거리의 소재를 제거한 결과 일수도 있다. 서로 간의 공통적인 화젯거리가 없으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마련이다.  


" 이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는 독립선언이자 불통의 선언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일상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될 때 자녀들과의 소통이나 교감은 멀어지게 된다. 공통된 얘깃거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성장함에 따라 경제생활과 주거생활을 달리하게 된다. 생활의 근거지가 달라지면 서로의 얘깃거리가 자연적으로 적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가끔 그런 경험을 한다. 매일 보면서 수다를 떨던 사람들끼리 오랜만에 만나더니 할 말이 없어진 경우를 말이다. 일상 속의 대화는 같이 보면서 같이 느낀 것,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본사람하고는 그런 공감대가 없기에 많은 대화가 이루어 지질 못한다.  


생활의 근거지가 달라지면 자녀들은 가끔씩이나 볼 수 있다.

기껏해야 부모님의 겪었던 사회생활의 경험에 따른 걱정과 우려 정도를 전해줄 수밖에 없다

" 언제 시절 얘기인데.."라는 타박으로 돌아온다.


" 어떻게 사니? 밥은 잘 챙겨 먹고 " 자녀들의 일상을 챙기는 일이다.  

" 다 알아서 해.. 걱정 마 " 대답이 단순하다. 


나는 집에 올 때마다 풍성한 얘기를 해주고,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해주는 우리 가족들이 고맙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항상 행복해한다.  

이제 금방 여름휴가철이다.

동그라미가족의 원형 테이블에서 펼 쳐질 첫째, 둘째의 이야기보따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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